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아동·청소년 성보호 법안 놓고, 법무부와 여성가족부 국제무대서 이견 노출

염유섭 2019. 9. 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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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대상 청소년을 모두 피해자로 바꾸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법무부)
 
“현행법은 청소년들이 소년원 송치 등 두려움을 갖게 해 성매매에 악용될 우려가 있습니다.” (여성가족부)
 
유엔에서 법무부와 여성가족부가 성매매 아동·청소년 지위 문제를 두고 이견을 드러냈다. 국내 아동인권 상황을 심의하는 유엔 공식 회의장에서 정부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함께 참석한 두 부처가 상반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아청법 개정 둘러싼 유엔 측 질의에 법무부·여가부 상반된 입장 드러내

지난 18∼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UNCRC) 제5·6차 심의 모습. 국제아동인권센터 제공
 
25일 시민사회 관계자 등에 대한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두 부처는 지난 18∼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 열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UN 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UNCRC) 제5·6차 심의에 정부 측 대표로 함께 참석했다. 정부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 가입 이후 1996, 2003년에 각각 1~2차 심의를, 2011년 3~4차 심의를 받았다. 이번에 양일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5~6차 심의가 열렸다.

이번 심의에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6년 국회에 발의돼 3년가량 계류된 성매매 아동·청소년 지위를 변경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관심을 보였다. 2016년 여야 의원들은 아청법 2조에 규정된 성매매 대상 아동 청소년을 모두 ‘피해아동·청소년’으로 바꾸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법상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은 원칙상 본인 성을 판매한 범죄자로 분류돼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피해자로 분류되기 위해선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궁핍한 상황에 처했거나 위력 등을 당해 비자발적으로 성매매에 나섰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이번 심의에서도 해당 아청법 개정안이 논란이 됐다. 이날 회의 녹화 영상에 따르면 심의 둘째 날 위원회 측은 개정안이 국회에 상당기간 계류 중이라며 진행 상황에 대한 한국정부 입장을 질의했다. 그러자 정부 대표로 참석한 법무부 관계자는 “법무부는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의 보호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개정안 입법취지엔 공감한다”면서도 “대상 아동 청소년이 재차 성매매에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보호 지원 마련 방안이 필요하고, 재범 방지 등을 위해 시행 중인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 제도 해지의 적정성과 폐지 시 대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사실상 보류 의견을 낸 것이다.

반면 여가부는 3분가량에 걸쳐 아청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법무부 관계자 발언이 끝나자 곧바로 마이크를 잡은 여가부 관계자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매매는 성인들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성착취”라며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은 피해자로서 사회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행법에 따른) 보호처분의 경우, 현실적으로 아동·청소년이 소년원 송치 등에 갖는 두려움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성매매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가부는 아동·청소년들의) 성매매 재유입 방지를 위한 지원 서비스를 시행 중이고, 그 외 지원도 추가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부처 장·차관 만남에도 협의 난망…시민단체 “부처 간 정책 조정 안 되는 것”

2012∼2013년 경기도 부천에서 가출한 A양(당시 13세) 등 10대 소녀 4명이 잠자리 제공을 빌미로 한 성인 남성에게 연이어 성폭행을 당했지만 보호처분이 두려워 신고를 못했다. 이들의 사정은 한 지역시민단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잠자리를 제공받고 성매매 대상이 된 지적장애인 B양(당시 13세)은 2014∼2015년 전국 법원을 돌며 자신이 성폭행당한 사실을 입증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등 극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정신병원 신세까지 졌다.

두 부처의 이견은 아청법 개정안이 발의된 2016년 이후부터 계속됐다. 여가부는 현행법상 성매매 대상 아동·청소년들은 처벌을 피하기 위해 수사·재판 과정에서 본인이 위력 등으로 인해 성매매에 나섰다는 점을 입증해야 해 2차 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한다. 반면 법무부는 이들을 일괄적으로 피해자로 분류할 경우,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강제할 수 없어 재범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실제 두 부처는 장·차관들이 국무회의와 차관회의에서 만나 논의까지 진행했지만 여전히 결론을 못 내리는 상황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국제아동인권센터 관계자는 “정부 대표로 참석한 두 부처가 유엔 회의장에서도 이견을 드러냈다는 것은 아동인권과 관련된 부처 간 정책 조정이 안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다음 달 3일 해당 아청법 개정안을 포함해 한국에 대한 권고안을 발표하고, 정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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