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소주성 비판하면 오보? 반박자료 쏟아내는 정부

김도년 2019. 9. 23. 00: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성장커녕 분배도 해결 못한 정책
국민에 설명 않고 "외부 탓" 변명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으로 경기 하강 폭을 키웠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름"

기획재정부는 지난 21일 경기 하강 국면에서 소득주도 성장(소주성) 정책을 펴 경제에 더 큰 부담을 줬다는 취지의 언론 보도에 이렇게 해명했다. 기재부는 보도참고 자료에서 "소주성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나아갈 방향"이라고도 했다. 기재부는 지난달 27일에도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 언론 기고에 대해 비슷한 논리의 반박 자료를 내기도 했다.

언론이 지적하는 '의견'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례적이지만, 문제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점이다. 정부 정책의 취지와 경과, 당위성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긍정적 효과만을 강조하는 소주성은 학계에서도 논란거리다.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는 올해 2월 학술대회에서 "소주성은 시장 균형 임금 결정에 정부가 과다하게 개입하는 반시장적 성격이 있다"며 "'탈 수출, 내수 지향' 정책은 제품 경쟁력과 성장 동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지난해 11월 콘퍼런스에서 "(소주성) 시도는 분배와 성장 모두를 실패로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설비투자(9개월)와 수출(9개월)은 수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정부가 '믿었던' 민간소비조차 지난 7월부터 마이너스(-0.3%)로 돌아섰다. 올해 2분기 소득 분배도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의 지표(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 5.30배)를 보였다. 중산층(중위소득 50~150% 가구) 비중도 올해 2분기 58.3%를 기록,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쯤 되면 정부는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왜 2년 넘게 추진한 소주성 정책이 성장은 물론 분배조차 해결하지 못했는지를 말이다. '지난 정권'부터 지표가 나빠졌다는 얘기는 정치권에서 듣는 거로 족하다. 세계 경기 동반 부진과 미·중 무역분쟁 등 모든 게 대외 변수 탓이고 고령화하는 인구 구조 탓이라면 정책 당국자는 왜 존재하는가. 국민이 경제 주무부처가 낸 자료에서 보고 싶은 것은 해결책이지 변명이 아니다.

물론 정부는 소신을 갖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학계와 언론도 정책에 이견이 있을 땐 정부를 비판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비판과 견해가 다르면 사실과 논리로 소통하면 된다. 하지만 정책을 비판할 때마다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동안 줄곧 소주성을 비판해 온 학계와 언론의 주장을 '가짜뉴스'로 치부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아예 눈과 귀를 닫겠다는 오만한 태도다.

정부가 학계·언론의 소주성 비판을 듣기 싫다면 참고할 보고서가 있다.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 결과 최저임금 동결을 가장 강하게 요구한 계층은 임시·일용직(41%), 10인 이하 영세 사업장 종사자(44%)였다. 2년도 넘게 소주성을 흔들림 없이 추진했다면, 정부의 선의는 충분히 전달됐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의 선의에 가장 불안을 떨고 있는 사람들이 취약 계층이라면, 이젠 좀 고집을 버릴 때도 되지 않았는가. '면피성' 자료를 제작할 시간에 정책을 가다듬고 대안을 제시하길 바란다.

김도년 경제정책팀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