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89년 수원 여고생 살인·86년 연쇄 강간도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짓?

최모란 2019. 9. 27.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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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월 4일 경기도 수원시 화서역 인근의 한 논. 주변을 둘러보던 논 주인 김모(당시 50세)씨의 눈에 이상한 것이 목격됐다. 1987년 12월 24일 외출했다 실종된 여고생 A양(당시 18세)의 시신이었다. A양의 두 손은 스타킹으로 결박돼 있었다. 입에는 흰색 러닝셔츠로 재갈을 물렸고 추행 흔적도 발견됐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경기남부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연합뉴스]

1989년 7월엔 수원시 오목천동의 한 야산 밑 농수로에서 또 다른 여고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알몸으로 폭행을 당하고 흉기에 찔린 상태였다.
두 사건의 범행 현장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화성군 태안읍·정남면과 7~10㎞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두 사건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수원 사건은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으로 분류돼 수원경찰서가 자체 조사에 나섰고 미제로 남았다.

이들 사건을 취재했던 전직 기자는 “수원 여고생 살인 사건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화성과 수원 경찰이 공조 수사를 벌이긴 했지만, 파장을 우려한 경찰이 사건 축소에 급급해 제대로 된 공조는 이뤄지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경찰, 화성 사건 용의자 이씨 여죄 수사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이모(56)씨가 특정되면서 과거 수원·화성지역에서 발생한 미제 사건도 주목을 받고 있다. 경찰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씨의 추가 범행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수원·화성은 물론 이씨가 살았던 충북 청주의 미제 사건까지 들여다보고 있다.
27일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에 따르면 경찰은 이씨가 군대에서 전역한 1986년부터 처제를 살해한 1994년 1월까지 수원·화성·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성폭력·살인 미제 사건과 이씨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도[연합뉴스]

대표적인 것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1986년 2월부터 7월까지 발생한 '화성 연쇄 강간 사건'이다. 당시 화성 태안읍 일대에서 10~40대 여성 7명이 성폭력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들은 용의자를 23살가량의 남성으로 키 165~170㎝인 보통체격의 남성이라고 진술했다. 용의자가 욕설하고 “네 서방 뭐하냐” 등을 물었다고도 했다. 스타킹으로 양손을 결박하는 등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수법이나 용의자의 생김새가 비슷하다. 1986년은 이씨가 군대에서 전역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1986년 9월 15일 1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해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1~10차에 걸쳐 9명(8차는 모방범죄)이 희생됐다.


인상착의, 화성 사건 용의자와 비슷
살인 미수 범행도 있었다. 2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1986년 10월)이 발생한 뒤 한 달 정도 지난 1986년 11월 30일 태안읍 정남면 보통리에서 45세 여성이 변을 당할 뻔했다. 이 여성은 흉기로 위협하며 돈을 요구하는 용의자에게 “끌려올 때 가방을 떨어뜨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용의자가 가방을 찾으러 간 사이 도주했다. 이 여성이 진술한 용의자의 생김새는 25~27세 정도에 키가 160~170㎝인 남성으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와 비슷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7차 사건 당시 용의자 몽타주 수배전단. [연합뉴스]

범죄심리학 권위자인 오윤성 순천향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2011년 한국경찰학회보에 발표한 ‘연쇄살인 사건에 있어서 범인상 추정에 관한 연구’ 논문에서 2건의 수원 여고생 사망 사건과 화성 연쇄 강간 사건, 살인 미수 사건이 모두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생존한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범인을 보통체격의 20대 남성이라고 진술을 했고 스타킹 등 피해자의 옷 등으로 결박한 점 등을 볼 때 동일범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오 교수는 “범인들이 범행을 저지르면서 범행 목적과 관련 없는 행위를 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인증(signature)행위라고 한다”며 “용의자가 피해자에게 ‘서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스타킹 등으로 결박하고 속옷을 얼굴에 씌운 것 등도 인증행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행을 위한 행위라기보다는 평소 성향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씨 범행 공백기에 유사한 수원사건도 발생
화성 연쇄살인 사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2개월 간격이던 1~5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간격이 6차 사건에선 100여일, 7차(1988년) 사건까지는 1년 4개월로 늘어난 것에 대해선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사하는 등 외부 압박이 가해져 심리적으로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6차(1987년 5월) 화성 사건 이후 주민이 이씨를 ‘1986년 성폭력·살인 미수사건의 용의자 같다’고 지목하면서 경찰도 이씨를 유력 용의자로 분류한 상태였다. 6차 사건과 7차 사건 이후엔 수원에서 여고생 2명이 희생됐다.
수원 사건도 모두 이씨가 저질렀다면 7차 화성 사건 이후 8개월 뒤에 오목천동 여고생 사건(1989년 7월)을 저지른 셈이 된다.

이씨는 이후 1989년 9월 수원시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들어갔다가 경찰에 붙잡혀 강도예비 및 폭력 등 혐의로 구속됐다. 이때도 화성 사건 용의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1990년 4월 석방됐는데 이씨가 구금된 기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씨가 석방된 이후 7개월 뒤인 1990년 11월 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오 교수는 "당시 범인이 인증행위를 한 것은 평소 자신의 성적 욕구나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볼 때 모방 사건을 제외하면 나머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모두 용의자로 지목받고 있는 이씨가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최모란·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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