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이래도 그저 '양념'인가

최아리 사회부 기자 2019. 9. 19.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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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리 사회부 기자

"(조국 장관은) 문프(문재인 대통령)가 2년을 쓰셨던 인재입니다. 끝까지 믿으세요. 기사 뜬다고 그대로 보지 마세요."

트위터의 친문(親文) 네티즌들 사이에서 공유된 이 글에 570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540여회 공유됐다. 최소 수만명에게 전파됐다는 의미다. 이들은 '문파(문재인 팬)'를 자처하며 "댓방(댓글 방어)은 문파의 병역 의무" "꽃보다 꾹(국) 장관님" 같은 글을 올렸다. 아이돌 팬클럽 같기도, 종교 같기도 했다.

믿음에 대한 확신 덕인지 여론 왜곡도 서슴지 않았다. 한 달 전부터 제보가 쏟아졌다. 네이버 뉴스 기사 댓글 중 정부를 옹호하는 댓글들은 특정 시간대 집중적으로 올라와, 똑같은 논리를 펴고 있고, 중복되는 아이디가 많다는 것이었다.

모두 '문파'들이 네이버 메인에 오른 주요 기사들을 공유하고 특정 댓글에 추천, 비추천을 누르도록 독려한 결과다. 네이버 제재를 피해 한 명이 3번 추천을 누를 수 있게 하거나, 아이디 교체 전 휴대전화를 '비행기 탑승모드'로 변경해 IP 주소를 갱신하라며 숫자를 부풀릴 편법도 공유됐다. 주로 연예인 팬들이 우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쓰는 방법이다. 18일 이들이 공유한 기사 중에는 〈"제 명예를 지켜주세요" 北 지뢰에 다리 잃은 하재헌 중사의 청원〉도 포함됐다. 여기엔 "불쌍한 건 알겠는데 법은 지켜야지" 같은 댓글이 달렸다.

믿음에 방해가 되면 '어제의 우군'을 향해 테러도 한다. '정의의 검사'라던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 장관 수사 시작과 동시에 그 얼굴 사진이 최순실씨 몸통 사진에 합성되는 신세가 됐다. 여기에 욕설이 담긴 비난글이 더해졌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야당과 청문회 조기 개최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휴대전화 번호가 '욕받이' 용도로 인터넷에 떠돈다. 조국 장관 비판 보도는 이들에겐 모두 '가짜 뉴스'다.

일찌감치 이런 행위를 사실상 재가(裁可)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지난 대선 때 경쟁자를 향한 친문의 '문자 폭탄' '18원 후원금'에 대해, 당시 문 후보는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양념"이라고 했다.

그 후 2년,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네이버 댓글을 믿을 수 없게 됐고, 커뮤니티는 극단으로 갈려 온라인 공론장이 사라졌다. 정부를 공개 비판하는 데에는 '조리돌림'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해졌다.

아이돌 팬을 좋아하듯 대통령을 좋아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돌 가수가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것과 법무부 장관이 펼치는 정책의 무게가 정말 같을까. 이런 식이라면 다음 장관 후보자는 인생을 떳떳이 살기 위해 노력하거나 좋은 정책을 고민하기보다, 그저 '문프의 지지'를 받을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이게 정말 우리가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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