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지도자의 말과 행동엔 울림이 있어야 한다

정재홍 2019. 9. 23.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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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면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전 정권에서 비선 실세 의혹이 불거진 청와대 비서관들의 교체 요구에 대해 “의혹을 받았다는 이유로 내치거나 그만두게 하면 누가 내 옆에서 일하겠느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을 연상시킨다. 검찰 조사를 통해 각종 의혹이 새로 불거지며 국민 다수가 장관 임명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문 대통령은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민심을 외면한 조국 임명 강행은 국민을 실망하게 하고 분노하게 하였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더는 감동을 주지 못하고 대통령의 독선과 언행 불일치를 상징하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그 결과 대통령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지난 17~19일 실시)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인 40%를 기록했다. 부정 평가는 53%로 갤럽조사에서는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문 대통령의 독불장군 행보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대비된다. 아던 총리는 지난 3월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 사원에서 발생한 뉴질랜드 사상 최악의 테러(50명 사망)를 맞아, 보복을 외치는 대신 이슬람 사회의 슬픔에 공감하는 말과 행동을 보여줬다. 이슬람 여성이 쓰는 히잡을 쓴 채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며 위로하고, 유족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줬다. 그의 언행은 테러의 충격에 빠진 국민을 하나로 묶고 전 세계에 영감을 주는 지도자로 우뚝 서게 했다.

대한민국은 조국이라는 블랙홀에 사회의 주요 이슈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지금이 온 나라가 조국 장관에 관심을 집중할 때인가. 경제는 올해 1%대 성장을 예상할 정도로 고꾸라지고,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사회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으로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앞날에 먹구름이 잔뜩 끼였고, 청년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어 미래에 희망을 갖기 어렵다.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 발사로 안보는 위태롭고, 6·25 이후 한국을 지켜왔던 한·미 동맹은 약화하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로 일본과의 관계도 최악이다. 정치는 진보·보수로 갈라져 타협 없이 대치하고, 젠더 갈등이나 세대 갈등, 계층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대통령은 국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독선으로 치달으며 국민을 더욱 분열시키고 있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울림 있는 말과 행동으로 국민을 하나로 묶고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처칠은 2차 대전 때 “나는 피, 수고, 땀, 눈물밖에 바칠 것이 없다”는 말과 확고한 의지로 국민을 감동하게 하고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문 대통령은 더는 조국 임명을 고집해 국민을 좌절시키고 분노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순자는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독선과 불통으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던 박근혜 정권이 촛불 시위로 무너지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조국을 퇴진시키고 한국이 맞닥뜨린 위기 해결에 집중해야 한다. 핵심 지지층의 이해에만 매달리는 게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뜻을 받드는 대통령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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