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 칼럼]'기후악당국가' 대한민국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입력 2019. 9. 23.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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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는 기후변화로, 기후변화는 다시 기후위기로 바뀌었다. 빙하가 녹아내리고, 남태평양의 키리바시국과 인도양의 몰디브 같은 섬나라들은 바닷물에 가라앉게 되자 인근 섬을 매입했다. 몇 년 안에 전 국민을 집단 이주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홍수가 빈발하고, 대규모 산불이 곳곳에서 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북극곰이 사라진다고 해도, 폭염의 여름을 견디면서도 기후위기를 실감하지 못한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을 때 잠시 환경의 중요성을 생각하다가는 기후위기에 대해서는 잊는다. 기성세대는 기후위기에 대해서 아무래도 둔감하다.

그러다 지난 3월에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지난 3월15일 세계 105개국, 1650곳에서 청소년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날 광화문에서 청소년들이 학교를 결석하고 시위에 나섰다. 그들은 ‘멸종위기종 전시’라고 써 붙인 팻말 뒤에 나란히 섰다. 자신들이 곧 멸종위기에 몰린 종이라는 것이었다. 수십년 내에 닥칠 기후재앙으로 자신들은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되었는데 기성세대들은 너무 안이하다는 것이다. 그랬던 그들이 다시 오는 9월27일 세계의 청소년들과 연대하는 기후 파업을 벌인다. 학교를 가지 않고 광화문 일대에서 기후위기를 알리는 비상행동에 나선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의 주창자인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는 2003년생이다. 그는 2018년 8월 스웨덴 국회 앞에서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시위를 벌였다. “저는 어른들이 우리 미래를 망치고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그의 이 시위는 급격하게 세계로 번져갔다. 이 시위가 준 영향으로 유엔은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열기 전 지난 21일 ‘청년 기후정상회의’를 열었다. 여기에는 툰베리를 비롯한 세계에서 온 수백명의 청소년들이 참가했고, 우리나라도 4명의 대표단을 파견했다.

이 칼럼을 쓰는 시간 유엔에서는 기후행동 정상회의가 열릴 것이다. 그 회의가 어떤 합의를 이룰지는 아직 모른다. 과연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에 각국 대표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할까? 특히 세계 4대 기후악당국가로 지목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어떤 약속을 내놓을까?

그레타 툰베리를 비롯한 청소년들은 2030년에 주목한다. 과학자들은 산업혁명 이후 지구의 온도가 1.5도 높아지는 정도에서 멈추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온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그해에 2도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0.5가 무슨 대수냐고 하지만 1.5도는 지구가 유지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이 마지노선을 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탄소 배출 제로를 실행해도 늦는다. 그만큼 지구의 기후위기는 심각한 상황인데 우리는 너무 느긋하다.

기후위기는 단지 더운 여름과 홍수와 산불, 빙하가 녹아내리는 일로 그치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인류가 겪어온 어떤 인권침해보다 더 심각하고 광범위한 인권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아프리카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발생한 분쟁으로 40만명 이상이 죽었고, 2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이 분쟁의 배후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가뭄과 사막화가 크게 작용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생명권-건강권-생계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분쟁과 폭력이 증가하면서 약자들에게 심각한 기후 차별을 부여하고, 이는 곧 법치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의 파괴로 이어진다고 인권전문가인 조효제 교수는 역설한다.

기후위기는 곧 인류 문명 자체를 파괴할 것이다. 지금 청소년들은 백세 시대가 아니라 당장 10년 뒤에도 생존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후세대가 살 수 없다면 인류의 멸종이 아닌가. 이런 위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위기다.

기후위기의 주범은 이산화탄소다. 산업혁명 이후 주로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이전과는 달리 급격하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었고, 이로 인해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는 앞으로 1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기준과 비교해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한 각 나라의 계획을 만드는 중요한 회의다. 세계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제로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한다면 이 목표는 실현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박근혜 정부에서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7%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 세계 탄소 배출량 7위를 기록하는 고탄소배출국가, 그래서 기후악당국가로 지목되기도 한 나라치고는 목표도 너무 느슨하고, 그 목표조차 이루기 위한 정책 수단도 구체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는다.

안이한 정부와 달리 시민사회는 9월21일, 전 세계적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나섰다. 태풍이 몰려오는 중에도 시민들은 모였고, 이번주 결석투쟁에 청소년들이 모이는 것은 고무적이다. ‘불타는 지구’의 온도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 기후위기의 18%가 육식 때문이라고 하니 이 기회에 육식을 줄이는 것,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것, 플라스틱 용기를 쓰지 않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 등등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이다.

그렇지만 개인들의 작은 실천만으로는 기후위기의 속도를 줄일 수 없다. 탄소 배출 제로를 과감하게 선언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를 실천에 옮기도록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자. 내년 총선 주요 공약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정책을 제시하도록 정당들을 압박하자. 기후악당국가였던 호주와 네덜란드도 2030년 탄소 배출 제로화를 선언했다. 지금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때, 당장 하지 않으면 우리는 청소년들을 멸종위기종으로 만드는 공범자가 된다. 청소년들은 말한다. “우리 미래를 가지고 도박하지 말라”고.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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