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칼럼] 반대 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말하라

김진국 2019. 9. 2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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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당 비교가 면죄부 주지 않아
지지율 하락 원인 묻지 말라니
고개 숙이고 반성해야 맞지 않나
미친 짓 그만하고, 탈출구 찾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암담하다. 명분도, 체면도 던져버렸다. 현직 법무부 장관 집이 검찰에 압수 수색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은 마을에 분란이 생겨도, “난 원래 그런 놈”이라며 막 나가면 대책이 없다. 시시비비는 뒷전이고, 편 가르기로 마을 공동체가 깨질 수밖에 없다. 소셜미디어에는 사실을 밝히기보다 상대를 공격하려는 의욕들이 넘친다. 체면과 명분을 중시하는 선비의 나라가 어떻게 이 꼴이 됐을까. 겻불도 안 쬔다는 우리 얼굴이 언제 이렇게 두꺼워졌을까.

나라가 완전히 두쪽이 났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렇게 되리라 짐작 못 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왜 조국을 임명했을까. 측근 중에 만류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조 장관이 읍소했다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문제는 ‘노무현의 추억’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의 상제다. 그의 자서전 『운명』에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에 대한 회한이 가득하다. 특히 검찰 개혁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정치 검찰’의 보복이고, 검찰 개혁에 실패해 ‘폐족(廢族)’이 됐다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은 그 검찰 개혁을 조 장관에게 맡겼다. 조 장관의 혐의를 혐의로 보지 않고, 검찰 개혁을 둘러싼 정권과 정치 검찰의 대결로 보는 데서 꼬이기 시작했다. 검찰 개혁안은 이미 국회에 넘어가 있다. 더군다나 패스트트랙에 올라 있다. 남은 일은 국회에서 풀어가면 된다. 그런데 왜 법무부 장관에 목을 매나. 물론 검찰 조직의 개편이나, 검찰 내 ‘적폐’ 청산 등 인사작업이 남아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시작도 안 했다. 그것도 국회가 할 일이지만 법무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조 장관 외에는 그 일을 맡길 사람이 없는 건가. 이번 사태를 검찰의 반(反)개혁 노림수라고 믿기 때문이 아닌가.

문희상 국회의장 좌우명은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 자공의 질문에 공자는 ‘먹을 것이 넉넉하고, 병사가 충분하면 백성의 믿음을 얻는다’고 대답했다. 그중에 버려야 한다면 병(兵), 식(食)의 순이며, 믿음(信)이 없으면 존립할 수가 없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촛불 혁명’에 무너졌다. 해방 이후 수없이 정권이 바뀌었지만, 민심이 떠나면서 무너졌다. 이승만 정부가 그랬고, 박정희 정부도 그랬다.

2017년 교수신문은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직후다. 군주는 배, 국민은 물. 물이 성나면 배를 뒤집는다는 뜻이다. ‘역린’(逆鱗)을 군주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무서운 역린은, 특히 민주화 이후 그것은 백성에게 있다. 그런데도 역대 정부는 박수를 받을 때 흥분하다가도, 질책을 받으면 귀를 닫았다. 배가 뒤집히는 건 풍랑이 거칠 때이고, 그때야말로 긴장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물론 지도자가 여론을 쫓아다닐 순 없다. 결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여론을 거슬러도 되는지, 역린은 아닌지,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

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대한민국이 묻는다』라는 책에서 참여정부에서 느낀 소회라며 “국민의 손을 꼭 붙잡고 함께 가야 합니다. 그 손을 놓아버리면 절대로 (기득권 세력을) 이겨낼 수가 없죠”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이번 사태에서 세 번 손을 놓았다. 여론은 조 장관 임명을 반대했다. 상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그런데도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에 낙마시킨 장관 후보들은, 야당 시절 반대한 장관 후보들은 명백한 위법 행위가 있었던가. 박근혜 대통령의 의혹은 재판에서 위법행위로 확정돼 탄핵 했던가.

두 번째는 ‘내 탓’ 아닌 ‘남 탓’이다.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에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너는 깨끗하냐”는 말은 시정잡배가 싸울 때나 쓰는 말이다. 정치지도자는 반대당이 아니라 국민을 향해 말해야 한다. 잘못했으면 사과부터 해야 마땅하다.

세 번째, 여론을 묵살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 지지도가 40%로 떨어지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역대 정부 대변인들도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현안이 걸려 있다. 더군다나 “지지율이 떨어지는 원인을 저희한테 묻는 것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는 오만의 기운마저 느껴진다. 고개를 숙이고 반성부터 하는 게 맞지 않나.

안타까운 것은 지지자들을 양심 소모전에 내모는 것이다. 검색어 순위 조작, 억지 논리…. 상황을 방치하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왜 함께 부끄러워야 하나. 콩을 팥으로 만드는 여론조작은 할 수 없다. 드루킹이 먹혔던 건 민심이 박근혜 정부를 떠났기 때문이다.

선거가 가까울수록 정치 공방은 치열해진다. 조국으로 선거를 치를 건가. 이전투구로 ‘너도 나쁜 놈, 나도 나쁜 놈’이 되자는 건가. 나라는 망가지고, 정의가 무너진다. 미친 짓을 이젠 그만 둬야 한다. 탈출구를 찾아야 할 때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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