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학생들 "조국 장관 사태로 '학력 계급화' 심각함 느꼈다"

오연서 입력 2019. 9. 21. 21:36 수정 2019. 9. 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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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대신 '○○상고', '○○공고', '덜 배운 애'라고 부른다"
"'대학 안 나온 것 티 내는 것도 아니고.." 등 학력 차별 폭언 여전
특성화고학생권리연합회 "유은혜 교육부 장관 만납시다" 제안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의 주최로 열린 ‘특성화고 학생, 졸업생들이 고졸 차별 없는 공정한 출발선에 대해 말한다!’ 토론회에 참여한 한 특성화고 학생이 발언하고 있다.

서울의 한 특성화고에 다니는 윤아무개(17)군는 최근 전문대에서 4년제 대학교로 진학 계획을 바꿨다. 군인이 꿈이었던 윤군은 애초 대전의 한 전문대 특수부사관과에 입학이 목표였다. 그러나 한 학기 만에 계획을 바꿔야 했다. 학교 선배들이 윤군에게 “아르바이트를 할 때조차도 사람들은 고졸 출신과 대졸 출신을 차별한다. 일을 가르쳐 줄 때 ‘고졸 출신이라 그것도 못하냐’고 말하기도 한다”고 토로했기 때문이다. 취업한 학교 선배들은 “같은 일을 하는데도 실력이 부족한 신입 대졸 직원이 우리보다 연봉이 높다. 10년 넘게 일해도 성과가 훨씬 좋은 우리 연봉이 대졸자의 연봉보다 적다”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학력을 기준으로 지나치게 계급화됐어요. 중졸, 고졸, 학점은행제 출신, 전문대졸, 대졸 등. 학력이 높지 못하면 사회에서 주어지는 발언권도 너무 적고요. 고졸 출신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면 결국 4년제 대학을 졸업해서 발언권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연합회)가 주최해 열린 ‘특성화고 학생, 졸업생들이 고졸 차별 없는 공정한 출발선에 대해 말한다!’ 토론회에 특성화고 학생들과 졸업생 20여명이 모여 한국 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는 학력과 학벌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성토했다. 이들은 “특성화고 학생들이 입학과 졸업, 취업에서 모두 차별받는 현실에 놓여 있다”고 입을 모았다.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의 주최로 ‘특성화고 학생, 졸업생들이 고졸 차별 없는 공정한 출발선에 대해 말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이들은 특히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특혜 의혹’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학력 계급화’가 심각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뒤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는 정태현(19)씨는 “(조 장관의 딸 입시 특혜 의혹을 보며) 우리 사회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정당하게 해주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며 “특성화고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군의 사람들이 노력에 따라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성화고 학생 윤군도 “조 장관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 계층인 데다 권력을 쥔 사람”이라며 “그의 자녀는 결국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 엘리트로 양성되지만, 고졸 출신들은 여전히 사회에서 무시를 당하는 현실을 보면서 ‘계급의 대물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토론회에선 직장에서 특성화고 출신들을 차별하는 행태가 여전히 만연해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지난 4월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다는 ㄱ(19)씨는 “취업하자마자 직장에서 마주한 건 희망이 아닌 차별이었다. 나 같은 고졸 신입은 11급, 대졸 신입은 8급으로 입사했다”며 “10년 동안 일해도 고졸 사원은 여전히 9급 사원이고 대졸 신입직원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에서는 나같은 특성화고 출신들을 이름 대신 ‘○○상고’, ‘○○공고’, ‘덜 배운 애’ 이렇게 부른다”며 “한 면접관은 ‘고졸 출신들이라 차별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직접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천의 특성화고 공무원반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ㅅ(17)양은 “공무원반을 졸업한 선배들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고졸 특채면 낙하산 아니야?’ ‘대학 안 나온 것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일을 못 해?’라는 폭언을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털어놨다. 인천의 한 특성화고 3학년인 ㄱ(18)군도 “지난해부터 ‘산학일체형 도제학교’에 참여하면서 다니게 된 직장에서 ‘머리는 뒀다 뭐하느냐’ ‘안 되면 되게 해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학교에다 문제를 제기해도 업체로부터 ‘찍힌다’고 제대로 조치도 안 해준다. 다른 회사로 가고 싶어도, 이전 회사에서 좋지 않은 평을 내릴까 봐 무서워서 퇴사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스퀘어에서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의 주최로 ‘특성화고 학생, 졸업생들이 고졸 차별 없는 공정한 출발선에 대해 말한다!’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학생 및 졸업생들이 사회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종이에 적어 벽에 붙였다.

연합회는 이날 지난 7월9일부터 22일까지 전국 공업고등학교 학생 4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실습 환경 관련 설문조사 결과도 발표했다. 설문조사 결과, 실험이나 실습 때 안전장비를 항상 지급받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마스크(25%), 장갑(39%), 보안경(32%), 차광면(25%), 안전모(25%), 귀마개(16%) 등으로 모두 40% 이하였다. 작업복만 53%를 기록해 겨우 50%를 넘겼다.

열악한 실습환경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건강도 해쳤다. 실습할 때 ‘현기증이 나거나 머리가 아프다’(58명)거나 ‘눈·코·목이 따갑다’(41명)고 답한 학생들이 많았고, ‘가슴이 답답하고 기침이 난다’(36명), ‘피부가 가렵거나 트러블이 난다’(32명)는 학생들도 있었다. ‘잠시 의식을 잃은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도 1명 있었다. 한 여학생은 “작업복이 없어서 치마를 입고 납땜 하다가 인두기가 허벅지에 닿아 화상을 입을 뻔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안전하고 쾌적한 실습환경을 위해 공기청정기나 환풍기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휴게실이나 샤워실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 이사장은 “조 장관의 임명과 관련해 불공정한 입시제도를 비롯해 특권의 대물림 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됐다. 한국 사회는 고교 서열화만이 아니라 학력 서열화가 지배하고 있다”며 “특성화고 학생 및 졸업생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고졸 차별 없는 공정한 출발선을 위한 교육의 실현 방안 마련을 위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의 만남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글·사진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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