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시시각각] '플랜B' 한국의 핵무장은?

남정호 2019. 9. 1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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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한·일 핵개발 지지 여론 일어
최고의 방어막이자 국방비 절감
북핵 해결에 도움 줄 수도 있어
남정호 논설위원
오는 19일이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공동선언문을 발표한 지 꼭 일 년이 된다. 꿈은 거창했으나 이들이 다짐했던 전쟁 위험 제거, 적대관계 해소 등 어느 것 하나 이뤄진 게 없다. 김정은이 연말로 못 박았던 대화 시한도 석 달 남짓 남았다. 바야흐로 북한 비핵화 실패를 대비한 ‘플랜B’를 논의할 때다.

이런 참에 미국에서 중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얘기다. 스티븐 비건 미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6일 “비핵화에 실패하면 한국과 일본 등에서 핵 능력 제고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약속이나 한 듯 이날 발표된 미 의회조사국 보고서도 “미국 핵의 신뢰성에 확신을 갖지 못하면 동맹국도 핵무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느낄 것”이라고 했다. 이대로라면 한·일이 핵무장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뉘앙스다.

그간 우리는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거란 선입견에 젖어왔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도 핵무기를 만들려다 미국 분노를 산 탓이란 음모론이 나돌 정도다. 하지만 바람이 바뀌고 있다. 갈수록 많은 미 전략가들이 “한·일의 핵무장이 미 안보에 보탬이 된다”고 주장한다. 더 중요한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자신이 이를 내심 바란다는 거다. 대선 후보였던 2016년 그는 “북핵이 있는 상황에선 일본이 핵무기를 갖는 게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때로 현실은 허구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1년 전, 김정은과 트럼프가 갑자기 판문점에서 만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니 한국의 핵무장도 이뤄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따져보면 핵무장엔 장점도 적잖다.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방어막이다. 최고의 평화유지책은 우월한 군사력에 의한 ‘억제(deterrence)’임을 역사는 웅변한다. “평화를 원한다”는 꿀 발린 약속만 순진하게 믿어선 안 된다. 다음으로 핵무장은 다른 안보 방안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 핵무기 개발도 1조원이면 너끈하다고 한다. 유지 비용은 물론 훨씬 적다. 한데 보라. 주한미군 분담금조로 올해 미국이 챙긴 돈은 1조원을 넘는다. 그것도 모자라 이젠 한해 5조원 이상을 요구한다. 최근 10년 간 한국이 산 미국 무기만 7조6000억원어치다. 핵무기만 있으면 그 절실함은 떨어진다.

끝으로 미국의 핵우산 약속을 믿기 어렵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한국이 공격당하는 즉시 미국이 핵무기까지 동원하며 도와줄 것으로 믿고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1949년 미국과 유럽 국가가 나토 협정을 맺을 때 “개별 회원국에 대한 공격도 나토 전체에 대한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그러자 미 의회는 외국의 전쟁에 자동 개입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크게 반발했다. 결국 1953년 맺은 한·미 상호방위조약 3조에서는 한쪽에 대한 공격 시 “각자의 헌법상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이 공격당해도 의회의 참전 반대 등을 구실로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마련된 셈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며칠 전 “우리가 지켜주는데도 동맹국들은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으며 때때로 나쁘게 행동한다”고 비난했다. 이런 미국을 어떻게 믿나.

그간 핵무장 반대론자들은 두 이유를 들었다. 첫째,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면 국제사회가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경고해 왔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초강대국 미국이 용인하면 큰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다. 둘째, 우리가 핵이 있으면서 어떻게 북한 비핵화를 요구하겠느냐는 반론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북핵 제거가 불가능한 걸로 판명된 뒤에도 여기에 집착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도리어 우리도 핵을 갖겠다고 밝히는 게 북핵 제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북한과의 평화 프로세스에 목맨 정부가 핵 개발에 나설 리 없겠지만, 학계나 언론에서 이제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화두임은 틀림없다.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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