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9·19 군사합의와 무장해제
국방의 책임자인 그가 무장해제에 유난히 민감한 이유는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9·19 군사합의)’ 때문이다. 남북 국방장관이 서명한 지 1년이 지났지만, 9·19 군사합의의 평가를 놓고 한국 사회에선 극한 대립이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선 9·19 군사 합의가 군사분계선(MDL)과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했다고 치켜세운다. 다른 한쪽에선 안보 포기 각서이자 실질적 항복 문서라고 깎아내린다.
정 장관은 아마도 ‘9·19 군사합의 이후 군의 대비 태세에 변함이 없는데도 일부 세력들이 정치적 의도로 안보 불안감을 키우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난 1년간 북한은 MDL과 NLL에선 조용했다. 미군과 연합훈련의 규모는 줄었지만, 그래도 진행 중이다. 계획했던 무기는 속속, 그러나 소리 없이 도입하고 있다. ‘선조치 후보고(북한이 도발하면 먼저 쏜 뒤 나중에 보고한다)’나 ‘원점 타격(북한이 도발을 건 곳을 집중적으로 때린다)’ 등 수사(修辭)를 내세우진 않았지만, 나름의 내실이 있었다는 게 정 장관의 개인적 평가로 보인다.
하지만 속사정은 정 장관의 생각과 다르다. 5월 군사안보지원사령부(옛 기무사)의 철조망 일부가 절단됐지만, 아직도 범인을 못 잡고 있다. 6월 북한 소형 목선이 강원도 삼척항에 아무런 제지 없이 들어온 사실을 군 당국은 쉬쉬했다. 7월 해군 2함대 장교는 허위 자백으로 군 기지 침입 사건을 끝내려다 들통났다. 하나만 해도 뼈아픈 군 기강 해이 사고인데 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일어났다. 군 관계자는 “군 지휘관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길 꺼리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북한을 자극한다고 비치면 현 정부에 찍힌다고 다들 몸을 사린다”고 말했다. 정 장관이 무장해제에 발끈하기보다는 철모 끈을 고쳐 쓸 때가 아닌가.
이철재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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