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조급' 한국은 '느긋'..방위비 협상 두고 '동상이몽'

김경진 2019. 9. 2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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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이 어제와 오늘(25일) 이틀간 제11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1차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서로의 입장과 원칙, 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근거를 밝히며 탐색전을 벌였지만, 입장 차만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의 제시액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미국이 주한미군을 운용하는 직·간접 비용을 포함해 연간 최대 48억 달러, 우리 돈 약 6조 원까지 분담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에 근사한 금액이 제시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음 급한 미국…“3개월 안에 마무리 지어야”

이번 11차 협상을 맡은 미국 측 신임 대표 제임스 드하트는 이번 회의에서 협상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3월 올해 한국이 부담할 주한미군 주둔비를 직전 협상보다 8.2% 인상된 1조 389억 원으로 하는 제10차 협정을 맺었습니다. 이 협정의 유효기간은 1년으로, 올해 12월 31일 만료까지 3개월의 시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미국의 입장은 가능하면 최대한 이 3개월 안에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미국 측 요구에 우리 측도 필요성엔 공감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백악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백악관은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언론에 알리면서 "두 정상은 동맹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고, 여기에는 올해 안에 새 방위비 분담금 협정의 결론을 내자는 방안이 포함됐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청와대가 내놓은 발표엔 없던 내용입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어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방위비의 대폭 인상을 요구한 데 이어, UN 연설에서도 "공정한 방위비 분담을 기대한다"며 압박을 이어갔습니다.

미국이 이렇게 협상을 서두르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같은 '잘 사는'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방위비 부담을 지우겠다고 강조해왔습니다. 미국 국내 정치 입장에서 비춰보면, 한국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외교 성과가 되는 셈입니다. 일본과 독일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있지만, 미국 대선이 열리는 내년 11월 이후에 협상을 하기 때문에 당장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미국은 한국과의 협상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방위비 분담금 협정 1차 회의 모습


서두르지 않는 한국…“충분히 시간 갖고 따져볼 것”

반면 우리 정부는 내심 촉박하게 협상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정부는 미국 측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외교부나 국방부가 아닌 기획재정부 출신의 정은보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새 대표로 임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몇 주 째 검토만 이어가고 있습니다. 10월 24일과 25일에 상견례를 겸한 첫 회의를 하기로 미국과 합의를 해놓고도 회의 때까지 인선을 하지 않은 겁니다. 결국 이번 첫 회의에는 곧 뉴욕총영사로 부임하는 장원삼 전 대표가 참석했습니다. 외교가에서는 정부의 의도된 '지연술'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미국 요구대로 3개월 안에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방위비 협상을 잘 아는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대폭 인상을 요구하지 않았을 때도 협상엔 적어도 다섯 달 이상이 소요됐다"면서 "미국이 이렇게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꼼꼼하게 항목을 들여다보려면 석 달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최근 다섯 차례의 협상에서 방위비 분담금 협정 체결에 걸린 시간을 살펴봤더니, 보통 6개월에서 7개월이 소요됐습니다. 특히 트럼프 정부 들어 이뤄진 10차 협상 땐 11개월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 미국은 전략자산 전개비용 등 주한미군 주둔에 들어가는 간접적인 비용까지 요구하려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방위비 분담금은 인건비와 군수비용, 군사건설비 등 세 가지 항목으로 용도가 한정돼 있습니다. 미국의 요구를 일부 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이 뒤따라야 하는 문제여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협상 연장’ 카드 급부상…한미, 지난 협상 때 합의

협정 만료까지 3개월 밖에 남지 않았지만, 협상할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협정 만료 이후에도 협상이 지연되면 협정 공백이 생기게 되고, 협정 공백이 생기면 주한미군 근로자 인건비 체불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를 막기 위해 한미는 지난해 10차 협상을 타결하면서 "차기 협정을 적기에 타결하지 못할 경우 발생 가능한 협정 공백 상황에 대비하여, 양측이 합의할 경우 협정을 연장 적용할 수 있다"고 명시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협상팀은 협상이 많이 지연되면 협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결국 연장에 합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협정 공백이 생긴다고 자동 연장이 되는 건 아니고 한미가 별도로 협의해야 합니다. 연장 기간은 정해놓진 않았지만, 협상 단위가 1년인 만큼 연장도 1년을 넘기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양측이 협정 연장에 합의할 경우, 총액과 증가율만 조정하고, 나머지 합의된 문안은 그대로 연장이 됩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증가율 없이 1년을 더 유지할 수도 있고, 지난 10차 증가율인 8.2%를 똑같이 적용할 수도 있고, 방법은 한미가 합의하기 나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합의된 문안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미국이 요구하는 것처럼 대폭 인상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일단 이 연장 조항을 적용해 시간을 벌고 협상에 꼼꼼히 대비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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