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의 시시각각] 적자생존 정부

최상연 2019. 9. 2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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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쓰기 정부" 전정권 비난하더니
온통 적자투성이 나라 살림 만들곤
"경제 잘 간다" 어깃장, 뭐가 다른가
최상연 논설위원
쳐다보면 서글퍼지는, 보잘 것 없는 월급 명세표에 다음 달부턴 작은 주름이 하나 더 보태지는 모양이다. 고용보험료가 지금보다 20% 넘게 오른다. 고용보험기금 가운데 대부분을 차지하는 실업급여 계정이 고갈될 처지여서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실업급여 지급액은 사상 최고치를 잇달아 경신하는 중이다. 석달 뒤면 건강보험료 인상도 예고돼 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 달 취업자 수는 무려 45만 명 이상 늘었다. 22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라는 자랑이다. 그런데도 실업급여 준다고 월급쟁이 호주머니를 털겠다는 건, 실제론 실업자가 많다는 뜻이다. 45만 명 늘었다는 일자리는 60세 이상이 40만 명이다. 세금 쏟아 만든 가짜 일자리다. 40대 일자리는 12만 명 줄었다. 내년엔 노인 단기 일자리가 70만 개 이상으로 더 확 늘어난다.

소득 하위 20%인 대략 1000만 명은 스스로 번 돈 보다 정부 지원액이 더 많아졌다. 통계 작성 후 처음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전국 시·도로부터 요청 받은 전국 개발사업 규모는 130조원을 넘는다. 곧장 정책 결정과 예산 배정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민주당은 “대부분 적극 돕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이렇게 출발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온통 천국을 약속한다. 산타클로스가 따로 없다. 세금 펑펑 쓰는 걸로 같은 편인 정의당은 지금 40만원인 병사 월급을 100만원까지 올리겠다고 한다. 여기 드는 수천억 원은 물론 자기들 돈이 아니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을 놓고 벌인 양다리 쇼에 지지하던 젊은 층 표심이 흔들리자 세금으로 무마하려는 ‘매표(買票) 발상’이다.

정부 곳간을 활짝 열어 젖힌 것이 이 정부의 특징이다. 아예 재정 지출이 국세 수입보다 훨씬 커지도록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이 설계돼 있다. 올해도 적자가 큰데, 내년엔 적자 국채 60조원을 찍어낸다. 전임 정부를 받아쓰기 내각에 적자생존(적는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 정부라고 퍼붓더니 자기들은 세금 펑펑 쓰는 것 밖에 모르는, 빛을 내야만 살아남는 적자(赤字)생존이다.

문제는 대놓고 풀어도 경제가 돌아눕질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짜 일자리가 아니라 코드로 써대니 그렇다. 엄청난 세금 들여 만든 보(洑)는 ‘전 정권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엄청난 세금 들여 때려 부순다. 박자도 안 맞는다. 원전(原電)을 괴물 취급해 놓고 대통령은 외국 가서 안전한 한국 원전을 홍보한다. 뒷감당은 또 의혹투성이인 태양광 보조금이다 뭐다 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세금이다.

전 정부를 따르는 건 오로지 구태 방식 뿐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지시 사항을 받아 적지 말라’며 이견(異見)제기는 의무라고 했다. 전임자도 두들겨 팰 겸 ‘청와대 정부’ 경계령을 폈다. 하지만 지금까지 회의에서 정책 실패를 세금으로 때려 막는데 이견이 나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 이견을 듣고 대통령이 세금 살포 포퓰리즘을 꺾었다는 말도 접하지 못했다.

‘경제가 건실하다’는 게 이 정부의 큰 자랑이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는 “국정 제 1목표를 일자리로 삼고 줄기차게 노력한 결과, 고용 상황이 양과 질 모두에서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고 자찬했다. 그런데 왜 젊은이들은 ‘이번 생은 아닌가 보다’고 아우성인가. 멀쩡한 공기업은 왜 줄줄이 적자로 돌아서나.

아침이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린다고 운종가(雲從街)로 불린 종로는 지금 ‘임대 문의’ 러시다. 강남 번화가도 다르지 않다. 종로는 청와대서 그리 먼 곳도 아니다. 대통령과 경제 참모들이 식사를 겸해 함께 둘러봤으면 좋겠다. 그게 문 대통령이 첫 손가락에 꼽은 대표 공약이기도 하다. 마침 선선한 날씨에 공활한 가을 하늘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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