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촛불 든 학생들에 재갈 물리는 어른들

이태윤 2019. 9. 1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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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윤 사회2팀 기자
‘너희는 뭐(무슨 전형)로 서울대 갔냐.’‘죄다 마스크네.’

지난달 28일 조국 법무부 장관(당시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며 서울대 관악캠퍼스 아크로광장에서 열린 2차 촛불 집회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각각 1000명이 넘는 사람의 공감을 얻어 ‘베스트 댓글’로 노출됐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비공감 역시 1000개를 넘어 해당 댓글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났다.

네이버 분석 결과 서울대 촛불 집회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의 50~70%는 4050이 썼다. 일부 ‘어른’들은 세차례에 걸친 서울대 학생의 촛불 집회 내내 학생을 비난하며 “차라리 가만히 있으라”고 입을 막았다.

조 장관 딸(28)이 고교 시절 의학 논문 제1저자에 오르고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3학점만 듣고도 전액 장학금을 받는 등 논란이 커지자 지난달 23일 서울대 학생들은 처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모인 10명의 자원봉사자가 기획을 맡고 사전신청을 받았다. 당시 주최 측은 개인의 신상 보호를 위해 사전 신청자 수만큼 마스크 200개를 준비해 나눠줬다.

바로 비판이 제기됐다. “마스크를 쓰는 걸 보니 창피한 줄은 아는가 보다”는 식이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진실을 비판하면 불이익이 우려될 때 마스크를 쓴다”며 “조국 욕한다고 누가 불이익을 주느냐, 마스크들은 안 쓰고 오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결국 2차 집회를 맡은 서울대 총학생회는 마스크를 나눠주지 않았다. 주최 측의 신상과 과거가 털리고 개인 SNS에는 부모 욕까지 이어졌다.

“정치색을 빼라”는 요구도 집회 내내 이어졌다. 학생들은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발언하는 사람마다 “지난 박근혜 정권 때도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는 자기 고백을 했다. 사상검증을 거쳐야만 ‘순수한’ 집회라고 인정받을 수 있었다. 주최 측은 집회 때마다 “특정 정당 혹은 정치 유관 단체의 이름 혹은 이를 연상케 하는 문구나 그림을 포함하는 옷, 피켓을 지참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학교 포털사이트·학생증·졸업증명서 등으로 서울대 재학생이나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인증한 사람만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특혜 집회”라는 반응이 나왔다. 서울대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이미 특권층이라는 지적이었다. ‘서울대 학생의 90%는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닌다’는 식의 가짜 뉴스도 동원됐다. ‘극우’ ‘한줌단’(500~800명 모인 집회 규모가 한 줌에 불과하다는 비판) 등 과격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집회 개최에 찬성한 한 학생은 “누군가는 조국 아니면 사법개혁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면 보수 적폐로 밀어붙인다. 신상을 털어 ‘너도 적폐냐’며 입을 막는다”고 말했다. 3차 집회를 마친 뒤 비를 맞으며 서울대 정문까지 행진한 다른 학생은 “드러난 부정에 분노하는 건 당연한데 ‘각종 자격’ 요구하며 자격 없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며 “정의로운 사회를 원하는 마음에 좌우가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조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법적 유무죄 판단은 검찰과 법원의 몫이다. 그에 앞서 이미 드러난 불공정한 사실에 대해 비판하는 학생들에게 정치권이나 기성세대가 나서서 재갈을 물릴 이유는 없다.

이태윤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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