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말고 MRI 찍으라"더니..문케어 청구서 날아온다

장세정 2019. 9. 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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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의사 총파업' 자극하는 의료 포퓰리즘
문케어 강행하자 13만 의사 반발
의료 왜곡하는 문케어 부작용 탓
경증 환자가 대형병원 응급실 차지
중증 환자들 골든타임 놓쳐 숨져
대형병원 쏠리자 지방병원 문 닫아
문케어는 공짜 아냐, 결국 국민 부담
정부, 의료인들 목소리 경청해야
‘문재인 케어’로 의료 혜택은 늘지만 결코 공짜가 아니다. 국민 부담으로 속속 돌아오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는 문케어를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사진은 의사협회의 홍보 전단.
13만명이 넘는 의사들이 추석 연휴 이후 집단휴진(총파업)을 하겠다며 문재인 정부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낸 상태다. 8월에 열린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표자대회에서 ^'문케어'의 전면적 정책 변경 ^진료 수가(酬價·보수) 정상화 ^의료 전달체계 확립 등 7개 항의 요구 조건을 제시했는데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의협과 보건복지부 실무진이 몇 차례 비공식 물밑 접촉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자칫 2014년 3월 이후 5년 만에 의사들의 총파업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부부가 온갖 편법을 총동원해 딸을 의대(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에 보냈을 만큼 의사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그런 의사들이 왜 이 시점에 뭐가 답답해서 거리로 나가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이유가 궁금해 서울과 지방의 의사들을 두루 취재했다.
딸을 의대에 보낸 조국-정경심 부부가 그토록 선망한 의사들은 왜 지금 총파업을 하겠다는 것일까.
너도나도 MRI 촬영, 최대 4배 급증
2017년 8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문케어를 발표한 정부는 특진료 폐지, 2~3인 병실 건보 적용 등 '달콤한' 정책을 잇달아 쏟아냈다. 2018년 10월부터 뇌 MRI(자기 공명 영상) 촬영에 건보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은 가수 딘딘(28)을 내세워 MRI 촬영을 유도하는 홍보 동영상을 제작해 내보냈다. "머리 어깨 무릎 발 중 제일 중요한 머리 머리 머리. 문제 있으면 MRI. 근데 진짜 문제는 머니 머니. 이렇게 비싼데 하필 건강보험 안될 건 뭐니. 그건 다 지난 얘기. 돈은 걱정 마, 돈은 돈 워리. 이제 뇌 MRI가 건강보험 되니까. 비용은 4분의 1. 이제는 머리 머리 머리. 걱정은 돈워리 워리 워리. 건강보험 혜택은 더 높이 더 높이 더 높이."
딘딘의 노래 가사는 사람들을 자극했다. 병원마다 "나도 뇌 MRI 찍어달라"고 난리다. 서울의 상급종합병원 정신과 M 의사는 요즘 병원에서 벌어지는 의사와 환자의 대화 장면을 소개했다.
환자="머리가 아픈데 뇌 MRI 좀 찍어 주세요."
의사="단순 두통이면 굳이 찍을 필요 없어요."
환자="정부(건보공단)에서 머리 아프면 공짜로 찍어준다고 광고까지 하던데 왜 안 된다는 겁니까."
뇌 MRI에도 보험이 적용된다는 건강보험공단 홍보 영상에 출연한 가수 딘딘. [보건복지부 유투브 캡쳐]
문케어 때문에 서울과 지방 병원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빅5 병원. 장세정 기자
M 의사는 "하루 40명을 진료할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는 MRI를 1~2건만 찍었는데 요즘엔 4건까지 늘었다"며 "굳이 찍지 않아도 되는 경증 환자들이 찍는 바람에 자원과 재정 낭비가 심각하다"고 전했다. 그는 이런 심각한 실태를 복지부 간부에게 알려줬다가 "의사가 진료나 잘하지 건보 재정 걱정을 왜 하느냐"는 핀잔만 들었다고 한다.
사실 의사들 입장에서는 MRI 촬영이 늘어나면 단기적으로 병원 수입이 늘어 유리하지만, 비정상적으로 남발되면 부작용이 적지 않다. 실제로 대형 병원에서 60만원 받던 MRI 비용은 비보험 시절엔 전액 본인 부담이었으나 이제는 18만원만 본인 부담이고 42만원은 건보공단이 부담한다. 공짜라고 착각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건보 재정에 부담이 가고 건보료 인상 요인으로 돌아온다.
복지부 관계자는 "뇌 MRI 관련 건보 지출이 당초 정부 예상보다 1.4배 늘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 척추·관절 MRI까지 보장을 확대할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M 의사는 "지금도 돈이 철철 새는 소리가 들리는데 앞으로 허리나 무릎 좀 아프다고 MRI를 찍기 시작하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케어 때문에 서울과 지방 병원의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지방 병원들은 잇달아 문을 닫고 있다고 호소한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 병원 장면. 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장세정 기자
경증 환자 응급실 차지, 중증 환자 숨져
문케어가 시행되면서 '의료쇼핑'이 늘고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면서 크고 작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동네 의원이나 작은 병원에 가도 충분한 환자들조차 보장성 확대로 문턱이 낮아지자 종합병원이나 상급종합 병원으로 몰려가고 있다. 이 때문에 '빅5 상급종합병원'(서울대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연대세브란스병원·서울성모병원)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환자들로 문전성시(門前成市)다.
