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상층의 자기희생 없이 세대불평등 해소 불가능" 이철승 서강대 교수 인터뷰

정용인 기자 2019. 9. 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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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누가 한국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는가.’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신간 <불평등의 세대>에 붙은 부제다. 이 교수가 불평등 분석에서 잣대로 본 것은 불평등과 짝을 이뤄 제시되는 ‘계급’이 아닌 ‘세대’였다. 이 교수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계급’은 이미 불평등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세대와 한국적 위계의 착종’이 이 교수가 밝히고자 하는 한국 사회의 비밀이다.

왜, 다시 세대인가. 우석훈 박사의 <88만원세대> 이래 세대론적 시각에 대한 흔한 비판은 ‘실재하는 계급모순을 감추는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기된 흔한 반론은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불평등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세속적인 가치로 성공한 엘리트 386이 있는 반면, ‘80년대 학번’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못한 70%의 1960년대생들을 386이 대표할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그런데 이 교수가 제기하는 세대론, 정확히 말해 한국형 위계와 세대 불평등의 착종 문제는 다르다. 여러 데이터로 세대 간 불평등의 실재를 입증한다. 그리고 세대 간 불평등이 다시 세대 내 불평등의 원인이 되어 구조적 위기를 켜켜이 쌓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8월 초 책 출간 이후 언론이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 교수는 침묵했다. 기자는 책이 출판되기 전인 지난 3월, 책의 모티브가 되었던 이 교수의 논문을 바탕으로 “‘386세대의 장기독점’이 비난받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인터뷰했다. 다시 이 교수를 만나 책을 쓴 문제의식을 들어봤다. 반년 만의 인터뷰는 지난 9월 18일 서강대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김영민 기자

-책 출간 후 지난 한 달간 여러 정치 논란에 이 교수의 책이 소환되었다. 소회는.

“책은 세대와 계급, 그리고 위계의 착종 문제를 다룬 것이다.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이나 위계구조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가 책을 쓴 이유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쏙 빠지고 진영논리에 소비된 느낌이다. 한쪽에서는 책에서 필요한 부분만 가져다 쓰고 반대편에서는 책을 읽지도 않은 채 ‘세대론은 위험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책이 최근 정치 사안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대립에서 논란의 매개가 될 것이라는 건 예견됐던 일 아닌가.

“이해한다. 출판사도 그렇게 광고를 내보냈다. 책에서 한국 사회 불평등의 핵심 열쇠로 제시하는 것은 계급이 아닌 세대다. 한국 사회에서 불평등을 이야기한다면 보통 기존 운동권 용어로 자본 대 노동의 대립을 기본 축으로 본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후 1%대 99%의 대결을 갈등으로 이해한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결합노동시장지위’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고용형태가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또한 노조의 존재 여부에 따라 노동자의 처지가 달라진다. 1대 99의 문제가 아니라 20대 80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사회과학적으로는 계급이라기보다 계층에 가까운 문제다. 여기에 특정세대가 과대 대표되고 장기 지속하는 경향이 한국 사회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계급은 물론 중요한 틀이다. 노동 안의 분화, 불평등을 주요하게 보고 싶은 것이다.”

-20대 80의 문제는 마침 이 교수의 책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리처드 리브스의 <20vs80의 사회>에서도 중요한 틀거리로 제시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계급이 신분제화된 유럽과 달리, 계급 이동이 자유로울 것으로 인식되던 미국 사회에서 상위 20%를 차지하는 중·상위층이 하위 80%와 자신들 사이에 ‘유리바닥’을 치고 기회 사재기를 통해 계층 재생산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맞다.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데도 상당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책이라고 본다. 나도 기회의 세습 문제는 아직 본격적으로 작업하진 않았다. 향후 유심히 지켜볼 주제다.”

-인상적인 것은 책에서 논의하는 세대와 착종해 있는 한국 사회 위계구조의 독특성이다. 동아시아적 벼농사 시스템에서 기원하는 협업질서, 나이에 기반한 연공시스템이 그동안의 압축성장을 이끌어왔지만 이제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외국의 연구자들에게 이 독특성을 이해시키는 것은 쉬운가.

“당연히 힘들다. 나이에 따라 우선순위, 서열이 결정되는 그런 구조가 외국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이게 경제가 좋고 잘 돌아갈 때는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계급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불평등한 계급사회에서 적당히 먹고살 수 있는 것이 주어지면 대부분 불평하지 않고 산다. 청년들이 한국 사회에 분노하는 것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다. 대학까지 다 들어갔는데 잡(job)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완전고용시대, 대학 나오면 먹고살 수 있었던 시대에는 그런 불만이 없었다. 386들, 소위 586에서 74~75년생까지 이 ‘광의의 386’들이 상층 노동시장을 꽉 껴안고 있으니까 청년들이 분노하는 것이다. 이것은 계급 불평등이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으니까 공정성이나 기회의 불평등 문제가 같이 연계된 것이다.”

/ 문학과지성사

-구조개혁을 하려면 상층을 점유한 세대집단의 양보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쉬울까.

