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케이드커녕 안내판도 전무..허술한 돼지열병 중점관리지역

송동근 2019. 9.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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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F 파동' 경기 파주·연천·김포 가보니 / 발생 원인 아직 오리무중 / 확진농장 살처분·매립 작업 분주 / 일부 중점관리지역은 방역 허술 / 바리케이드 없고 이동 제한 안해 / 돼지 일시이동중지 해제 / 지역 내 돼지는 지정 도축장 출하 / 北접경 14개 시·군 정밀검사 확대 / 군당국, 야외 부대훈련 잠정 연기
1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아프리카돼지열병 중앙사고수습본부 상황실에서 참석자들이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뒷쪽은 ASF 발생농장과 거점소독시설 위치가 표시된 경기 파주와 연천 지역 지도. 뉴시스
“수시로 소독을 하고 신경을 쓰고 있지만 언제 병이 날지 몰라 불안하기만 합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처음 발생한 경기 파주 인근 김포시 월곶면 한 돼지농장에서 만난 농장주 A씨는 19일 한숨을 내쉬었다. 이 농장은 거점소독시설인 농업기술센터와는 41㎞쯤 떨어져 있다. 그는 “병이 한번 발생하면 농장을 5년간 폐쇄해야 하므로 잔반을 사료로 주지 않고 수시로 소독하는 등 열병 예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파주에 이어 연천까지 ASF가 발병하자 확산 방지를 위해 전날 거점소독시설을 16개 시·군 24곳으로 확대했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장관까지 나서 ASF 위기 경보단계를 최고 수준인 ‘심각’단계로 격상하고 경기도 외 타 시·도로의 확산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정부나 광역단체의 요란한 발표나 대응과 달리 정작 현장에는 방역당국 차원의 열병에 대한 경각심과 주의를 요하는 출입통제 바리케이드는 물론 안내표지판 하나 없었다.
19일 경기도 연천군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양돈농가 진입도로에서 방역당국 관계자가 출입차량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연천=연합뉴스
농장 주변 진입로에서 입구까지 우체부, 택배원, 차량 등 민간인 누구나 아무런 제한·정보 없이 평상시처럼 농장 주변으로의 이동과 접근이 가능한 상태였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주민 B씨는 “이곳은 정부가 ASF 중점관리지역으로 지정만 했지 별다른 조치를 피부로 못 느끼겠다”고 말했다.
ASF 확진판정이 나와 이날 살처분 작업에 들어간 경기 연천군 백학면 돼지농가 주변은 삼엄한 통제 속에 긴장감이 흘렀다. 이곳에서 약 1㎞ 정도 나가면 북한과 이어진 사미천이 있고, 사미천을 따라 약 4㎞ 올라가면 비무장지대(DMZ)가 나온다. 이 마을 주민 C씨는 “이곳은 평소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다”며 “DMZ도 가까워 청정지역인데, 웬 돼지열병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마을에는 살처분 작업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긴장감이 흘렀다. 살처분 작업 등을 위해 오가는 관계자들도 모두 방역복을 입고 소독을 받아야 농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통제선 안에 있는 주민들도 출입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부탁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발병 원인을 조사하는 역학조사팀 차량을 비롯해 살처분과 매립을 위해 포클레인, 흙, 이산화탄소 가스를 실은 차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현장 살처분 작업 관계자는 “현재 돼지들을 매립할 땅을 파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4700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하고 매립까지 하려면 하루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살처분은 돼지를 한곳에 몰아 이산화탄소 가스를 주입해 안락사시키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ASF 첫 발생지인 파주시 연다산동 농장 등 3곳은 4927마리가 모두 살처분됐다.

