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패배자라고 생각 형사 후배들에게 고맙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조문희 기자 입력 2019. 9. 18. 22:26 수정 2019. 9. 1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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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당시 수사팀장 인터뷰

“진작 공소시효를 늘렸어야 한다. 범인이 특정됐는데도 처벌을 못한다니….”

화성 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하승균 전 임실 경찰서장(73·사진)이 18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밝힌 소회다. 첫 범행이 발생한 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하씨는 사건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기억한다.

그는 화성 연쇄살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다. 이 사건을 가장 오래 쫓은 형사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송강호 분)의 실제 모델이었다.

- 소식을 들은 감회는.

“소식 듣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했다. 남들은 내게 형사 직분에 충실했다고 평할지 몰라도, 나는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범인 잡는 게 형사니까. 자책감을 갖고 살았다. 이제 잡았으니 역시 이 세상에 정의는 살아있구나 싶다. 이걸 못 잡았으면 아직 어둠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구나 했을 것 같다. ‘이런 놈 심판하는 신이 계시구나’ 생각이 들었다.

- 패배자라는 느낌 사라지나.

“우리 힘으로 잡은 거 아니지만 그렇다. 성폭행범 DNA는 다 전국에서 보내게 돼있는데, 열심히 해서 그걸(DNA) 해놓은 형사 후배들에게 고맙다.”

- 범인에게 화났던 순간은.

“정말 죽이고 싶었다. 지금도 절룩거리는 후배가 있다. 중풍 걸려서 그만둔 사람도 있고. 내게도 피해자와 유족, 그 이상의 원한과 동기가 있다. 화성 사건 시신 10건 중 6건을 수습했다. 나도 감정이 엄청 격했다. 피해자가 처참하게 죽어있는 거 보면 분개하고 화내지 않는 사람이 있나.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죽은 일이 있었다. 이 놈이 시체에 훼손을 했다. 형사의 책임감, 의무감을 넘어 이놈은 정말…. 형사는 알파가 있어야 한다. 알파라는 것은 범인에 대한 적개심이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그 당시 수사환경이 몹시 어려웠다. 핸드폰도 없고, 폐쇄회로(CC)TV도 없고. 씻기는 제대로 씻었나. 밤잠 못 자고 집에도 안 가고 38시간을 수사했다.”

- 당시 왜 못 잡았나.

“우리가 무능해서 못 잡았다고 말하긴 쉽지 않다. 현장에서 피해자 옷가지, 담배꽁초 등 범인의 것이라 추측되는 모든 걸 채취했다. 하지만 범인 것이라 특정할 만한 어떤 것도 없었다. 형사소송법상 사형·무기 같이 큰 범죄엔 엄격한 증거와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래도 잘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현장에서 우유팩, 담배꽁초까지 정성스럽게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다는 점이다. 그게 빛을 발했다.”

- DNA 분석으로 10건 중 2건이 일치한다고 하는데, 어떤 건의 용의자로 보나.

“나는 동일범으로 본다. 수법이 똑같다. 경찰은 채취된 것만 대조한 것 같다. 상당수 시신이 부패가 진행된 지 수개월 만에 발견돼 DNA를 못 얻었다.”

-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못한다고 한다.

“내가 일관되게 공소시효 늘려달라고 주장했다. 채취해 놓은 것이 있으니 언제든 잡힐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언론, 정치인도 관심 가지지 않았다. 이제 발견했지만 처벌도 못하는 거 아닌가.”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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