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이 2000만원 되다니.." 통장을 확인한 고객들, 울음을 터뜨렸다

김은정 기자 2019. 9. 20.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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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S 폭탄 터진 날, 가장 많이 판매한 우리은행 위례지점에선..]
- "내 돈 물어내라" 아우성
평범한 서민들도 피해 많아
"손주 봐주며 10년 모았던 돈.. 예금·적금밖에 모르던 내게 안전한 상품이라 강조하더니.. "
피해자들 이르면 이번주 소송

"외손주 봐주고 월 100만원씩 받아 10년 넘게 적금 부었던 돈이에요. 1억 넣었는데 8000만원 잃고 지난달에 2000만원 겨우 찾았어요. 숨이 안 쉬어집니다."

독일 국채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했다가 거액을 날린 투자자들이 19일 오전 경기 성남시 수정구 우리은행 위례신도시지점에 몰려들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절대 안전하다더니, 1억원이 6개월 새 3000만~4000만원이 됐다"며 원금을 돌려달라고 호소했다. /위례=김은정 기자

"평생 하루 14시간씩 남의 집 가사일 해서 9000만원 겨우 모았더니, 은행원이 어디서 1000만원만 좀 빌려오래요. 딸 적금 깨서 1억 맞췄어요. 예금보다 안전한데 이자만 두 배 준다더니 이런 사기가 어디 있노. 우짤끼고, 내 돈!"

19일 오전 10시 경기 성남시 수정구 우리은행 위례신도시지점. 2015년 5월 지점 오픈 이래 가장 많은 손님이 모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돈 맡기러 온 사람이 아니라, 돈 잃고 항의하러 온 30여 명의 성난 고객이었다. 이 지점에선 지난 3월 40명에게 독일국채 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상품을 팔았다. 전국 지점 중 가장 많이 판 곳이다. 1인당 최소 1억원씩, 총 70억원을 맡겼는데 19일 만기를 맞은 이들의 투자원금은 많아야 28억원(손실률 60%)으로 쪼그라들었다. 통장 정리를 마친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울음을 터뜨렸다. "PB(프라이빗뱅커) 잡아와라" "돈 물어내라"는 고함이 점심시간까지 이어졌다. 은행 신고로 출동한 경찰과 직원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가입자들 은행·금감원 몰려갔다

세계 경기 침체로 몇 달 새 주요 국가의 국채 금리가 급락하면서 대규모 손실 위기에 몰린 DLS가 첫 만기일을 맞았다. 우리은행에서 판매한 독일국채 10년물 연계 상품에 투자했던 사람들의 통장에는 원금의 60%를 뗀 40%만 입금됐다. 국채 금리가 무섭게 떨어져 손실률이 90%가 넘었던 지난달 공포에 질려 서둘러 환매한 사람들은 한 번 더 분통이 터지게 됐다. 환매 이후 국채 금리가 회복돼 손실률이 60%로 줄었기 때문이다. 손주 봐주고 딸한테 받은 돈을 모아 무슨 상품인지도 잘 모르고 투자했던 조모(63·여)씨, 김모(68·여)씨 등도 이 경우다. 김씨는 "나는 예금, 적금밖에 모르던 사람이다. 파생상품이 뭔지도 모른다. 은행원이 절대 안전하니 안심하라면서 만기 때 찾으러 오라더니 이렇게 됐다. 남편 자식도 없이 혼자 사는 나한테는 노후자금의 전부인데 90%를 잃었다"고 했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최근 문제가 된 금리연계 DLS에 가입한 개인투자자는 3654명, 이들이 투자한 돈은 7326억원이다(8월 7일 기준). 법인까지 더하면 총 8224억원이다. 대부분 만기가 6개월 또는 1년짜리인 상품으로, 19일부터 만기가 시작돼 내년 초 만기물량이 가장 많다. 최소 투자금액 1억원 이상인 사모(私募) 상품이어서 상당수 가입자는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이날 은행에 몰려든 이들처럼 평생 모은 전 재산, 노후자금을 몽땅 털어 넣은 서민도 꽤 있다. 이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단일 지점으론 가입자가 가장 많은 우리은행 위례지점을 항의 방문한 데 이어 이날 오후에는 여의도 금감원을 찾아가 피해 구제를 호소했다.

◇빠르면 이번 주 첫 소송 큰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금감원에 150건의 분쟁조정 신청을 한 것과 별도로 소송도 준비 중이다. 빠르면 이번 주에 은행을 상대로 한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선 개별 사안마다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와 그 정도를 따질 예정이다. 불완전판매로 인정된다면 피해액의 최대 70%까지 배상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법적 효력이 없는 '화해권고'나 마찬가지로, 민원인과 은행 중 어느 한쪽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

소송에서는 은행이 금융지식이 부족한 일반투자자를 '적격투자자'로 둔갑시켜 사모 상품을 판매한 게 아닌지, 과거 투자성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원금손실 위험성이 큰 상품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등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임형민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계약 자체를 무효로 하는 정도의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은행의 약탈적 판매 관행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DLS를 집중적으로 판매한 우리은행·KEB하나은행은 금감원 분쟁조정 결과를 보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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