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혼자 장사하는 여성 "언제든 신고하려고 앞치마에 휴대폰 넣고 일해요"

김미향 2019. 9. 2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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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여자 혼자 장사하기

여성 자영업자 163만여명 시대
상업범죄 10건 중 1건 성폭력
홀로 장사하는 여자 표적 삼기도

강남 왁싱숍 강간살해사건부터
8월엔 노래방 여주인 칼에 찔려
성희롱에 업무방해..폭력 노출

매출 포기하고 일찍 문 닫거나
앞치마에 휴대폰, 보안비용 지출
"보이지 않는 젠더 폭력 주목해야"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올해 67살인 신명자(가명)씨는 2년 전 장사를 시작했다. 남매를 둔 그는 전업주부로 살면서 자식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는 것 외엔 별다른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남편이 몇년 전 대장암으로 몸져눕고,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던 딸의 사업이 휘청하자, 신씨가 직접 생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무 기술이 없던 그는 집에서 음식을 만들던 걸 토대로 약간의 안주와 생맥주, 소주 등을 파는 실내 포장마차를 동네에 열었다. 60대에 처음 자영업에 뛰어든 신씨는 은행 대출도 쉽지 않아 아들 명의로 융자를 받아 자본금 2천만원을 마련했다. 딸도 매달 월세 60만원을 보탰다.

지난 17일 찾아간 서울 용산구 8평짜리 신씨네 가게는 작은 주방과 탁자 다섯개가 전부였다. 부침개, 노가리, 쥐포 같은 안주를 파는 신씨네 포장마차는 한달 150만~20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재료 구입에 절반을 쓰고 신씨에게 돌아오는 돈은 70만~100만원 정도. 불규칙한 소득이지만 신씨 부부에게는 생계를 잇는 소중한 돈이다. 장사 초반의 적자를 거쳐 이 정도 소득을 올리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건강한 집밥 짓기를 수십년간 해온 신씨는 장사를 시작했을 때 모양 좋고 자극적인 맛의 안주를 만드는 것부터 영 어색했다. 신씨는 “쉬운 요리 축에 끼는 계란찜을 해도 정해진 시간 안에 예쁘게 부풀어 오른 모양으로 내놓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가게 안에서 신씨는 오로지 혼자다. 인건비를 아껴야 하기에 종업원을 두지 않았다. 주방과 홀을 오가며 가게를 꾸리는 신씨가 2년간 장사를 하며 가장 힘든 건 “와서 술 좀 따라보라”고 요구하는 남자 손님들이다. 이미 술에 취한 채 가게에 들어와 술을 더 달라며 욕설을 하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이 몇달에 한번꼴로 있다. 모르는 손님이 갑자기 가게에 들이닥쳐 “한잔 먹자”고 하면, 신씨는 “내 술은 내가 알아서 먹는다. 손님하고는 같이 안 먹는다”고 대꾸한다. 하지만 남자 손님들은 “그렇게 하려면 뭐 하러 여기 나와 장사를 하냐”며 막무가내로 술시중을 요구한다.

어느 날은 경찰이 출동해서야 사태가 진정되기도 했다. 취객들이 들어와 신씨를 희롱하는 경우가 생기자 가게에 폐회로티브이(CCTV)를 설치했는데, 석달 전 자택에서 신씨의 아들이 웬 남자가 신씨에게 시비를 거는 시시티비 화면을 보고 곧장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신씨는 출동한 지구대 경찰에게 취객을 달래서 내보내달라고 했고 경찰이 온 뒤에야 취객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을 떠올리던 신씨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 같은 늙은이한테도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맛있다’며 자꾸 술을 따라달라니.” 신씨는 몇달에 한번꼴로 이런 일을 겪으면서 속상한 마음에 집에서 눈물짓는다고 했다. “기분이 더럽죠. 말도 못하게 더럽죠. 근데 여기서(가게) 울 수는 없으니까 집에 가서 혼자 울어.” 신씨는 손님이 떠난 탁자 위 안주 접시를 정리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공식 통계도 없는 거리의 폭력들

