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화나네"..마포대교 자살 예방 문구 역효과

오진영 인턴 입력 2019. 9. 19. 06:40 수정 2019. 9. 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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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 난간에 남아 있는 자살 예방 문구 부적절 지적..전문가 "억지웃음 문구 역효과..문구 교체, 철거 등 필요"
마포대교의 자살 방지문구. / 사진 = 오진영 인턴


"젊었을 때 고민 같은 거, 암 것도 아니여"
"하하하하하하하"
"수영 잘 해요?"

마포대교에는 '생명의 다리'가 있다. 2012년 9월에 완성된 '생명의 다리'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를 도입해 보행자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자살 예방 문구'에 불이 켜진다. "많이 힘들었지?" "밥은 먹었어?" 같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문구도 있지만, "수영은 잘 해요?"나 "나이 들었을 때는 아무 것도 아니다"는 고개를 젓게 만드는 문구도 있다. '생명의 다리'는 운영을 중단했지만, 아직까지 다리에 남아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의 문구들을 돌아봤다.

◇마포대교 '자살 예방 문구'논란... 자살 부추긴다는 의견도

자살 예방 문구로 등장한 "하하하하하하하" / 사진 = 오진영 인턴

2012년 서울시와 삼성생명은 합동으로 마포대교 자살 예방사업을 실시하고, 사업의 일환으로 1.9km에 달하는 마포대교 난간에 ’자살 예방 문구‘를 써 넣었다. 사람이 지나가면 자동으로 조명이 켜지면서 따뜻한 응원 문구가 보이도록 한 조치다.

하지만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마포대교의 투신 사고 건수는 자살 예방 문구를 설치하기 전인 2011년 11건보다 오히려 늘어 2014년에는 184건을 기록했다"면서 "자살 예방 문구가 잘못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포털 사이트나 커뮤니티 등에서 '마포대교'를 검색하면 뜨는 연관 검색어도 여전히 '마포대교 자살' '마포대교 투신' 등과 같은 자살 관련 글들이다.

'마포대교 자살'의 연관 검색어. / 사진 = 네이버 연관검색어 화면 캡쳐


소방청이 국회에 제출한 '2014년~ 2018년 8월 말 한강 교량 자살시도 관련 출동 현황'을 보면, 마포대교는 최근 5년간 가장 투신 시도자 수가 많은 교량이다. 전체 2255명의 투신 시도자들 중 38.3%의 864명이 마포대교서 투신을 시도했으며, 투신 후 사망자도 24명으로 마포대교가 제일 많았다.

마포대교는 고시촌이 밀집해 있는 노량진이 5Km 이내에 있으며, 바로 앞의 여의도역에는 금융사들이 즐비하고 국회의원들이 업무를 보는 국회의사당이 눈 앞에 보인다. 증권거래소 등지서 큰 경제적 손해를 본 사람들이 바로 근처에 위치한 다리를 투신 장소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국회에서 결정되는 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근처의 마포대교를 선택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수험 생활에 지친 노량진에 거주하는 학생이 투신한다는 추측도 있다.

분명한 것은 아직도 마포대교가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이 먼저 떠올리는 곳이라는 점이다, ‘자살 예방 문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마다 수십, 많게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생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마포대교를 찾는다.

◇자살을 막기 위해 '아재개그'?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넣은 문구의 일명 '아재개그' /사진 = 오진영 인턴


18일 낮 직접 찾은 마포대교는 공허하고 쓸쓸했다. 마포역서 마포대교로 가는 입구에는 죽은 물고기가 배를 뒤집고 둥둥 떠다녔고, 차들은 빠른 속도로 옆을 지나쳤다. 입구를 지나 1.4km에 달하는 긴 교량의 중간 부분에 서면, 아래의 넘실대는 한강물과 지나가는 차들이 위압감을 준다.

마포대교 옆의 양 난간에는 지금은 중단된 '생명의 다리' 캠페인 때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모했던 문구가 아직 남아있다. 해당 문구는 칸 국제광고제 등 유수의 광고제를 휩쓸었지만 오히려 자살 시도자 수가 16배 이상 급증할 정도로 '자살 방지'에는 실패한 시설물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쟤 깨워라!"는 자살 예방 문구. / 사진 = 오진영 인턴


삼성생명은 2015년 연간 1억 5000만원에 달하는 관리비 지원을 중단했고, 서울시가 해당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생명의 다리' 캠페인은 마포대교에 을씨년스러운 '과거'의 흔적만 남겼다. 그마저도 남아 있는 일부 '자살 예방 문구'의 내용은 다리를 찾는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폭포는? 나이아가라 폭포." "인천 앞바다의 반대말은? 인천 엄마다." "자가용의 반대말은? 커용." "포도가 자기를 소개할 때는? 포도당."

정말 인생이 고단해서, 혹은 더 이상 삶을 붙들고 있을 수 없어서 마포대교를 찾은 사람들에게 입꼬리가 미동도 하지 않는 '아재개그'가 얼마나 소용 있을까 싶었다.

실제로 커뮤니티서의 관련 게시물에는 비난 댓글이 쇄도하고 있다. "우울감보다 더 화나게 만들어서 자살을 막으려는 것인가" "저 글 보고 더 뛰어내릴 것 같다" "자살이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꼰대'들이 작성해서 그런 것 같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더 걸음을 옮기니 "하하하하하하하"라며 비웃는 것처럼 보이는 문구도 있었다. "풋, 하고 웃지 말고 하하하하하하하"라는 내용이었지만, 자살을 앞둔 사람을 격려하려는 내용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꼰대'로 들린다는 자살 예방 문구. / 사진 = 오진영 인턴


일명 '꼰대(젊은이들을 훈계하는 연장자를 비하하는 말)'로 들릴 수 있는 문구도 보였다. 다리 중간 지점에 있는 "이그...나이 들어봐. 젊었을 때 고민 같은 거 암 것도 아니여"라는 문구는 '꼰대'가 "나 때는 말이야..."라는 것처럼 자칫 자살자의 동기를 별 것 아니라고 치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포대교에서 논란이 됐던 "수영 잘해요?" 자살 예방 문구. / 사진 = 뉴스 1

지금은 해당 문구가 써 있는 부분이 사라졌지만, "수영 잘 해요?"라는 문구는 당시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2015년 운영이 중단되기 전까지는 "수영 잘 해요?" 문구에 조명이 들어와 밤에도 눈에 띄었다.

△ "억지 웃음 문구는 역효과... 문구 교체, 철거 등 조치 필요해"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인터뷰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해당 문구에 대해 "공모를 통해 문구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잘못됐다"면서 "전문가들이 심의를 거쳐 과학적 근거를 갖고 신중하게 문구를 선정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곽 교수는 "속칭 '아재개그' 문구의 취지는 좋을지 몰라도, 일반 사람들에게나 어필할 수 있는 문구지 삶의 끝 부분에서 무기력하고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문구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저런 ’아재개그‘에도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사람과 극단적 상황에 처한 자살자 '나'사이의 괴리감이 심해져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면서 "해당 문구는 조속한 시일 내에 변경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대교를 관리하는 서울시청 교량안전과의 관계자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현재로는 해당 문구의 철거계획이 없다. 대신 북쪽에 100m 정도 추가로 난간을 보강하고 소방청과 협력하는 등 자살 방지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라면서도 "해당 문구가 그래도 있는 게 낫지 않나"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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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영 인턴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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