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한국남자랑 연애 안해" 20대 여성 절반이 '탈연애' 왜
20대 357명 대상 '탈연애' 설문조사
응답 여성 50% '탈연애 해보고 싶다'
반면, 남성은 8%만 '탈연애 해보고 싶어' 제>
■
「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
“연애를 못 하면서 안 한다고 말하는 거 아냐?” 탈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대학생 김모(27)씨가 가장 먼저 꺼낸 말입니다. 먼저 말씀드립니다. 연애를 ‘못’해서 탈연애를 하는 게 아닙니다.
탈연애는 ‘여자친구는 애교가 있어야 한다’ ‘남자는 여자를 리드해야 한다’ 등의 관습적인 연애에 저항하는 움직임입니다. 이같은 문제의식으로 연애를 중단하는 행위까지도 탈연애의 범주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탈연애는 적극적으로 기존 연애방식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운동인데요. 기존의 연애 방식이 가부장제를 공고히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죠.
여러분들은 탈연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밀실팀은 20대 357명의 목소리를 들어봤습니다. 밀실팀은 4일간 20대 의견을 자필로 받기 위해 신촌, 관악 등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요. 일부 학생들은 “중앙일보 기자입니다”라는 한마디에 경계하다가도 탈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 “평소 관심있는 주제였다”며 눈을 반짝이며 빼곡하게 답변을 적어냈습니다.
━
그 여자의 사정
“탈연애는 이제 친구들끼리 자연스러운 대화 주제예요”
설문에 응답한 대학생 박수빈(22)씨의 말입니다. 실제 박씨의 말대로 20대 여성 191명 중 70%가 ‘탈연애에 대해 들어봤다’고 답했습니다. 또 설문조사에 응한 10명 중 5명은 ‘탈연애를 해보고싶다’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20대 여성들이 탈연애를 고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씨는 ”이성친구를 사귀면 행복할거라 생각했지만 사귀면서 연애관계에서 혼자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았다”고 토로했습니다. “가장 불안할 때가 생리를 하지 않을 때”라며 “임신의 책임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된다는 생각에 남녀의 연애가 갖는 그 무게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였는데요. 이 수평적이지 못한 관계 때문에 박씨는 “과거 남친들 개개인이 이상한 사람이라기보단 연애 자체가 구조적으로 여성에게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지난 봄에 남친과 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20대 여성은 설문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페미니즘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고 난 그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연애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직장인 이모(26)씨는 “가부장제 문화가 익숙한 한국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남자를 찾기 힘들어졌다”며 “이젠 한국남자와 연애를 할 수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이처럼 20대 여성들은 탈연애를 고려해보게 된 계기로 기존연애방식이 가부장제를 공고히 한다는 점과 젠더이슈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그 남자의 사정
20대 여성와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탈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질문에 8%의 남성만이 ‘그렇다’고 말한 점입니다.
20대 남성이 탈연애에 대해 관심이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모(26)씨는 “탈연애 개념이 남자들에게 생소한 이유는 여자와 달리 지금 이 관계에 불편한 점이 없어서”라며 “고민해볼 필요성조차 느껴본 적 없었기 때문에 탈연애에 대해 관심없다, 피곤하다 응답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탈연애를 이 기사로 처음 접하신 독자분들은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껏 사랑하라. 이 또한 청춘의 특권이다”라는 말을 하시려나요. 아니면 마음 가는 대로 생각 없이 사는 게 어쩌면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치에 맞는 이야기일까요. 분명한 건 이 ‘복잡한 세상’에서 연애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는 20대 친구들이 여러분 주변에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연수·김지아·편광현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오픈카톡방 https://open.kakao.com/o/gYkXcTEb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