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세계일보

줄곧 화성에 거주했는데, 경찰은 왜 못 잡았나

권구성 입력 2019. 09. 22. 15:31 수정 2019. 09. 2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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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미제사건이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 모(56)씨가 사건이 발생했던 화성 일대에 장기간 거주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가 경찰 수사를 어떻게 피할 수 있었는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씨는 1∼10차 사건이 벌어지는 약 5년간의 세월을 범행 장소 인근에서 살았지만, 경찰 수사망은 그를 비켜갔다.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의 모습. 뉴시스
◆용의자, 사건 현장 인근 거주하고도 경찰 수사망 벗어나

2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씨의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다. 이씨는 이곳에서 태어나 1993년 4월까지 화성 일대에 살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1986∼1991년 발생했던 점을 고려하면, 이씨가 23∼28세까지 범행을 저지르고 30세까지 이곳에 거주하다 청주로 이사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씨가 경찰에 붙잡힌 것은 1994년 1월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인한 사건이 발생하면서다. 이 사건으로 이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씨가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후에도 범행을 저지르다 붙잡혀 징역형까지 선고받았지만, 경찰이 그의 실체를 포착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당시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이 사건을 위해 동원된 경찰 병력만 205만여명에 달했다. 당시 사건의 신속한 해결을 주문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자, 경찰은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 24시간 경계 근무 체계에 돌입하기도 했다. 용의자에게는 당시로서는 최고액인 5000만원의 현상금이 걸렸고, 1992년까지 누적된 수사비만 5억400만원에 달했다.

지금까지 2만1280명이 경찰의 수사선상에 올랐고, 4만116명이 지문까지 대조했지만 이씨는 경찰의 수사망에 포착되지 않았다. 사건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당시 사건을 맡은 수사팀이 무당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사건 당시 용의자 혈액형, 이씨와 달라

이런 상황에도 경찰이 이씨를 포착하지 못했던 것은 혈액형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DNA 판독에서 이씨의 혈액형은 O형으로 파악됐는데, 사건 당시 경찰은 용의자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다. 이는 4, 5, 9, 10차 사건에서 범인의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토대로 판단한 결과였다. 

이씨가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인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을 때, 경찰이 이씨를 수사할 기회가 있었지만 관할권 문제로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는 이씨의 처제 살인사건을 접하고 청주 경찰에 “혹시 몰라 이씨를 한번 조사할 테니 화성으로 이씨를 데려와 달라”고 요청했지만, 청주 경찰은 “여기 수사가 우선이니 필요하면 직접 데려가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수사본부는 이씨에 대해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 수원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의 모습.  뉴시스
◆경찰, 언론 대응에 소극적…피의사실공표 의식하나

유력한 용의자가 이씨로 지목된 상황에서도 여러 의문과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경찰이 사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경찰은 이씨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 경찰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언론 브리핑을 열었을 때도 두장 분량의 보도자료 외에 별다른 입장이나 질의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사실상 경찰이 내놓은 입장은 이씨의 DNA가 범행현장 3곳의 증거물 흔적과 일치한다는 점이 전부였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씨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뒤에도 함구령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에 대한 수사도 극히 일부 수사팀만이 상황을 공유하면서 은밀하게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불거지자, 경찰이 이를 의식해 언론 대응에 소극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경찰은 이씨의 신상도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밝히지 않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씨의 실명까지 보도됐지만, 경찰은 이씨의 성 외에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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