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직격인터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인가" 수치심 느꼈다

김승현 2019. 9. 2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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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시국선언 교수 '다단계'식 확산
'가짜서명' 걸러내 5천명 넘은듯
조국의 '소명'은 지식인의 교만
청년 상실감과 불신 국가적 손해

교수들은 왜 거리로 나왔나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시국선언 교수 서명이 확산되는 이유로 ’조국 장관의 부조리와 모순, 위선과 부(不)정의에 대한 교수들의 부끄러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지난 19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 50여명의 교수들이 모여들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전·현직 교수들의 장외 집회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사회 정의와 윤리가 무너졌다!’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에 서명한 교수들이었지만 이들은 따로 구호를 외치진 않았다. 다른 정치 집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교수들은 3열 횡대 비슷하게 섰다. 맨 앞줄은 조 장관 사퇴를 주장하는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었다. ‘정의는 죽었다. 謹弔’ ‘후안무치 조국 임명 철회!’ ‘조로남불 조국 OUT’ 등의 글이 일관성 없는 폰트로 인쇄돼 있었다. 한 교수는 ‘스펙 없어 아들 재수시킨 나쁜 교수’라는 ‘자기소개’ 문구를 들고 조 장관 자녀의 특혜 의혹을 비판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 모임(이하 정교모)’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지만, 대표자나 실무진이 없었다. 기자회견은 10명 안팎의 교수가 차례로 3분 정도의 주장을 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전남대 이은주 교수는 “저희가 조직적인 모임이 아니어서 사회자와 발언자 모두 문자를 통해 급하게 정했다. 진행이 서툰 점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예정됐던 시국선언 서명 교수 명단 발표는 연기됐다. 모바일 서명 중에 학교와 이름 등이 허위인 ‘가짜 교수 서명’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교수들은 “누군가의 악의적인 방해”라면서 1주일 여의 정리 시간을 거쳐 최종 명단을 발표하기로 했다. 이삼현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는 “각 대학 대표 서명 교수를 통해 확인 작업을 어느 정도 했다. 290개 대학 전·현직 교수 3396명은 서명에 참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명은 더 늘고 있으며 정확히 확인해 최종 발표를 하겠다”고 설명했다.

‘미완의 시국선언’은 엉성하지만 절박해 보였다. 교수들은 왜 거리로 뛰쳐나왔을까. 참가 교수 몇 명을 인터뷰했다. 경기대 대표 서명자로 이름을 올린 조성환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여간해선 움직이지 않는 교수들이 나선 것은 조국 장관의 부조리와 모순, 위선과 부(不)정의에 대한 부끄러움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Q : 청와대 앞까지 나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A : “대개 정치성이 있는 활동은 견고한 조직을 통해 이뤄지는데, 뜻을 가진 몇 명이 문제 제기를 하자 급속도로 퍼졌다. ‘이렇게 타락했는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나라인가’라는 수치심과 자존심 손상을 느꼈기 때문이다. 국민이 교수들을 어떻게 볼까 하는 미안함과 반성, 참회의 필요성도 생각한 것 같다.”

Q : 기자회견 이후 분위기는 어떤가.
A : “예상보다 큰 반응이 나오니까 중요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한 편으로는 걱정이 앞선다고 한다. 정의와 상식과 도덕을 다시 찾고 싶어하는 열망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가이드 해야 할까 하는 걱정이다.”

Q : 지식인 사회에도 책임이 있나.
A : “한국의 지식인은 좌파든 우파든, 스스로 얼마나 타락했는지 반성할 게 많다. 지식층이 고유의 역할로 자율적 지위를 가지려는 게 아니라, 패거리 정치에 붙어서 지위와 돈을 챙겼다. 이런 사태를 방치·방조했거나 조장했다는 점에서 자유롭지 않다.”

Q : 조 장관은 ‘앙가주망(지식인의 정치 참여)’이라고 하는데.
A : “조국의 앙가주망은 비판적 참여라는 절제된 게 아니라, 사실은 권력적 참여다. 사회를 내가 생각하는 대로 변경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공화국이 가진 견제 장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된다.”

Q : 법무부 장관이 ‘소명’이라고 주장한다.
A : “공부 제대로 안 한 마르크스주의자가 그런 식으로 말한다. 근대 이후 지식인들이 권력과 행정의 전면에 나서면서 ‘내가 변화의 선봉이 돼야 한다’며 그것을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결국 전체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었다. 건방진 지식인이 세상을 자기 뜻대로 만들 수 있다는 교만을 부린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논리적 구상으로 현실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려고 하는 것은 폭력이다.”

