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극단적 선택하자 죄인 취급" 자살 유가족 고통 덜어주는 원스톱 서비스 도입

이에스더 2019. 9. 15. 16: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눈물만 쏟아지는데 경찰에선 피의자처럼 조사하고, 시댁 식구들은 ‘남편이 그 지경이 되도록 왜 못 막았냐’며 죄인 취급하더군요. 하루에도 몇번씩 나도 같이 따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겁니다.”

주부 A씨의 남편은 몇년 전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경찰 연락에 A씨는 까무라쳤다.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슬픔에 빠졌지만 남편을 애도할 여유조차 없었다. 잔인한 일상과 마주해야 했다. 사건 직후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했고, 혼자 장례를 치러야 했다. A씨를 탓하는 가족들 앞에서 마음놓고 울지도 못했다. 가장이던 남편을 대신해 당장 어린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A씨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게 가장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국내 자살자 수는 한해 1만3000여명.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은 절망 속에 세상을 떠나지만, 남겨진 가족들은 더 큰 고통을 받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사람의 자살로 영향을 받는 사람은 최소 5명~10명이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 매년 8만~13만명의 자살 유가족이 발생한다. 이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 분노, 가족관계 단절, 생계 어려움 등을 동시에 겪는다. 스웨덴 연구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은 자살 위험이 일반인 대비 8.3~9배에 이르고 국내 연구에서는 자살 유가족의 우울장애 발병 위험은 일반인 보다 약 18배 이상 높다.

이렇게 A씨와 같은 자살 유가족은 높은 자살 위험과 우울장애 발병 위험은 물론 갑작스런 사별로 겪는 법률ㆍ상속ㆍ장례ㆍ행정 등 다양한 문제 처리과정에서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정부가 운영하는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ㆍ자살예방센터에 등록해 도움을 받는 대상은 한 해 1000여 명에 불과하다.
개인정보보호법에 가로막혀 경찰ㆍ소방에서 자살 유족에 대한 정보를 관계 지원기관에 제공하기 어렵고, 당사자 스스로 자살 유가족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한다.

앞으로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의 출동 요청에 따라 24시간 전담직원이 출동해 유가족에 대한 초기 심리안정을 돕는다. 법률ㆍ행정, 학자금, 임시주거 등의 서비스를 안내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5일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따르면 16일부터 광주광역시와 인천광역시,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자살 유족 원스톱서비스 지원사업’이 시범 실시된다. 자살 유족 원스톱서비스는 자살 유가족의 자살 예방과 건강한 일상 복귀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시범 사업 모형을 개발한 김민혁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교실 교수는 “자살 사건을 인지한 경찰관이 초기에 자살예방센터로 출동을 요청하고 적시에 관련 서비스를 안내한다면 도움의 손길 한번 받지 못하고 자살로 내몰리는 자살 유족은 더는 발생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유족들에게 사고 직후 사회가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제공하면 가족의 극단적 선택으로 받는 트라우마 완화 등 이차적 피해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