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선언 전쟁"..성명서라는 '이름'의 무게

오대성 2019. 9. 2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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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時局宣言) : 현재 당면한 국내 및 국제 정세나 대세에 대한 견해를 담은 선언. 또는 그런 견해를 널리 알림. (우리말사전)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모임'…"자발적으로 모여"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제(1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대학 전·현직 교수들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을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모임', 줄여서 '정교모'라고 칭했습니다. 다소 생소한 모임명, 정교모는 조국 장관의 임명을 계기로 최근 온라인에서 생겼습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 교수모임’(정교모)이 그제(1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조국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이은주 전남대 교수는 "조직이 없어 기자회견 진행이 매우 서툰 것에 대해 널리 이해해 주기 바란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실제로 이 모임은 대표도, 홍보 담당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기자회견에는 70~80명 정도의 전·현직 교수들이 참석했는데,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조국 사퇴'를 위한 마음에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의미였습니다.

정교모가 온라인 공간을 통해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교수 서명을 받고 있다.


"'조국 사퇴'에 교수 3,396명 참여…46명의 실명만 공개

기자회견에 앞서 정교모가 주도한 '시국선언' 서명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지난 14일 선언서를 온라인에 올린 뒤 교수들의 서명을 받았는데, 동의한 인원이 급속도로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독'을 달고 일부 매체에서 기사화됐습니다. 일부 매체는 급속도로 불어나는 인원을 다른 시국선언 당시의 서명 인원과 비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년 '최순실 사태'때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전국 교수·연구자 시국선언에 참여한 2,234명보다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정교모에 따르면 18일 오후 2시 현재 '조국 사퇴' 시국선언에는 290개 대학에서 3,396명이 동의했습니다. 천 명 이상 더 많은 숫자입니다.

정교모가 시국선언에 동의했다는 290개 대학 중 46개 대학의 대표 서명자를 공개했다.


하지만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조국 사퇴' 시국선언에는 서명에 동의한 교수들의 전체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290개 대학명, 해당 대학교에 소속된 전·현직 교수 숫자, 그리고 각 대학의 대표 서명자 한 명의 이름만 나와 있을 뿐입니다. 대학의 대표 서명자 이름이 나온 곳도 290개 대학 중 46개 대학에 불과합니다. 바꿔 말하면 46명의 실명만 공개됐다는 얘기입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시국선언에 동의한 교수들의 이름 중 일부.


시국선언의 이름…책임감의 표현이자 막중한 무게감을 갖게 해

'박근혜 하야' 시국선언은 달랐습니다. 어느 대학에서 몇 명이 서명했는지 뿐 아니라 2,234명 모두의 이름이 가나다 순서 대학별로 분류돼 공개됐습니다. 어느 대학의 어느 교수가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밝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시국선언이란 단순 '글'과는 달라, 한 문장 한 문장에 뜻을 같이하고 그 선언으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까지 책임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국선언'은 4·19 혁명이나 대통령 직선제 요구와 같은 역사적 순간마다 세상에 나왔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언에는 늘 '실명'으로 또는 '얼굴'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엄혹했던 1960년 4월 계엄령 때도 전국 27개 대학 258명의 교수가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여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며 거리행진에 나섰습니다. 이처럼 시국선언을 하며 본인이 누구인지 공개한다는 건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고, 거꾸로는 그만큼 막중한 무게감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1960년 4월 25일, 258명의 교수가 시국선언을 한 뒤 거리행진에 나섰다.(자료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다음 주 주말 어떤 시국선언문을 마주하게 될까?

정교모 총괄을 맡은 연세대 이삼현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려고 했지만, 서명 공간에 엉터리 이름을 적어놓는 등 테러가 들어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하는 일을 이렇게 방해할 수가 있는지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의도적으로 누군가 엉터리 이름을 적어놓고, 방해했다면 이는 분명 문제입니다. 정교모는 서명을 방해한 사람의 정보를 수집해 업무 방해 혐의로 형사고발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시국선언의 서명을 방해하려는 자와, 실명 공개 없이 "3천여 명"이라고 밝힌 자. 그야말로 시국선언 전쟁입니다. 정교모 측은 본인 확인 등의 절차와 분류 작업을 거쳐 다음 주 주말쯤 최종 명단을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정교모는 보도자료에선 "동의자에 한해서 대학별 서명자의 실명을 전부 공개할 예정"이라며 한 발 뺐고, 이삼현 교수는 "이름을 모두 밝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주 주말 우리는 어떤 시국선언문을 마주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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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성 기자 (ohwh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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