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경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안 나빠진 게 없는데
'세금주도 성장'만 고집할 건가
그래도 대통령은 성적이 좋다고 또 우길 수 있다. 그 전에 이런 숫자부터 한 번 보시라.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 지표 10개다. 청와대와 정부는 입에 잘 올리지 않는 숫자들이다. 더는 엉망일 수 없다. 누가 “경제 나쁘다”고 하면 파르르 떨며 핏대부터 올리는 정부는 가짜뉴스로 몰아칠지 모를 일이다.
① 98.79=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7월 한국의 경기선행지수. 선행지수는 3~6개월 뒤 경기를 예측하는 지표인데 2017년 5월 이래 26개월 연속, 관련 통계 집계 후 최장 하락 중임. ② 2만4609GWh=7월 산업용 전력판매량.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감소. 올해 들어 4~7월까지 4개월 연속 줄어듦. 산업용 전력 수요 감소는 특히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엔 경기 하락을 의미. 과거 정부의 연속 감소는 길어야 한두 달. ③ 0.5%=올해 1~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54년 만에 최저. 0%대 물가는 외환위기 때인 1999년, 유가 폭락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겹친 2015년 두 차례뿐. 0%대 저물가는 시장 수요 위축의 결과이자 디플레이션의 전조. ④ -21.8%=9월 20일까지 수출 감소 폭. 지난해 12월부터 10개월 연속 수출 감소 확실시. 올 2분기 수출 감소는 G20 국가 중 둘째로 큰 폭. ⑤ 5.30=올해 2분기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값) 2003년 통계 작성이래 최고. 5분위 배율이 클수록 분배가 나쁘다는 의미. ⑥ 58.3%=올해 2분기 중산층 비율(중위소득 50~150%). 이 비율이 60%를 밑돈 것은 사상 처음. 박근혜 정부 말인 2016년엔 66.2%이었지만 이 정부 들어 급속히 쪼그라듦. ⑦ 2%±=올해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 OECD는 19일 한국 성장률을 2.4→2.1%로 낮춤. 국제금융센터 집계 9개 해외투자은행(IB)은 평균 2%를 예상. 금융위기 때인 2009년(0.8%) 이후 10년 만에 최악. ⑧ -7%=올 3월 말 현재 한국의 민간투자 증가율(블룸버그 집계). 2017년 3월 16.2%로 정점을 찍은 뒤 문재인 정부 들어 곤두박질. 대신 한국 기업의 지난해 해외 투자는 478억 달러(약 57조원)로 198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⑨ 68만명(7.5%)=1년 이상 미취업 청년(비율). 2009년 이후 최대(최고). ⑩ 90%=올 2분기 국내총생산(GDP) 중 정부 기여도. GDP 성장률 2%(연율) 중 1.8%포인트가 정부 기여분. 민간은 0.2%포인트만 기여. 민간의 성장 동력은 사실상 모두 꺼지고 세금주도성장 중이라는 의미.
경기·성장·고용·분배·수출·소비가 모조리 역대 최악이다. 이 정부 출범 후 2년 만에 34%가 오른 강남구 집값 등 더 많은 숫자가 있지만, 지면이 모자라 못 적을 뿐이다. 더 나쁜 건 이런 지표들이 이 정부 들어 더 빨리 추락 중이란 사실이다. 그나마 과거 정부들이 아끼고 쌓아놓은 재정 덕에 추락 속도를 늦추고 있을 뿐이다. 가뜩이나 미·중 무역분쟁, 한·일 경제전쟁 등 세계 경제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전대미문의 격변기다. 이럴 때일수록 초보 운전자의 감이나 신념 대신 계기판을 똑바로 보고 시계(視界)비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올바른 방향이라며 기·승·전·소득주도성장을 또 밀어붙이겠다면, 아인슈타인의 한 마디를 대신 들려주고 싶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 이를 일컬어 정신 이상이라고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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