경증 환자들이 대형 병원의 응급실과 병실을 차지하면서 중증 환자들이 치료 '골든 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서울의 대형 병원 P 의사에 따르면 항암 치료를 받은 뒤 발열 증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36시간이나 응급실에서 대기했고, 이후 중환자실 입원 대기 중에 끝내 숨졌다. 그는 "대형 병원은 췌장암 같은 어려운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보험 수가가 낮다 보니 담낭절제술 같은 간단한 수술을 하루에 10건씩이나 하면서 실적을 유지한다"며 "이 때문에 수술을 기다리던 췌장암 환자들이 수술을 제때 못 받고 숨지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감기·두통·복통 환자가 응급실을 차지하고 교통사고·심장마비·뇌경색 등 중증 환자는 밀려나고 있다. 대형 병원 L 의사는 "1시간에 중증 환자 1명 볼 시간에 경증 환자 10명을 볼 경우 난이도가 높은 중증 환자 의료 수가가 10배 이상이어야 정상인데 실제로는 잘해야 1.5배 정도다. 그렇다 보니 병원 입장에서는 경증 환자를 더 보려고 하지 중증 환자를 위해 시간이나 시설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부는 말로는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지만 문케어의 실상을 보면 '표가 먼저'인 의료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다급하지도 않은 분야(특진료·병실료·식대 등)는 표가 많다 보니 보장을 서둘러 확대하면서 정작 절실한 중환자실·응급실 등 필수의료는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의료 왜곡이다.
의사협회는 8월 전국 의사 대표자대회에서 진료 수가 정상화 등 7개항을 정부에 요구했다. 장세정 기자
지난 7월 문케어를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며 8일간 단식 투쟁을 진행한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 [사진 의협]
지방 중소 병원들 줄줄이 폐업 "살려 달라"
문케어의 또 다른 부작용은 서울과 지방 병원의 양극화다. 대표적인 빅5로 꼽히는 서울대병원은 2017년 225만 6180명이던 외래환자가 지난해 233만 1946명으로 증가했다. 보장성이 확대될수록 서울 대형 병원들에 지방 환자가 쏠려 중소 병원과 지방 병원의 타격이 커진다.
성종호 의협 정책 이사(소아정신과 전문의)는 "개업 대비 폐업 비율이 의원급은 79%, 병원급은 113%로 자영업 평균(72%)보다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산의 한 종합병원 B 원장은 "문케어 시행으로 최근 1~2년 사이 지방 환자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심해지면서 부산의 C 종합병원이 지난해 문을 닫았고 D 종합병원은 입원 환자가 절반으로 줄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지방 도시가 유지되려면 교육과 의료가 핵심인데 교육은 이미 붕괴했고 의료마저 무너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서부 경남의 중소도시 병원 P 원장은 "문케어 시행으로 가뜩이나 지방 병원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가 병상 간격 확대와 스프링클러 소급 설치 등 각종 규제를 늘리면서 경영 부담이 커진 지방 병원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며 "제발 지방 병원 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최대집 의사협회 회장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정부가 의협이 요구한 7개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추석 이후 이른 시점에 전국 13만명의 의사들이 집단휴진(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정 기자
<인터뷰>
최대집(47) 의협 회장을 직접 만나 현안을 물어봤다. 문케어를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난해 5월 취임했고 7월에는 8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최 회장은 "감옥 갈 각오가 돼 있다"며 정부와 일전을 불사할 기세였다.
-추석 연휴 이후에 총파업을 강행하나.
"협상의 여지는 있지만 7개 항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집단휴진에 돌입할 것이다."
-문케어의 가장 큰 문제는.
"임기 5년 안에 남아 있는 3600여개 항목을 급여화하겠다는 정책이다. 모든 의료 행위에 보험 혜택을 주고 급여 기준을 최대한 넓혀주면 의료 천국이다. 하지만 한국보다 부가 축적된 선진국도 실현하지 못한 의료 유토피아일 뿐이다. 지속할 수 없고 필수적이지 않은 분야에까지 보험 혜택을 주면 의료 과소비가 조장된다. 의사들의 진료 자유도 침해된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라고 강조하는데.
"정치적 프로파간다(선전) 구호다. 건강보험은 좋은 병실 혜택 주라고 만든 게 아니다. 진짜 사람이 먼저라면 중환자실·응급실 등 필수의료부터 점진적·단계적으로 급여화 해야 한다. 대학병원 정신과 폐쇄 병동이 줄어들고 있어 문제다. 소아재활과의 아동 환자도 보험 혜택을 잘 못 받는다. 이런 게 더 급하다."
-의사들은 기득권 때문에 문케어에 반대하나.
"의사들도 보장성 강화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급여 항목 저수가 시스템 때문에 건보 항목만으로는 병원 유지가 어려운 의사도 많다. 탐욕 때문에 비급여 치료를 권하는 의사는 극소수다."
-문케어는 지속 가능할까.
"2017년 문케어를 발표하면서 이 정부 임기 5년간 30조원을 쓰겠다고 했다. 공약대로 하면 건보 재정에 파탄이 올 거다. 세금으로 메우든지 건강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2017년 0%였던 건보료 인상률은 2020년 3.20%로 뛰었다. 문케어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결국 국민 부담으로 돌아온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간다 문케어 건보 폭탄
◇문케어=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토대로 2017년 8월 발표한 의료 분야 정책의 별칭. 선택진료비를 폐지했고, 2~3인 병실까지 보험이 확대됐다. 보장성이 강화돼 혜택이 느는 것은 좋지만, 고령화 시대에 눈덩이처럼 불어날 비용이 문제다. 5년간 문케어에 30조원이 들어간다. 건강보험공단 적자가 늘어나고 결국 보험료도 오르고 있다. 의료의 품질 저하도 우려된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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