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시시각각] 윤석열은 사슴을 사슴이라 한다

전영기 2019. 9. 1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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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때 조고의 지록위마 사건
음모로 권력 쥐고 주군을 죽게 해
살아있는 권력의 거짓과 싸울 때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국씨는 자신을 압박하는 윤석열 검찰의 수사망을 법무부 장관의 힘으로 헝클어트리려 하는 것 같다. 취임 첫날부터 차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수사 라인에서 배제하려는 시도가 드러났고, 수사지원비 등 검찰의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대검 사무국장을 윤석열의 감시자로 교체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국씨가 설마 그런 야비한 짓을 했겠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행동이 확연히 다른 그의 행태를 보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주일 전 서울대 학생의 수업권에 과도한 침해가 없도록 하겠다더니 장관이 되자마자 교수 휴직원을 낸 사람이 조국씨다.

서울대가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말 없이 조씨의 휴직원을 받아준 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눕는 풀잎을 연상시켰다. 실망이다. 서울대는 과거 그런 학교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권력이 무섭긴 하다. 그들은 법과 제도로 행사하는 힘 이전에 반대파의 급소를 비밀스럽게 가격해 주저앉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이 괴물이 되는 것은 순식간인데 사람들은 알아채기 어렵다. 권력이 그럴듯한 말과 온갖 치장,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일 때 현혹되지 않고 발밑을 볼 일이다. 권력의 발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못난 야당, 기레기 소리 듣는 언론, 정부 보조금을 받는 시민단체라도 권력 감시를 포기해선 안 되는 까닭이다. 살아있는 권력은 스스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뒤뚱거리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 살아있는 권력의 위세와 비극은 조고(趙高·기원전 ?~207년)라는 사람이 잘 보여준다.

조고는 환관·비서 출신으로 고대 중국의 간신이다. 그는 형법에 능통한 진시황의 측근이었다. 마차와 문서, 옥새를 관리하는 자리에 있을 때 황제가 남긴 유서를 조작해 후계자를 바꾸는 음모에 성공했다. 단숨에 권력 실세가 된 조고는 낭중령이란 장관직을 맡아 2세 황제를 쥐고 흔들면서 갖은 요설과 형벌로 선대 황제의 37년 체제를 지웠다. 그 체제를 가꿔온 승상 이사, 장군 몽염을 죽인 뒤 중승상의 자리에 올랐다. 조고는 급기야 2세 황제의 약점을 잡아 협박해 자결케 하였다. 그는 옥새를 차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일단 3세 황제를 즉위시켰는데 잠시 긴장을 푼 사이 이번엔 새 군주가 조고를 죽였다.

허무한 간신의 일생이 인류사에 남긴 것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했다는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다. 조고는 자신의 권세를 확인하고 싶어졌다. 2세 황제한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황제가 “이것은 사슴 아닌가?”라고 묻자 주변의 신하들이 하나같이 조고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입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사마천의 『사기열전』이사열전편).

조국씨는 장관 후보자 시절 100% 가족펀드를 가리켜 블라인드 펀드라고 불렀다. 아마 그는 검찰에 소환되면 가족이 했을 뿐 나는 관계하지 않았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국에게 장관 임명장을 주면서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이 소리에 억장이 무너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둘 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 권력자의 지록위마다. 누가 감히 아니라고 대드는지 지켜보겠다는 심산이었으리라. 민주당 의원들이 공천 탈락의 공포 때문에 권력의 지록위마 놀음에 꼼짝없이 끌려가는 꼴을 보면서 두 사람은 자신감이 붙었을 것이다.

윤석열의 검찰은 조국의 진실을 증거로 밝혀낼 거의 유일한 기관이다. 이 기관마저 지록위마의 위세에 겁박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다행히 엊그제 검찰에 압송된 조국의 5촌 조카는 권력과 검찰의 거래가 아닌 검찰의 독자적 수사 의지에 따라 귀국당했다고 한다. 윤석열은 수사를 하는 사람이다.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 온 세상이 사슴을 말이라 해도 윤석열만은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해야 한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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