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일본 외교관 "욱일기가 트러블 일으킬 수 있다"
"욱일기가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 일본 외교관이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전에 한 발언입니다. 베이징 올림픽은 2008년 8월 8일에 개막됐습니다. 개막일로부터 8일 전인 7월 31일 중국 주재 일본 대사관은 베이징에 오는 일본 관광객에게 '안전 지침'이란 책자를 만들어 배포했습니다. 이 '안전 지침' 제3항 뒷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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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보면 오카무라 기자의 질문에 대해 당시 주중 일본 대사관 직원으로 근무하던 사이토 노리오 씨가 이렇게 대답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안전 지침에서 올림픽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에게 오랜 역사의 군기(욱일기)가 트러블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We explain in a safety guideline for Japanese tourists coming to see the Olympics that the old military flag may cause trouble.")
주중 일본대사관은 일본 외무성의 관리 감독을 받습니다. 따라서 대사관 직원인 사이토 노리오 씨의 답변은 곧 일본 정부의 공식 방침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는 중국에서는 욱일기를 흔들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습니다. '안전 지침'에 욱일기 사용 금지 조항을 집어넣은 것은 욱일기를 사용할 경우 중국인과 마찰이 일어나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위에 거론된 인물 가운데 일본인이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즉 주중 일본 대사관 직원이나 일본의 언론 매체들도 2008년 당시에는 욱일기가 아시아인들에게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고 따라서 욱일기 사용이 각종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자각하고 또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1년이 지난 2019년, 일본은 자신들이 한 말을 망각한 듯 딴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지난 9월 3일 SBS의 질의에 대해 "욱일기가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지 않아 금지 품목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강변했습니다. 최근에 일본 올림픽장관으로 선임된 하시모토 세이코 장관도 기자회견에서 똑같은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을 허용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은 세계 평화를 증진하는 지구촌 축제이지, 일본 사람들만 출전하는 일본 전국체전이 아닙니다. 욱일기가 트러블을 일으킨다고 자신들이 말해놓고도 이제 와서는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구이언'(一口二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만약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는 개최국 중국인들의 반발이 무서워 '욱일기 금지'를 결정했지만 도쿄올림픽은 자신들의 안방이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비겁하고 '후안무치'한 작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트러블'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성공 올림픽이 아닙니다. 이는 일본도 원치 않는 사태입니다. '트러블'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길은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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