방역당국은 발생 농장에 역학조사반을 투입해 차량의 이동이나 농장 관계자들의 외부접촉 등은 파악했지만, 감염원 접촉 여부에 대해서는 특정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ASF 발생 농장과 역학적으로 관련이 있는 농장·시설은 파주 328곳과 연천 179곳 등 507곳이다. 특히 경기(398곳)뿐만 아니라 강원(75곳), 충남(19곳), 전남(4곳), 경북(3곳) 등 제주를 제외한 거의 전국에 걸쳐 있다.
19일 경기도 파주시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양돈농가에서 방역당국이 농장 내부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급히 감염 여부 및 전파 경로를 파악해야 하지만 정밀검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역학조사 대상에 오른 파주 280개 농장 중 7곳에 대해서만 정밀검사해 ‘음성’판정이 나왔다. 농식품부는 정밀검사를 북한과 접경한 14개 시·군으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인력과 장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국 돼지농장 관련 인력차량 일시이동중지명령은 이날 오전 6시30분을 기해 해제됐다. 다만 경기·인천 지역 돼지농가에서 1주간 시행 중인 타 지역으로의 반출 금지 조치의 경우 파주, 연천 등 6개 시·군에선 2주가 추가된다. 지역 내 돼지는 지정 도축장에만 출하해 도축할 수 있고, 타 지역으로의 반출은 금지된다.

한편 병무청은 파주 및 연천 지역의 현역병 입영 또는 사회복무요원 소집 등 병역의무이행 통지서를 받은 사람들은 본인이 원할 경우 복무를 늦출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ASF 확산 방지를 위해 19일부터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 파주·철원 구간 운영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군은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해당 지역의 야외 부대훈련을 잠정 연기할 방침이다.

“야생 멧돼지 소탕으로 ASF 퇴치? 사실상 불가능”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퇴치하기 위해 야생 멧돼지를 대규모로 소탕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으며, 생태·감염·실용성·윤리적인 측면에서도 가능하지 않다.’

ASF 발생 3일째인 19일 현재까지도 발병 원인이 오리무중인 가운데 ‘대대적인 멧돼지 소탕에 나서자’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세계동물보건기구(OIE)는 “인위적으로 멧돼지 개체수를 줄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특히 야생 멧돼지의 ASF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총기포획에 나설 경우 개체수를 줄이기는커녕 바이러스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난해 OIE가 발간한 ‘멧돼지 ASF와 사냥 차단방역에 관한 편람’에 따르면 유럽에서도 개체수 조절을 명목으로 멧돼지 총기포획이나 사냥을 허용하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섬지역을 제외하곤 성공 사례가 없다. 더구나 ASF 바이러스가 이미 퍼진 상태에서 총기포획은 매우 위험하다. 총소리에 놀라 멧돼지가 달아나 서식 영역이 확대되기도 하지만, 사냥하는 과정에서 피나 살점이 튀면 이걸 매개로 다른 멧돼지까지 감염될 수 있어서다.

ASF 바이러스는 살점에서 수개월, 혈액에서 1년 이상 살 수 있다. 이 때문에 OIE는 “(살아 있는) 멧돼지 간 직접 감염보다 멧돼지 사체나 그 부산물에 의한 감염이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19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금악2교차로 앞에서 긴급 설치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초소가 운영되고 있다. 연합뉴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 감염구역 반경 50㎞ 이내 멧돼지 80%를 몰살하거나 감염 멧돼지를 4개월 안에 완전히 무리에서 제거해야 한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멧돼지가 저지대로 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기도 한다. 이 또한 바이러스의 장거리 전파를 차단하는 효과는 없다. ‘비생체접촉 매개물’에 의한 감염(오염된 구조물·도구 등에 의한 감염) 가능성 때문이다.

OIE가 제시한 가장 근본적이며 효과 높은 방법은 ‘겨울철 먹이주기 금지’다. 한국을 비롯해 유럽에서도 멧돼지가 겨울철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먹이를 주는 경우가 많다. OIE는 “겨울은 멧돼지 생존을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계절”이라며 “겨울철 먹이주기는 인위적인 개체수 조절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2년생 이상 암컷 멧돼지만 선별적으로 사냥하거나 불임수술을 하는 방법도 제안했다. 다만 OIE는 “먹이주기 금지나 암컷 멧돼지 선별 사냥 등은 효과를 보기까지 최소 3년 이상이 걸리고, 반경 100∼200㎞에 걸친 방대한 영역에서 진행돼야 한다”며 “멧돼지 불임수술은 동물복지나 환경적인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실용화단계에 이르진 못한 만큼 더 많은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포=송동근 기자, 송민섭·윤지로 기자 sd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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