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북한인권단체들, '적폐'로 지목돼 압수수색 당해.. 다들 입을 다물었다"

최보식 선임기자 2019. 9. 16.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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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의 북한인권단체 탄압을 고발하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
"한 단체는 계좌 조회가 이뤄진 사실을 통보받고서야 알게 됐다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당황해 대응을 못 했고 영문도 몰랐다
떠들어봐야 '적폐 단체'처럼 비치거나 정권에 한 번 더 찍힐 것
후원자들이 겁을 먹고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북한인권·민주화운동 단체들은 ‘박근혜 적폐’로 지목돼 압수수색을 당했습니다. 명목은 이 단체들이 박근혜 청와대의 혜택을 받았다는 소위 ‘화이트리스트’ 수사였지요. 이 단체들은 더 큰 피해를 볼까 봐 지금껏 바깥으로 이 사실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이영환(40)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 사례를 기록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탈북민 증언과 구글어스의 위성사진을 활용해 공개 처형장과 암매장 장소 등을 특정한 '북한 정권의 처형과 암매장' 보고서를 냈다. 그는 NED(미국민주주의기금)가 제정한 '2018 민주주의상'을 받았다.

그런 그가 문재인 정권에서 벌어졌던 '북한인권단체 탄압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다.

"2017년 가을 검찰이 북한인권·민주화운동단체 10여 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이 단체들의 이름을 언론에 슬쩍 흘렸습니다. 하지만 그 뒤 구체적인 증거가 나왔거나 위법 사례가 적발된 단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번 훼손된 단체의 평판과 신뢰는 회복하는 게 매우 어렵습니다. 후원자는 떨어져 나갔고, 대학생 중심으로 활동하던 북한인권청년단체는 결국 문을 닫게 됐지요. 이와는 무관하게 한 북한인권단체에 대해서는 후원 계좌와 직원 개인 계좌를 들여다봤습니다."

이영환 대표는 “북한인권기록센터는 지금까지 인권실태보고서를 한 번도 발간 안 했다”고 말했다.

―금융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것은 누가 그 단체에 지원하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를 조사한 것인데?

"그 단체는 계좌 조회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통보받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너무 당황해 대응을 못 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영문도 모릅니다. 그냥 침묵했습니다. 바깥으로 떠들어봐야 자칫 '적폐 단체'처럼 비치거나 정권에 한 번 더 찍힐 수 있으니까요. 후원자들이 겁을 먹고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저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금까지 입을 다물어 왔습니다(해당 단체에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당신이 하는 '전환기정의워킹그룹'도 그런 적이 있었나요?

"저희 단체는 다국적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만약 압수수색이 들어올 경우 각자 대사관에 긴급 연락해 개입 및 보호를 요청하도록 짜놓았습니다. 대부분 북한인권단체는 우리와 같지 않습니다. 정부 공권력에 무방비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기반이 취약한 탈북민 단체의 타격이 가장 큽니다."

―북한인권 및 북한민주화단체들이 정부 지원 사업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그전까지 통일부의 활동 지원 사업 분야에는 '북한사회 바로 알리기'가 있었습니다. 북한인권·북한민주화와 관련된 민간 활동이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요. 그러나 현 정권에서는 지원 사업 분야가 '평화'나 '남북 교류 협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단체들은 현 정권의 코드에 맞추는 문제로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당수는 활동을 포기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통일부는 '이 단체들이 사업 신청을 안 했기 때문이지 우리가 지원을 안 해주려는 게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정부 지원 사업에 신청하지 않았나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인 2017년 초 저희 단체는 인권 조사 기록 방법에 관한 국제회의와 실무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통일부가 '관련 업무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무교육을 맡아주면 행사 경비 5000만원을 후원하겠다'며 제안했습니다."

―좋은 조건의 제안이었군요.

"그동안 저희 활동을 쭉 지원해온 미국민주주의기금(NED)에 문의하자 '미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만들어진 기금의 취지는 시민 사회의 역량 강화와 정부 견제를 위한 것이니 정부 기관이나 공무원들을 훈련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라는 회신이 왔습니다. 당시 저희가 행사 경비를 지원받았으면 어쩌면 '박근혜 적폐 수사' 대상에 오르게 됐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아예 한국 정부의 지원과는 선을 긋고 있습니다. 그건 언제든지 '덫'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서강대 재학 시절 운동권 세례를 받았다. 그러던 중 1990년대 말부터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탈북자의 존재에 의문을 갖게 됐다. 이념 교육을 지도하던 한 졸업생 선배에게 '북한을 탈출해 오는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라고 묻자, '조국과 민족의 배반자들'이라고 잘랐다고 한다.

"1999년 여름 교내 게시판에서 '탈북 동포 돕기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북한인권단체의 공고를 보고는 탈북민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주말마다 하나원에 들어가 탈북민 봉사를 했고 겨울방학 기간에는 이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이념 서클에서 배운 내용과 북한 실상은 너무 달랐습니다. 탈북자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인생 진로가 그때 바뀐 겁니다."