Q : 정치적 대립이 격화하고 있는데.
A : “민주화 이후 지식인과 정치는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타락했다. 계파로 권력을 잡은 정치권은 국가를 위한 통치가 아닌 계파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한다. 좌든 우든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운다. 특히 좌파는 교언영색(巧言令色·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민다)을 하면서 안에서는 더러운 타락을 했다. 깨끗하고 진보적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상대방을 탐욕주의자로 몰았는데, 결국 탐욕의 수준과 내용이 동일하다. 한국 사회가 과대성장하면서 그에 걸맞은 의식, 정치 윤리 등이 못 따라가는 현상이다.”

Q : 왜 이렇게 됐을까.
A : “국가의 정체성, 정치의 본질은 없어지고 권력 다툼이라는 현상만 남았다. 이념적으로 포장된 양극화 현상은 엄청난 근본주의적 투쟁 양상이 됐다. 타인을 비방하면 내가 참이 된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공적으로 경쟁한다고 해서 개인적으로 원수가 될 필요는 없는데, 공적으로는 전쟁하는 적이 되고 개인적으로는 원수가 된다.”

Q :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A : “정치의 중심이 검찰의 행보에 의존하는 것은 정치의 실종이다. 정치학자로서 보기엔 불행한 일이다.”

Q : ‘가짜 서명’이 논란이 됐다.
A : “간단한 온라인 서명 시스템이어서 오염 가능성이 있기는 한데, 90% 이상은 교수들의 진정성 있는 서명이다. 그걸로 시비 걸려면 걸라고 해라. 숫자는 더 늘고 있다. 진보 좌파의 위선과 비상식, 그것으로 권력을 잡고 교만하게 구는 것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큰 것이다.”
지난 19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민현식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대한민국에 거짓말이 산처럼 쌓이고 있다. 각오를 새롭게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교수들은 이번 시국선언을 ‘보수 vs 진보’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교수들이 알음알음으로 문의해 오면 서명을 알려주는 식의 ‘다단계 서명’이 이뤄진 것도 그래서다. 이번 시국선언의 실무를 맡은 한 지방대 교수는 실명 공개를 원치 않았지만, 그간의 상황을 설명했다.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수업이 많아 집회에는 못 갔다. 수업을 빼면서까지 청와대 앞에 가는 것은 이번 시국선언의 명분에 안 맞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Q : 시국선언문은 누가 썼나.
A : “집단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초기에 서로 돌아가며 이것저것 고치는 식으로 만들었다. 시작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다단계, 점조직식으로 울컥하는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일이다. 대표 e메일도 이번에 새로 만들었다.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저 역시 그렇게 움직인 사람 중 한 명일 따름이어서다.”

Q : 그래서인지 모인 교수들이 서로를 잘 모르던데.
A : “진짜 우발적인 모임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도 책임 있게 답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대학 관련 일은 교수들이 잘 안다. 그런데 조 장관이 대학교수로서 해서는 안 되는, 대학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일을 하고서도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것에 공분이 있었던 것 같다.”

Q : 최종 서명자는 몇 명쯤으로 예상하나.
A : “악의적으로 허위 서명을 한 사람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일부는 잘못했다고 ‘반성문’을 써서 보내기도 한다. 정확하게 확인해야겠지만 서명 숫자는 하루 1000명 정도씩 늘고 있다. 이미 5000명은 넘은 것으로 본다.”
서울대의 대표 서명 교수로 이름을 올린 민현식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마치 세(勢)를 불리듯이 교수들에게 서명을 권할 성질의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진행해도 마음속에 담겨 있던 반응이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청와대 앞 발언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거짓말의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에 나왔다”고 말했다.

Q : 시국선언에 서명한 이유는.
A : “거짓말이 산처럼 쌓이고 있다. 대한민국이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정체성과 정통성을 지켜야 할 공직자·법조인·교육자들이 중요하다. 사인(私人)은 실수할 수 있지만, 공직을 가진 사람은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선을 넘었을 때는 스스로 용퇴를 판단해야 한다.”

Q : 조국 장관은 사퇴해야 하나.
A : “국가의 기준에서 미흡하다고 할 때는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 과거엔 의혹만 있어도 스스로 자진 사퇴했던 것을 생각하면, 끝까지 가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에도 부담이 된다. 국민도 힘들게 하고 있다. (사퇴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선악과 진위에 대한 분별력을 상실하게 되고, 교육 현장에서는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감이 커져 국가적 손해가 될 것이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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