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한인들.. 70%는 日 본토 끌려가 [잊힌 자들의 머나먼 귀로]

이귀전 입력 2019. 9. 1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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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정부가 파악한 피해자 22만명 / 日이 자료 협조 거부해 조사에 한계 / 일본정부 공식 발표 자료엔 780만명 / 남태평양 등 군인·군무원으로 동원 / 원치 않은 전투 벌이다 현지서 숨져 / 해방 후 유해 1만1069위 봉환됐지만 / 日·사할린 이외 지역 유해 봉환은 '0'
‘780만4376명’ vs ‘21만6992명’.

일본과 한국 정부에서 각각 파악하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우리 선조에 대한 통계 자료는 약 36배 차이가 난다. 놀랍게도 일본이 파악한 수치가 한국보다 36배나 많다.

일본이 공식적으로 밝힌 자료에서 약 800만명에 이르는 조선인들이 일제강점기에 국내외에서 군인과 군무원, 노무자 등으로 강제동원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동원된 이들 중 현지에서 사망한 이들의 유해를 고국으로 봉환하려면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자료가 바탕이 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의 지속적인 요구에도 일본 정부는 이들이 누구인지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자료 협조를 거부하자 우리 정부는 현재 생존해 있는 피해자와 사망한 피해자 후손들을 대상으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피해 신고를 받았고, 약 22만명의 피해를 접수했다. 일본 정부의 자료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지만, 그나마 이 조사를 통해 서서히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일제강점기 당시 전 세계 곳곳으로 끌려간 뒤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현지에서 눈을 감은 조상들의 유해를 수십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봉환하기 위한 사업을 펴고 있다.

◆일제에 의해 끌려간 그들

15일 행정안전부와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실 등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운영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접수를 받은 인원은 국내 2만3447명, 국외 19만3545명 등 총 21만6992명이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이란 일제가 아시아태평양 전쟁(1931∼1945년)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권력에 의해 실시한 인적·물적·자금 동원정책을 의미한다. 특히 인력 동원 거부 시엔 모두 실형을 살아야 해, 일제가 조선인들을 강제로 동원한 것이다. 강제동원된 유형은 군인 3만2645명(국내 7052명, 국외 2만5593명), 군무원 3만6348명(국내 1341명, 국외 3만5007명), 노무자 14만7881명(국내 1만4993명, 국외 13만2888명) 등으로 구분된다.

강제동원된 이들이 끌려간 국가를 보면 전체 강제동원 피해자 중 70.1%인 15만2195명이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중엔 전시 물자 제조와 연료인 석탄 등을 캐기 위해 동원된 노무자가 많았다. 일본 전역 4119곳 작업장으로 11만9600명의 노무자가 끌려갔고, 군인과 군무원은 각각 1만3258명, 1만9315명이었다.
지역별로는 홋카이도 3만9992명, 후쿠오카 1만4172명, 히로시마 4615명, 오키나와 2644명이었다. 어디로 끌려갔는지조차 모르는 이는 9만772명에 이른다. 러시아는 끌려간 6945명 중 대부분인 6289명이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다.

일본과 러시아 외에 남태평양 지역, 중국, 동남아시아 지역 등에 강제동원된 이들은 노무자보다 군인이나 군무원이 많았다. 일제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벌인 전쟁을 위해 원치 않는 전투를 하기 위해 끌려간 것이다.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 타라와섬 등을 일컫는 ‘남양군도’ 지역으론 1만6142명이 끌려갔는데, 군인은 1683명, 군무원은 9928명으로 절반이 넘었고, 노무자는 4524명이었다.

중국으로는 1만1425명이 강제동원됐는데, 군인과 군무원이 각각 7910명, 1517명이었고, 노무자는 1988명에 불과했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대만으로 각각 강제동원된 924명, 360명, 338명 중엔 군인과 군무원이 892명, 322명, 322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그들

국외로 끌려간 이들 중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이가 사망했지만, 현지 사망 비율을 따지면 전쟁이 벌어진 남양군도나 동남아시아 지역이 높았다.

일본 강제동원자 중 4.9%인 7483명이 현지에서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면, 남양군도와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등은 강제동원 피해자 중 각각 31.1%(5027명), 44.2%(408명), 25.4%(86명), 41.1%(139명)가 현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특히 남태평양의 뉴기니 지역은 871명이 끌려가 78.0%나 되는 679명이 고국 땅을 밟지 못했다.

해방 후 최근까지 국내로 봉환된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유해는 1만1069위로 파악되고 있다. 위원회가 2015년까지 접수해 파악한 현지사망자와는 별개다.

봉환된 유해는 일본과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이 전부다. 일본에선 1만998위, 사할린에선 71위가 국내로 왔다. 그외 다른 지역에서 봉환된 유해는 단 한 구도 없었다.
정부 주도로 봉환된 유해는 9724위, 민간단체들이 직접 움직여 들여온 유해는 1345위다. 일본과의 외교 경색이 심화된 2010년 이후엔 정부보단 민간단체 주관으로 유해가 봉환됐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지부진한 강제동원 유해 봉환 사업

강제동원위원회가 활동한 2015년까지는 정부의 예산 지원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져 현황 파악부터, 실태 조사, 현지 조사 등이 진행되긴 했다. 하지만 위원회 해산 후 잔여업무는 행정안전부로 이전됐다. 위원회 사업을 한 개 과에서 물려받아 진행하고 있어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긴 힘들다. 재단법인 ‘일제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4년 설립돼 ‘국립일제강제동원 역사관’ 운영 및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사업 등을 하고 있지만 각종 사업을 수행하기엔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 이어오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조선인들을 군인과 군무원, 노무자 등으로 강제동원해 전쟁에 참여시켰다. 강제동원된 조선인 중 상당수는 일본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 곳곳으로 끌려간 뒤 끝내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현지에서 눈을 감았다. 행정안전부 제공
문재인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관련 법안이 마련되면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한 조직을 확대하고, 예산을 늘릴 계획이지만, 국회에서 관련 법안에 대한 심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최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제동원과 관련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인 예산을 배정해야 한다”며 “특히 강제동원 역사와 관련한 전문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015년 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한 후 담당 부서의 격이 낮아지고 활동도 뜸해진 것이 사실”이라며 “조사해보면 할 일이 굉장히 많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 하이난, 남태평양의 키리바시(타라와) 등에 우리 노동자들이 가서 희생을 당했는데, 진척이 막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귀전·이창훈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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