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통계 장난' 언제까지 할 건가

이정재 입력 2019. 9. 19. 00:08 수정 2019. 9. 19.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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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까지 통계 왜곡하니
대통령이 자화자찬하는 것
국민을 바보 쯤 여기는 격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귀를 의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고용과 소득이 “양과 질 모두에서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고도 했다. 근거는 ‘8월 고용통계’와 ‘2분기 가계동향조사’ 였다. 과연 대통령이 자랑할 만 한가. 백번 양보해도 어림없는 소리다. 보고 싶은 것만 봤거나, 의도적 통계 왜곡의 결과다.

소득 통계부터 보자. 지난해 정부는 원하는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통계청장까지 바꿨다. 올해도 ‘통계 장난’은 여전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2일 밤 배포한 3페이지짜리 보도참고자료 ‘중산층 기준 및 최근 중산층 소득개선 현황’이 딱 그렇다. 1페이지에 중산층이 줄었다고 적었다. 중위소득 50~150%를 중산층으로 본다. 이 비율이 올 2분기 60% 밑(58.3%)으로 주저앉았다. 처음이자, 사상 최저다. 박근혜 정부 말인 2016년엔 66.2%였다. 이 정부 들어 급속히 쪼그라든 것이다. 기재부는 고령화를 핑계 삼았다. 고령화로 독거노인 등 일인 가구가 늘어나 생긴 ‘구조적 문제’라고 적었다.

2페이지에선 그러나 “전체 분배상황은 좋아졌다”며 ‘뜬금없이’ 지니계수를 근거로 들었다. 지니계수가 1분기 0.317, 2분기 0.305로 2분기 연속 개선됐다고 적었다. 지니계수는 0~1 사이로 0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잘됐다는 의미다. 이 지수 계산엔 그러나 1인 가구가 빠져 있다. 1인 가구를 포함하면 올 2분기 지니계수는 0.326이다. 기재부가 밝힌 0.305보다 크게 나쁘다. 좋아지기는커녕 박근혜 정부 말인 2016년 2분기 0.298에서 2017년 0.304, 2018년 0.326으로 계속 나빠지다가 올해 겨우 멈춘 것이다.

기재부는 지니계수를 쓰면서 ‘자체 계산’이라고 적었다. 통계청 공식 통계가 아니라는 의미다. 통계청 관계자는 “기재부에서 상의해 온 적이 없다”고 했다. 통계청은 분기별 지니계수를 발표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분배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을 공개한다.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5분위 배율은 클수록 분배가 나쁘다는 의미다. 올 2분기는 5.30으로 사상 최악(같은 분기 기준)이다. 그러니 기재부의 ‘자체 계산’은 잘해야 ‘자체 왜곡’ 심하면 ‘자체 조작’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통계청이 1년에 한 번 공식 발표하는 지니계수는 일인 가구를 포함한다) 박근혜 정부 때보다 소득 불평등이 심해졌다는 게 소득 통계의 진실인데, 그걸 교묘하게 감춘 것도 모자라 대통령의 자화자찬까지 간 것이다.

일자리 통계도 비슷하다. 이미 많은 언론·학자들이 ‘8월 고용 반짝 증가’를 ‘속 빈 강정’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최악의 고용 참사에 따른 기저효과, 40조원이 넘는 세금 투입, 노인 일자리만 늘고(87%) 30~40대 일자리 23개월 연속 감소, 제조업·금융 등 좋은 일자리 지속 감소 등 때문이다. 고용 통계의 진실은 애써 잘 봐줘도 ‘이 정부가 부른 고용 참사의 바닥이 겨우 보인다’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도 왜 대통령은 자화자찬했을까.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①관련 부처 보고를 순진하게 믿었다. ②오른쪽 귀와 눈을 닫았다. 왼쪽 눈과 귀로, 왼쪽 여론만 듣고 봤다. ③견강부회했다. 옛말에 ‘세 사람이 말하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三人成虎)’지 않았던가. 경제부총리, 여당 대표, 청와대 수석에 이어 대통령까지 반복하면 없던 호랑이(경제성과)도 만들 것으로 생각했다. ④경제 쪽엔 잘한 게 너무 없어 이 정도도 큰 자랑거리로 생각했다. ⑤보고 싶은 것만 보는 지지층과 진영의 정신승리를 위해서다.

적어도 ①은 아니다. 보고서 원문까지 챙겨 읽는다는 대통령이니 그럴 리 없다. ②~⑤ 중 하나거나 전부일 수 있다. 조국 사태로 대통령의 눈높이와 불통을 국민도 이젠 알게 됐다. 밖에선 한국 경제의 침몰을 걱정하며 이 정부의 사회주의 정책이 재벌보다 더 나쁘다고 비판하는 판이다. 가격을 건드리고, 세금을 퍼주며, 경쟁을 없애는 정책들이다. 이런 정책이 “올바르다”며 계속 밀어붙이겠다니 급기야 대통령의 불통에 이어 무지까지 국민이 걱정하게 됐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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