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9일 김어준, 진중권 비주류를 말하다 [오래 전 '이날']

김찬호 기자 2019. 9. 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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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9년 9월19일 ‘비주류를 말하다’

비주류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같은 입장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적을 때, 또 다른 누군가는 정치권력이 없을 때 비주류를 자청합니다. ‘중심에서 벗어난 흐름이나 경향’이라는 사전적 정의와 별개로 요즘 ‘비주류’라는 단어는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애용됩니다. 하루아침에 주류가 비주류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것으로 보아 영원불변한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다양한 정의를 두고 20년 전 오늘, 경향신문은 당시 비주류를 자임하는 사람들과 좌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좌담회에는 현재 많은 지지층을 확보한 김어준, 진중권씨도 참여했는데요. 이들의 비주류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 한국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남깁니다. 한번쯤 다시 읽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기사는 좌담회 주제를 ‘우리사회 비주류란 무엇인가’라고 소개합니다. 좌담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당시 한일신학대 교수 김영민씨, 김정란 시인, 김어준씨, 진중권씨 등 총 4인입니다. 이들에게 듣고자 한 이야기는 비주류, 소수파, 주변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기성권위에 어떻게 도전하고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지입니다.

먼저 김영민씨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혁명은 대개 실패로 돌아갑니다. 명분이 좋고 지향점이 훌륭하지만 금방 타성에 젖기 때문이지요. 천년을 가겠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비주류는 거창한 대안을 찾기보다 겸손하게 보강, 보완,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김정란 시인은 비주류를 대하는 주류의 태도를 지적합니다. “우리 생활 속엔 주류·비주류의 개념이 없어요. 지금까진 힘 있는 자, 즉 주류만의 사회였기 때문이죠. 이제야 비로소 비주류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아니라고 생각한 것을 아니라고 말하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와요. 그것도 야비하게 뒤통수를 치면서요”

이어지는 진중권씨의 말도 흥미롭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요. “저는 튀고 싶어서 튄게 아니고 얘기하고 싶어서 글을 썼는데 귀국해서 보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봐요. 만사는 말로 따져 진리를 가려야 하는데 우리사회는 말의 친교적 기능이 너무 강해요. 그러니 상호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거죠”라고 합니다.

이어 “저는 대학원 다닐 때 전두환·노태우만 나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 피해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도교수가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더라구요. 너무 부당한 거죠. 그래서 불평을 했더니 누군가 쪼르르 달려가 고자질을 했어요. 그 이후에 그 교수가 모욕적인 언사를 일삼고 전 그때서야 미시권력을 보게 된 거죠”라고 합니다.

딴지일보 발행인인 김어준씨는 “사람들은 ‘솔직히 말해봐. 너 원래 이상한 놈이었지. 그래서 이런 유별난 것을 만들었지’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저는 매우 평범하게 살았어요. 딴지일보는 심심해서 만든 것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딴지일보를 재미있게 보는 것은 우리 국민의 평균적 감성에 맞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국민 대다수는 비주류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지요. 딴지일보에 대한 관심을 통해 ‘정말 사람들이 그동안 꽤 답답해 했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라고 말합니다.

김어준씨는 “하다보니까 이렇게 인기있는 비주류가 됐는데 앞으로는 주류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언제든 주류로 변할 수 있는 거죠”라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한 언론사 조사에서 그는 신뢰하는 언론인 3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비주류, 국민 감성에 대한 그의 분석이 맞아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김정란 시인은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지적도 합니다. “여성의 이름으로 보편성을 얘기하는 것은 거짓이에요.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 주류가 될 수 없어요. 제도권 여성단체에 있는 여성들은 진정한 여성성을 갖고 있지 않아요. 그들은 ‘명예남성’일 뿐입니다”라고 하는데요. 페미니즘이 사회의 화두로 떠 오른 오늘날에도 논의해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20년 전 오늘, 이들은 비주류를 이야기했습니다. 주류와 비주류의 위치가 영원불변한 것이 아닌 만큼 이들 중 ‘주류가 됐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들과 관계없이 비주류의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주류는 변혁을 꿈꾸는 창조적 소수”라는 기사의 제목처럼 말입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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