"똥물 막걸리?"는 옛말..울산 태화강, 국가정원으로 '출세'
[경향신문] 울산에서 가장 유명한 막걸리의 이름은 ‘태화루’다. 태화루가 생기기 전에는 ‘태화강’이란 막걸리가 있었다.
태화강을 생산하는 양조장에는 20여년 전 울산 도심을 흐르는 하천인 태화강이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온다. 어느 날 밤 양조장 야간 당직실로 불콰하게 취한 한 시민의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당신들, 태화강 똥물로 막걸리를 만든 거 맞지? 안 그러면 막걸리 한 통 먹었을 뿐인데 (내가) 어찌 이렇게 취하느냔 말야.”
태화강 인근에 사는 권유현씨(60·울산 중구)는 “당시에는 강물이 얼마나 썩었는지, 여름철에는 파리·모기가 들끓고 악취가 진동을 해서 코를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태화강이 지금은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산림청은 지난 7월 태화강 일원 태화교~삼호교 구간의 ‘십리대숲’을 포함한 둔치 83만5452㎡를 국가정원으로 지정했다. 전남 순천만 일원이 2015년 9월 국가정원으로 처음 지정된 이후 국내에서는 두 번째다.
국가정원이란 국가가 조성하고 운영하는 정원을 말한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생태·대나무·무궁화·계절·물·시민참여 등 6개 주제로 모두 29개의 세부 정원으로 조성돼 있다.
특히 태화강의 ‘십리대숲’은 여름철에는 백로, 겨울철에는 떼까마귀 수만마리가 찾는 철새도래지다. 십리대숲이란 말은 왕대 종류의 대나무가 10여리에 걸쳐 조성돼 있어 붙인 이름이다.
울창한 대나무숲으로 유명한 전남 담양의 죽녹원이 산등성이에 위치한 반면 태화강 십리대숲은 하천 중간에 위치해 시민들의 접근성이 좋다. 이 때문에 생태학습지로도 널리 애용되고 있고, 연간 158만여명이 찾는 울산 최대 관광명소로 등장했다. 울산시는 십리대숲을 확장해 내년 말까지 숲 곳곳에 테마공원 설치를 포함한 ‘백리대숲’으로 조성할 것을 추진 중이다.
태화강에는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른다. 1996년 태화강의 생물학적산소요구량은 11.3㎎/ℓ였지만, 2006년 2.3㎎/ℓ, 2016년 1.2㎎/ℓ, 지난해 1.4㎎/ℓ로 수질이 꾸준히 개선됐다. 20~30년 전에는 생각조차 못한 연어의 회귀량도 2003년 처음 5마리를 기록한 데 이어 2008년 55마리, 2011년 274마리, 2014년 1827마리 등으로 계속 늘었다.
이처럼 태화강이 되살아나고 국가정원으로 ‘출세’한 것은 울산시와 시민들이 쏟은 각고의 노력 때문이다.
울산시의 ‘태화강 살리기 사업’은 1997년부터 막을 올렸다. 울산항으로 유입되는 모래를 막기 위해 1987년 설치한 하천내 방사보(防沙洑·높이 1m, 길이 600m)의 양 끝부분을 1997년(49m)과 1998년(40m) 일부 철거했다.
울산시 관계자는 “당시 상류에서 내려온 토사가 쌓이면서 수질오염 가중, 하천 생태통로 차단, 홍수 조절능력 저해 등 문제점이 대두돼 방사보를 시험 철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일부 철거한 것에 불과한데도 수질개선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났던 것이다.
울산시는 이어 2005년부터 방사보와 같은 인공시설물 대신 자연생태 복원에 무게를 둔 ‘태화강 살리기 마스터플랜’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부분 철거됐던 수중보(방사보)를 2006년 완전 철거하면서 딱딱한 콘크리트 제방을 대부분 걷어낸 대신 나무·풀·돌 같은 자연생태 재료를 최대한 이용해 하천 제방을 정비했다. 하천 곳곳에 퇴적된 ‘모래톱’은 되도록 원형을 보존했다. 상류에는 생활·축산 오·폐수의 유입을 막기 위한 하수처리장을 설치하고, 강 바닥 준설은 환경단체의 의견을 반영해 최소화했다.
이후 태화강이 맑은 물을 계속 유지하고, 주변 환경생태가 빠르게 복원되면서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태화강 보존에 관한 활발한 의견 제시가 이뤄졌다. 결국 2017년 64개 시민단체로 ‘국가정원 지정을 위한 범시민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정원 지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무려 22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울산시는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으로 울산이 오염물로 가득한 ‘공장도시’라는 오명을 씻고 ‘생태환경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은 지금까지 수도권과 호남권에 편중된 정원문화를 울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승목 기자 smbae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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