거리를 지나다 누구든 들어갈 수 있는 가게에서 홀로 장사하는 여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폭력에 시달린다. 원하는 물건이 없다고 장사를 훼방 놓거나, 음식을 먹고 돈을 안 내는 일은 흔하디흔하다. 손님이랍시고 술시중을 요구하거나, 건물주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성희롱을 하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도 여성 자영업자들은 항상 친절히 손님을 맞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생계를 위한 장사를 놓지 않기 위해 ‘진상 손님’과 ‘괴물 같은 건물주’의 횡포도 참고 또 참는다. 여성 자영업자 163만7천명 시대(2018 경제활동인구조사), 그들은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까.

가게를 운영하는 여성 자영업자의 범죄 피해는 그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관련한 국가 통계가 공식적으로 생산되지 않는 탓이다. 다만 언론 보도로 여성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지난 8월30일 경북 김천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사장에게 60대 단골손님이 흉기를 휘두르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주인은 피를 흘리며 “살려달라”고 소리치다 이웃 상인과 경찰한테 발견됐다. 지난 6월3일 대전의 한 모텔에서 40대 남성 투숙객이 60대 여성 사장을 모텔 복도에서 무차별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하기도 했다. 이 남성은 주인과 숙박료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주인을 주먹과 발로 마구 때린 것이다.

더 잔혹한 사례는 2017년 7월에 발생한 강남 왁싱숍 강간·살해사건이다. 30대 한 남자가 유튜브 동영상으로 여자 혼자 인적이 드문 주택가에서 왁싱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미리 알고 손님으로 가장해 가게에 찾아갔다. 왁싱 시술을 받은 뒤 그는 미리 준비한 식칼로 위협해 사장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당시 용의자는 이 가게의 주인이 다른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것을 알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조사 과정에서 밝혔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여자를 표적 삼아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이른바 ‘젠더 폭력’(성차별에 의한 폭력을 일컫는 말)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끔찍한 폭행이나 살인이 아니라도 여성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벌어지는 범죄는 수없이 많다. 절도나 사기, 주거침입, 업무방해, 성희롱, 성폭력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지난해 2월엔 충북 음성군에서 일가족이 치킨집에 찾아가 여성 사장을 집단으로 폭행한 일도 있었다. 외곽 지역이라서 치킨 한 마리는 배달하기 어렵다고 하자 찾아가 폭행한 것이다. 지난 4월 경북 영주에서는 한 지역 정치인이 밤에 술집 여성 사장이 사는 2층 집을 무단으로 침입해 주거침입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전국 9인 이하 소규모 사업체를 중심으로 조사한 ‘상업범죄 피해조사’(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6) 보고서를 보면, 전국 사업체 8140곳 가운데 2295곳(28.2%)이 “1년간 한번 이상 범죄 피해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피해 경험이 있는 사업체가 경험한 범죄 건수는 총 1만2597건(사업체당 평균 5.5건)이었는데, 이 건수를 범죄 유형별로 따져보니 절도(46.7%)가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사기(24.6%), 폭력성 업무방해(14.9%), 성폭력(8.9%), 횡령(1.3%) 등이 뒤따랐다. 특히 성폭력 범죄의 경우 가해자는 90%가 남자였고, 그중 손님이 88.5%였다. 성폭력 유형으로는 ‘성적 불쾌감을 주는 음란한 말이나 욕설’을 하는 성희롱이 77.6%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게다가 성폭력과 절도는 사업체의 반복 피해 위험이 높았다.

