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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사팀장 "마음의 짐은 벗었지만.."

조문희 기자 입력 2019.09.18. 22:08 수정 2019.09.19. 10:05

[경향신문]

‘화성 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하승균씨(73).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진작 공소시효를 늘렸어야 한다. 범인이 특정됐는데도 처벌을 못한다니….”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하승균 전 임실경찰서장(73)이 18일 경향신문과 통화에서 밝힌 소회다. 첫 범행이 발생한 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하씨는 사건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또렷이 기억한다.

이날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그는 화성 연쇄살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다. 이 사건을 가장 오래 쫓은 형사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의 실제 모델이었다. 2003년 영화 개봉 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두고 “10명의 무고한 생명과 그 유족들, 사건현장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수많은 경찰관들에게 ‘추억’일 수 없는 ‘악몽’”이라며 “영화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하 전 서장은 1971년 순경으로 경찰에 투신했다. 전주 영생고 재학 시절 레슬링 선수였다. 경기도 경찰에서 30년 넘게 강력계 형사로 일하며 ‘과천 부부 토막 살해사건’ ‘광주 여대생 공기총 살해사건’ ‘양평 휴양림 일가족 살해사건’ 등을 해결했다. 그는 ‘연쇄살인사건’이란 명칭이 붙여진 1986년 12월 4차 희생자인 이모씨(당시 23세) 시신이 발견됐을 때부터 수사에 참여했다.

-용의자가 특정됐다.

“너무 감사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하느님 감사합니다’ 했다. 남들은 내가 형사로서의 직분에 충실했다고 평할지 몰라도, 나 스스로는 내가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형사는 범인 잡는 사람 아닌가. 수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건 검사도 판사도 아닌 형사인데, 나는 못잡았으니 형사로서 패배자다, 그렇게 생각했다. 자책감을 갖고 살았다. 이제라도 잡은 걸 보니, 역시 이 세상에 정의는 살아있구나 싶다. 나쁜 놈을 심판하는 신이 계시구나. 한편으로, 그동안 노력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성폭행범의 DNA는 전국 모든 수사팀이 모아두게 돼있는데, 형사 후배들이 열심히 수집해서 보내놓은 것 같다. 또 국과수에 함께 화성사건 다뤘던 최 박사가 기억난다. 그분이 화성 수사본부에 와서 엄청 노력해줬다. 경찰이 채취하는 자료를 그분이 모아서 국과수로 보냈다. 그렇게 자료 확보한 경찰, 분석해준 여러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쾌거가 있는 것 같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몇 년이나 추적했나.

“1986년부터 추적했다. 2006년 2월 퇴직했는데, 사실상 그때까지 계속 그 사건을 생각했다. 현직에 있을 적엔 전국 어디서 사건을 다루건 성폭행 사건이 났다고 하면 화성 생각이 났다. 용의자 나이대, 인상, 특징을 조회하고 알아봤다. 퇴직한 이후에도 그랬다. 이곳저곳에서 수없이 연락이 왔다. 사건이 벌어진 이후부턴 평생 그 사건을 생각한 거다.”

-피해자 가족들도 많이 만나셨을 것 같다.

“한동안 많이 만났다. 범인이 안잡히는 사이, 가족분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분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게, 현직에 있던 2004년도쯤 같다.”

1991년 4월3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10번째 희생자 권모씨(69)가 발견된 현장.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번에 특정된 용의자는 50대 수감자라고 한다. 본인이 수사할 때 추정했던 용의자와 일치하나.

“당시 내 추정과 딱 맞다. 현재 나이로 치면 55세에서 58세일 거라 생각했다. 좀 어리다면, 53세까지도 가능할 것 같았다. 용의자를 본 목격자가 있기 때문에, 인상 특징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미제수사팀은 당시엔 어땠나.

“현장에서 경찰은 피해자 옷가지, 담배꽁초 등 범인의 것이라 추측되는 모든 걸 채취했다. 하지만 용의자 특정하고 검거하는 게 쉽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상 사형이나 무기징역의 대상이 되는 큰 범죄에 대해선 엄격한 증거와 증명이 필요하다. 때문에 형사들이 수사를 많이 하긴 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눈앞에 용의자가 있어도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현장의 일체를 무시하지 않고 우유팩, 담배꽁초 등까지 정성스럽게 수거했고, 그렇게 해서 국과수에 보낸 자료가 빛을 발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낸 자료가 얼마나 되나.

“말도 못한다. 엄청나게 많다. 간접증거까지 다 보냈으니까.”

-수사하면서도 감정적으로 힘들었겠다

“솔직히 죽이고 싶었다. 내게도 피해자의 유족, 그 이상의 원한과 동기가 있다. 화성사건 시신을, 10건 중 6건을 수습했다. 감정이 엄청 격했다. 피해자 처참하게 죽어있는 거 보면 분개하고 그랬다. 화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죽은 일이 있었다. 이놈이 시체를 훼손했다. 형사는 알파가 있어야 수사를 한다. 알파라는 건 범인에 대한 적개심 같은 거다. 그 아이를 보고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 당시 수사환경은 정말 어려웠다. 80년대 중반이었으니, 핸드폰도,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씻기도 제대로 못씻었다. 밤잠 못자고 38일 간을 집에 못가고 수사하기도 했다. 동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DNA분석상 지금 특정된 용의자의 DNA가 연쇄살인 10건 중 2건과 일치한다는데

“아직 몇번째 사건 범인과 일치하는지 모른다. 다만 그 10개 사건의 용의자를 나는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수법이 똑같았다. 경찰에서 두 사건이 일치한다고 했지만, 다른 사건과 일치한다고 말 못하는 이유가 자료를 채취하지 못해서일 거다. 두 건은 제대로 채취됐지만, 당시 상당수의 사체가 몇 개월만에 발견되어 부패가 진행됐다. 유전자 자료 확보 못한 게 여러 건이었다.”

-범인이 뒤늦게 밝혀지는 셈인데.

“화가 난다. 퇴직하고 나서 그동안 언론, 방송과 인터뷰를 많이 해왔다. 책도 냈고. 그때마다 내가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 공소시효 늘려달라는 거였다. ‘화성사건 채취해놓은 게 있다. 언제든 잡힐 수 있다’고 반복해서 얘기했다. 근데 어떤 언론도, 정치인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이제 발견했지만 결국 처벌도 못하는 거 아닌가. 정치인들은 가족을 잃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픔을 모른다. 공소시효를 진작 늘렸다면 범인을 처벌할 수 있을텐데, 안타깝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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