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대깨문, 아나문, 나팔문

신동흔 문화부 차장 2019. 9. 28. 03: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동흔 문화부 차장

지난 대선 때 유행했던 '대깨문'이란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에서 첫 글자만 따서 만든 이 말은 선거 구호이자 당시 문 대통령 후보 지지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재미도 있고 저돌적으로 싸운다는 의미가 담겨 집단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 '대깨문'을 다시 불러낸 것은 조국 법무부 장관이다. 장관 후보 지명 이후 두 달 가까이 논란이 이어지는 동안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40%까지 떨어졌고, 국정에 대한 부정적 평가 비율이 53%로 늘었다. 조 장관을 통해 586 운동권 출신 진보 그룹의 민낯을 보며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하나 둘 등을 돌렸다. 그러자 '맞으면서 가겠다'는 조 장관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대가리가 깨져도 조국'이었다.

이들은 이번 주말에도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 모여 '조국 수사 중단' '검찰 개혁' 등을 외칠 것이다. 각종 포털 사이트 댓글과 실시간 검색어 코너는 실력 행사의 장이 됐다. 이들은 집단의 힘으로 여론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안 드는 기사 링크(좌표)를 올려놓으면 우르르 몰려가 공격하는 '무한도전'을 벌인다. 한 명 한 명 놓고 보면 이들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들이고 누군가의 부모이고, 형제·자매들이다. 하지만 대깨문이라는 '집합'이 되는 순간 막무가내식 과감성과 저돌성을 드러낸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찌르레기처럼 수만 마리가 한 마리처럼 날아다니는 새떼를 보며 '집합적 마음'이라도 있는 것인지 연구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새 한 마리 한 마리는 자기 주위 극소수 동료 새들의 움직임에 맞춰 날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바로 옆과 앞뒤 움직임에만 동조하면 충돌을 피해 한 마리처럼 춤출 수 있었던 것이다.(군지 페기오유키오, '무리는 생각한다')

이런 현상은 인간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한 명 한 명 손에 쥐어지면서 이런 집단 동조화가 매우 손쉽게 벌어지고 있다. 비슷한 의견만 접하면서 편벽된 생각에 갇히는 '확증 편향'은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이 되었을 정도다. '드루킹' 같은 여론 조작 세력은 이 공간을 유린하며 새떼를 이상한 곳으로 인도했다.

지난 대선 때 대깨문은 '아나문'(아버지가 나와도 문재인), '나팔문'(나라를 팔아먹어도 문재인)으로도 불렸다. 과장 섞인 표현이었지만 선거만 이기면 인륜(人倫)을 저버리고, 나라가 망해도 상관없다는 극단적 발상은 대깨문식 재미조차 없었다. 조국 사태가 이어지고, 남북 관계에 집착하는 현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인륜을 저버리고, 나라가 망해도 상관없다는 사람들은 없는지 궁금했다. 무리 속에서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신의 개별성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