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몰락한 北人 닮아가는 PK좌파

송평인 논설위원 2019. 9.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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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 좌파 정권의 고집불통.. 공론 무시하다 왜곡까지 한
광해군 때 大北세력 떠올라.. 발전적인 자기 수정 없는
실패한 실패박람회 같은 정권
송평인 논설위원
군사정권 시절 민주 대 반(反)민주의 정치 구도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재편되는 과정에서 김영삼의 3당 합당이 일어났다. 그러나 3당 합당을 반민주 세력과의 야합(野合)이라고 비판하며 꼬마 민주당에 잔류했던 노무현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으니 그것을 김영삼 중심의 PK우파와 구별해 PK좌파라고 불러보자.

PK좌파는 김대중을 지지한 호남세력과 결합해 노무현 문재인 두 정권을 만들어냈다. 첫 집권 이후 사실상 폐족(廢族)이 됐다가 안철수를 이용해 재기한 뒤 그를 버리고 운 좋게 박근혜 탄핵 사태를 만나 재집권했으나 다시 특유의 고집불통을 드러내며 국정을 혼란으로 몰고 가고 있다.

조국 사태는 PK좌파의 고집불통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새로운 가늠대다. 공론(公論)을 무시한 폭주란 면에서 조선 광해군 때 폐모살제(廢母殺弟)를 부추기다 정계에서 완벽하게 몰락한 경상우도(임금이 볼 때 낙동강 오른쪽의 경상도) 중심의 대북(大北) 세력은 PK좌파의 먼 선조 격이 될 만하다.

당시 남명 조식의 수제자로 대북세력의 영수인 정인홍은 회재 이언적과 퇴계 이황을 깎아내린 회퇴변척(晦退辨斥)을 제기해 파란을 일으켰다. 남명이 퇴계와 동갑이고 훌륭한 유학자이긴 하나 남명 있고 퇴계 있는 게 아니라 퇴계 있고 남명 있다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공론이다. 남명의 또 다른 수제자인 정구마저 회퇴변척을 비판했으니 정인홍이 당시 공론에 얼마나 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인홍은 그나마 양식이 있었다. 그는 폐모살제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폐모살제를 밀어붙인 것은 그의 후계자인 이이첨이었다. 이이첨은 심복을 언관에 포진시키고 과거시험을 장악해 인척을 발탁하는 방식으로 당시 공론의 형성 과정 자체를 왜곡했다. 인조반정(反正)은 그런 왜곡을 더는 참지 못한 반(反)대북 세력의 광범위한 연대에 의해 발생한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만 해도 고집은 셌지만 토론을 해서 결론에 이르려는 열린 자세를 가졌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뜻에 반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병도 했다. 문 대통령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발전적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꼼수로 늘어난 일자리, 사실상 줄어든 소득 등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하며 최초 생각을 고집한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정부 주도의 실패박람회를 지나가다 보게 됐다. 좌석은 텅 비고 부스는 휑했다. 실패박람회는 역발상이긴 하나 실패하는 실패박람회를 보는 기분은 착잡하다. 이 정권이 실패한 정책만 모아서 성공하겠다고 덤비다가 실패하는 꼴이다. 안 해본 일을 벌일 때는 자신이 틀리지는 않았나 삼가 조심하는 자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오히려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공론의 형성 과정을 왜곡하면서 외교 안보 경제를 총체적 혼란으로 몰고 가고 있으니 영락없는 이이첨 시대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 경상우도가 가장 큰 수혜자인 가야사 연구를 강조하더니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포섭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부마항쟁을 헌법 전문에 따로 넣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통영 출신 친북음악가 윤이상의 베를린 묘소 헌화는 논란이 일 것이 뻔하자 충분한 사전 예고 없이 해치워 버렸다. 일국(一國)의 대통령이 아니라 붕당(朋黨)의 지도자 같았다.

안경환 한인섭 조국은 서울대 법대의 PK좌파들이다. 안경환과 한인섭이 조국을 교수로 만드는 데 일조했고, 조국은 민정수석이 되자 안경환을 법무장관으로 모시려 했고, 한인섭을 법무·검찰개혁위원장과 형사정책연구원장으로 만들었다. 안경환은 장관 검증 과정에서 위조 혼인신고가 드러나 탈락했고, 한인섭은 조국 아들과 친구에게 인턴증명서를 부정 발급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되돌아보면 실력도 도덕성도 부족하고 끈만 있는 자들이 사법개혁을 말아먹으려 했다.

남명은 평생 교유하는 사람이 적었다. 정인홍도 잘 화합하지 못했다. 남명은 절(絶)과 의(義)를 강조한 유학자다. 정인홍 등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고 그것이 대북세력의 정치적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박문궁리(博文窮理)하지 않고 절과 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사나워지고 결국 몰락을 자초했다. 그 정신이 DNA를 복제한 것처럼 닮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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