그는 군 복무와 대학원을 마친 뒤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일했다. 2007년 그는 탈북자들이 강제 북송돼 겪는 폭력과 고문 실태를 기록한 '고문의 공화국 북한' 보고서를 썼다. 2009년에는 북한 아동을 위해 인도적 차원에서 보내진 대북 지원 물자가 북한 군부 등에 의해 어떻게 빼돌려지는지를 추적한 '왕(王)이라 불리는 아이들' 보고서를 냈다.

"북한은 70년 독재국가입니다. 역사상 안 무너진 독재는 없었습니다. 언제 무너질지 예측할 수 없을 뿐이지요. 그 독재 체제가 무너지는 과정이 '전환기'입니다. 그런 전환기의 정의(正義)는 인권 탄압 가해자에 대한 책임과 피해자 배상 등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희 단체는 그 정의를 세우기 위해 기초 증거 조사와 기록 작업을 실무적으로 하려는 겁니다."

북한 정권을 직접 겨냥하는 이런 활동을 위해 그는 독립된 조직을 만들어야 했다. 북한 단체 활동가에게 영어 교습을 해온 캐나다인, '탈북민 정체성'에 관한 논문을 쓴 북한 연구자인 영국인, 북한 단체들의 홈페이지 개설을 도와온 미국인, 그리고 탈북 청년 등이 그의 뜻에 동참했다.

"북한 도처에서 행해지고 있는 공개 처형과 암매장 장소를 지도상에 모두 표시해놓는 것을 첫 프로젝트로 잡았습니다. 해당 지역 출신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차역이나 관공서가 나오는 구글어스의 위성사진을 놓고 탈북민의 기억을 되살려 공개 처형 지점을 하나하나 찾아냈습니다. 4년간 600여명의 탈북민이 인터뷰에 응해줬습니다."

―공개 처형 대상은 주로 정치범인가요?

"먹고살기 위해 공장 부속품이나 전기선, 구리선 등을 떼어 팔아먹은 '생계형 범죄'가 가장 많았습니다."

―북한 인권 침해 사례의 수집 기록은 사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2016년 북한인권법 통과로 북한인권기록센터와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설치됐지요. 이 기구는 과거 서독 정부의 '잘츠기터'를 본뜬 것이지요. 자유와 인권 탄압 사례, 그런 범죄의 실상을 수집해 나중에라도 가해자를 형사 법정에 세우겠다는 취지였지요. 상징적으로 동독 정권을 압박한 겁니다.

"현 집권 여당이나 좌파 정당은 '북한인권법은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이고 외교 결례'라고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동시대 다른 나라들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심각한 반인도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2014년)가 나오자 더 이상 반대할 수 없었지요. 인권법이 통과되자 북한 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 기록하는 기구를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정치적 타협으로 조사와 기록은 통일부 산하 북한인권기록센터, 보존은 법무부 산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로 나눴지요.

"통일부는 남북 관계와 교류 협력의 전담 부서인데 북한 인권 상황을 조사·기록하는 역할을 과연 제대로 해낼까, 정권이 교체되거나 대북 정책 기조가 바뀌면 입법 취지대로 기능을 해나갈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검사의 지휘하에 조사와 기록이 이뤄져야 법적 증거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법무부 산하로 하는 게 맞지요. 하지만 그렇게 했던들 결과는 똑같았을 겁니다. 얼마 전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파견된 검사들을 모두 되돌려보냈지요. 김정은의 환심을 사려면 현 정권은 이 기구들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통일부 북한인권기록센터도 3년이 된 지금까지 북한 인권 실태 보고서를 한 번도 발간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구는 신규 탈북민을 만나 조사할 수 있는 독점적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조사보고서를 안 낸다는 것은 최근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정보를 꼭꼭 숨겨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인권실태 보고서를 내야 하는 법적 규정이 있나요?

"북한인권법의 해당 조항과 북한인권기록센터 설립 취지에 '발간'이 명시돼 있습니다. 처음에는 보고서 발간 의욕을 갖고 일했는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발간 계획을 백지화했습니다. 제가 이 점을 지적하자, '정부와 국회에 내부 보고를 하고 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탈북자 몇 명을 인터뷰했다는 식의 현황 보고를 말하는 것이지요. 법 조항에 '발간'이라고 되어 있지 '공개보고서 발간'이라고 명시 안 됐으니 문제 될 게 없다는 겁니다."

―과거 서독에서도 사민당이나 좌파 지식인들은 '잘츠기터 기록보관소는 냉전의 잔재'라며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지요. 동독 체제 비판은 '평화와 긴장 완화를 해치는 것'이었고, 동독의 호네커 서기장을 '친근한 이웃 아저씨'로 대하는 분위기가 확산됐지요. 결국 잘츠키터에 대한 연방 예산을 끊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주(州)에서 예산을 갹출해 통일될 때까지 존속시켰지요.

"북한인권기록센터 관계자는 사석에서 '위에서 북한인권실태보고서를 내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보고서를 못 내도록 압박한 이가 통일부 장·차관인지 청와대 비서관인지 국회에서 조사해야 합니다."

한국 대통령이 추석날 TV에 출연해 “이산가족이 서로 만날 기회를 안 주는 것은 남쪽 정부든 북쪽 정부든 함께 잘못”이라고 말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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