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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의사면허'

류인하 기자 입력 2019.09.21. 15:10 수정 2019.09.21. 15:14

[경향신문] 수술실은 늘 위험하다. 생존율이 높은 수술을 해도 환자는 사망할 수 있다. 환자 개개인의 체질이나 기저질환이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 법은 수술실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의료행위에 대해 의사의 명백하고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처벌을 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단 한 가지 조건, 의사는 늘 환자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환자가 사망했다면 의사의 책임은 면할 수 있다. 어차피 피부를 가르고, 뼈를 자르는 모든 행위들은 사망 가능성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Pixabay@Darko Stojanovic

유령수술한 의사도 사기죄가 전부

그런데 모든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환자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령수술’이다. 현재까지 확립된 정의에 따르면 유령수술이란 환자가 자신을 집도할 것으로 알고 있는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집도하는 일련의 의료행위를 말한다. 환자는 당연히 자신이 상담한 의사가 집도한 것으로 끝까지 믿는다. 수술실에 녹음기를 가져가거나 수술실 내 폐쇄회로TV(CCTV)를 확인하지 않는 이상 환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의사가 자신을 집도한 사실을 알 수 없다. 환자의 정확한 신체상태와 문진을 통해 습득한 지식이 없는 의사가 환자의 몸에 칼을 대는 행위는 그 자체로 상해(폭행) 또는 살인(사망의 결과를 가져왔을 경우)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의료계와 법조계에서 일부 나오고 있다. 다만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현재까지 유령수술을 한 의사에게 검찰이 기소한 죄명은 ‘사기죄’가 전부다(과실치사상죄는 별론으로 한다). 환자에게 사기를 치고 의사 바꿔치기를 했으니 사기죄라는 것이 검찰의 논리이고, 법원도 별도의 공소장 변경 요청을 한 전례가 없다. 유령수술로 사람이 사망했더라도 과실치사일 뿐 살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렇다면 수술실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성폭력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일단 적발 자체가 어렵다. 환자는 이미 수면마취로 의식을 잃은 상태이고, 그 환자를 놓고 의료진이 신체를 폄훼하거나 성희롱, 나아가 유사강간 행위를 해도 당사자는 알 방법이 없다. 설령 성폭력 혐의가 인정돼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의사면허는 그대로 유지된다.

2007년 경남 통영에서 의원을 운영하던 의사가 수면내시경 치료를 받으러 온 20~30대 여성환자 3명을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의사는 수면내시경 치료가 끝난 뒤 환자에게 전신마취제를 주입, 환자가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강간을 해 1심에서 징역 7년,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해당 의사는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역을 옮겨다니며 병원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자신의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를 19살 때부터 12년간 성폭행하고 알몸을 촬영해 협박하는가 하면 신체포기각서까지 작성하게 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의사가 버젓이 병원을 운영하는 것에 항의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의료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범죄자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의사면허를 박탈할 근거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정숙 의원(민주평화당)이 지난해 12월 경찰청 자료를 토대로 발표한 ‘성범죄 의사 검거 현황’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137명에 달했다. 2015년 109명, 2016년 119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이들은 의사 가운을 벗지 않는다. 우리 법 어디에도 이들에 대한 의사면허 취소를 명문화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면허취소 돼도 재교부 신청 가능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을 일부 개정, 공표하면서 ‘진료행위 중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 1항 제3호의 죄(강간, 강제추행, 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등)를 범한 경우 12개월의 자격정지’를 명시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자격정지에 불과하다.

한 현직 내과 전문의는 “멀쩡히 잘 운영하던 병원을 접고 갑자기 유학을 떠난다고 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니 그런 짓(성범죄)을 저지른 경우가 몇 번 있었다”면서 “병원 운영을 할 수 없으니 공부를 핑계로 해외로 나가는 건데 우리들이야 암암리에 다 알지만 환자들이야 알 방법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의사 가운을 입은 범죄자들이 처음부터 버젓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이 무방비였던 것은 아니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형사범죄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형의 집행이 확정된 자에 대해서도 면허취소가 가능한 조항이 명시돼 있었다(구 의료법 제8조 1항 제5호). 그러나 규제정비계획의 일환으로 면허취소 대상 범죄를 ‘형법’상 허위진단서 작성 등 직무 관련 범죄 및 보건의료 관련 범죄로 축소하는 형태의 의료법 개정이 2000년에 이뤄지면서 이 법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회 관계자는 “당시 의약분업으로 성난 의사단체를 달래기 위한 일환으로 이 같은 개정이 이뤄진 것으로 짐작된다”고 했다. 그 결과 의사는 서류조작 등 업무 관련 범죄 외 살인, 강간, 강도 등 범죄를 저질러 형사처벌을 받아도 의사면허만큼은 지킬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강기정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현 정무수석)이 2007년 의사면허 취소 관련 의료법 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이후 김상희·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장정숙 민주평화당 의원 등도 유사한 법률안을 발의(2018년)했으나 지금까지 모두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일단 면허취소가 됐더라도 되살리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현행법상 의료인은 면허취소가 되더라도 1~3년 안에 재교부 신청을 하면 대부분 다시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남인순 의원이 발표한 2015년 1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 및 결과 자료에 따르면 재교부 신청 41건 가운데 40건이 승인(97.5%)을 받았다. 결국 어느 정도 자숙한 뒤 신청하면 다시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면허취소에서 재교부까지 걸린 기간은 길어야 5년, 짧으면 2년 이내였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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