“물론 쉽지 않다. 연공제라는 임금구조가 성장기에는 문제가 안 된다. 인구구조와 맞물리면서 위기가 오는 것이다. 성장하지 않는 경제상황에선 상층을 장악하고 있는 세대집단, 386세대 상층의 자기희생 없이 불평등 해소는 불가능하다. 세대 네트워크가 과잉화된 조직이 어떻게 망가질 수 있는가 굳이 찾지 않아도 쉽게 사례가 발견된다. KBS 부채가 지난해 6000억 원이 넘었는데 구성원의 52%가 연봉 1억원 이상이다. 그게 다 국민 세금이다. 공조직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역삼각형 조직이다. 민간영역에서도 대기업이 만든 패턴이다. 연공제와 세대 네트워크가 결합한 구조적 위기다. 이것을 다 같이 풀어야 한다. 위부터 바꿔야 한다. 예컨대 대통령 연봉이 2억4000만원이다. 그것부터 줄이고 전체적으로 다 같이 줄이자고 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임금피크제를 하기 싫다면 전체 기울기를 다 같이 낮추면 된다. 연공제를 다시 디자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가능하다. 어떻게 하면 최상층과 상층 20%가 조금 덜 받고 그 아랫사람들을 고용하는 사회를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 생산성에 비해 노동소득분배율이 오르지 않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거꾸로 뒤집혀야 한다. 비정규직은 내 회사가 아니니 시킨 일만 하고 만다. 위로 올라갈 수 없는데 뭐하러 일을 열심히 하나. 그러니 ‘소확행’이 무서운 것이다. 스스로 열심히 일을 해서 이상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하고 말자는 것이다. 반면 정규직은 어차피 이만큼만 일해도 연공임금이 딱딱 나오고 60세까지 보장되어 있는데 뭐하러 목숨 걸고 일을 하겠는가.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뉜 노동시장이 생산성이 안 올라가는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시장 권력의 ‘386 독점’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세대로 리더십이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책에서 주장하고 있다.

“386들이 다 쥐려 하지 말고 밑의 세대에게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386들은 밑의 세대들은 모르니, 우리만 고생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내가 만나본 바로는 그렇지 않다. 밑의 세대, 지금 크는 세대가 우리 세대보다 어떤 사안이나 스킬을 더 빨리 이해한다. 그 세대가 클 수 있는 통로나 공간을 우리가 만들어줘야 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세대 자녀들만큼 외국여행을 많이 간 경우가 없다. 삶의 기대치는 이렇게 올라가 있는데, 자기는 자기 아버지만큼은 죽어도 못산다는 것이 젊은 세대의 인식이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김영민 기자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불평등이 세습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보다 쉬운 것이 자산을 통한 세습이고, 이제 현역에서 은퇴한 산업화 세대들의 자산 세습이 흙수저·금수저라는 세습 불평등을 만들어냈다는 것인데.

“세습은 피케티도 이야기하는 것처럼 전세계적 문제다. 엘리트가 자기재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놓으면 어느 순간부터 중세로 회귀하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사회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깨지 않으면 생산성이 퇴화하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계급 불평등이 신분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쳐 부동산을 매개로 자산 축적을 한 세대가 산업화 세대다. 지표를 보면 386은 현금이 많다. 아직도 벌어들이고 있다. 산업화 세대의 패턴을 보면 퇴직을 전후로 자산투자를 하고 퇴직 직후 자식들이 출가할 때 아파트 한 채씩 사주면서 자산을 줄인다. 인생의 마감이 예측되는 80대 정도에 이르면 그때부터 증여를 시작한다. 다시 말해 ‘60대에 자산 정리, 80대에 자산 처분’ 식으로 밑으로 내려보낸다. 산업화 세대는 연금이 많지 않으니 부모가 자산을 처분하는 식으로 대처한다. 물론 산업화 세대 중 상위 10~20%는 물려줄 것이 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어떻게 내려보낼까를 고민한다. 보통은 팔고 다른 싼 데로 가서 현금화해서 물려주려고 한다. 자식에게 펀드를 들어줘서 펀드를 불리는 식으로 증여투자 방식이 있을 텐데,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이 동향이 잘 안 잡히는 것이 아쉽다. 투명하게 신고되는 것은 아니니까.”

-흥미로운 것은 이제 386세대도 이 자산 세습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표가 보여주는 것은 386들이 저축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현금이 많다. 이제 막 퇴직을 했거나 퇴직을 앞두고 있다. 386세대를 놓고 보면 자산 축적에서 두 번의 기회가 왔다. 2000년대 중반과 그리고 현재다. 둘 다 진보정권 시기였다는 공통점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한국 사회의 위계를 다룬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계획도 있는가.

“한국 사회 위계를 다룬 책은 절반 정도 썼다. 그 다음은 ‘창업의 사회학’을 써보고 싶다. 같은 문제의식이다. 창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제도를 어떻게 세팅할 것인가. 네트워크를 통해 벤처캐피털을 끌어모으는 지금까지의 한국식 IT 창업 모델 말고, 진짜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기반한 모델이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미래는 그런 데 있다. 학계나 국가의 역할도 새로운 세대의 창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고, 교육의 내용도 그런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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