김지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재산 범죄와 달리 폭력 범죄, 특히 성폭력 범죄에서는 여성 사업주가 취약하다”며 “1인 여성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많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여성 자영업자의 피해가 많은 이유에 대해 “폭력 범죄에서 사업주의 성별은 (가해자로부터) 범죄 발생을 저지할 수 있는 유능한 감시인의 부재 상황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상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기도

여성 자영업자에게 손님이 가하는 폭력은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때론 폭력이라고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의 주인공 미수(김고은)는 의붓언니와 함께 제과점 ‘미수제과’를 운영한다. 미수가 혼자 가게를 지키던 어느 날, 소년원에서 갓 출소한 현우(정해인)가 문을 열고 들어와 미수에게 반말로 ‘콩으로 만든 빵을 내놔라’ ‘두부는 안 파냐’며 으름장을 놓는다. 그런가 하면 이튿날 또다시 찾아와 출구에 붙은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를 뜯어버리고는 자신이 일하겠다고 거칠게 통보한다. 홀로 가게를 지키던 미수는 이 과정에서 공포를 느낀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어떨까.

빵집을 운영하는 여성 사장 변규강(34)씨도 비슷한 상황을 종종 겪는다. 그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10평(33㎡) 규모의 매장에 테이블이 없는 ‘마이크로 빵집’을 경영하는데 가게 관리가 물리적으로 힘에 부칠 때가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가게 앞에 아무나 와서 차를 대고 입구를 가리는 일이 계속 반복돼, 변씨가 ‘차를 빼달라’고 정중히 항의했다. 그런데 차를 댄 남자가 오히려 변씨에게 손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며 화를 내버렸다. 변씨의 남자친구가 나서자 그 손님은 조용히 물러났다. 변씨는 ‘내가 덩치 큰 남자였어도 이렇게 대했을까’란 생각이 들어 기분이 몹시 상했다고 했다. 변씨는 매장에 시시티브이 4대를 설치하고 보안비용으로 한달에 13만4천원을 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빵집 츄이구이브레드를 운영하는 여성 사장 변규강씨가 일하는 모습.

여성 자영업자의 범죄 노출에 관한 논문 ‘여자 혼자 장사하기: 범죄 기회 차단을 위한 젠더화된 사업 전략과 효과성’(한국여성학, 2018)을 보면, 여성 자영업자는 성추행, 성희롱, 모욕, 업무방해, 무전취식 등 다양한 범죄 피해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 살인, 강도, 강간과 같은 “더 큰 피해”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논문에서 호프집을 하는 50대 여성 자영업자인 ㄱ씨는 영업을 할 때는 언제든 경찰 신고가 가능하도록 휴대폰을 앞치마에 넣고 있다고 했다. 가게에 손님과 단둘이 남을 때는 도망가기 쉬운 출입문 쪽에 서 있고, 손님이 주방 쪽으로 다가오면 식칼이 있는 곳을 피해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두려움 때문에 가급적 늦은 시간까지 장사를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매출액이 줄더라도 영업시간을 단축해 범죄 피해 노출을 줄이려는 것이다.

일부 남자 손님은 음식 제공을 넘어 성적 서비스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주점을 운영하는 40대 ㄴ씨는 귓속말을 하는 척하면서 어깨동무를 하거나 손을 옷 안으로 집어넣는 남자 손님의 사례를 들었다. 동석해 술을 마시라는 요구를 거절할 때면 “네가 뭔데 술을 안 파냐, 배가 불렀냐” 등의 반말과 욕설이 시작된다. 매상을 올려주는 양주를 시켰다고 몸을 만지며 갑질하는 남자도 있었다고 했다. 논문은 “둘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사업주와 손님의 관계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사회적 관계로 전환돼 여성 사업주는 폭력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난다”고 분석했다.

임대인 추행에 용기 낸 여자 상인 미투 1호

여성 자영업자가 겪는 범죄 피해의 ‘가해자’는 손님만이 아니다. 지난 3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던 여성 임차인이 건물주를 대행해 건물을 관리해온 남성을 상대로 제기한 강제추행 사건 1심 재판이 열렸다. 재판에서 임차인 ㄷ씨는 지속적으로 성희롱과 강제추행, 영업방해 등을 당해왔다고 밝혔다. 여성 자영업자의 1호 ‘미투 선언’(Me too, 나도 당했다)이 나온 것이다. 재판 당시 ㄷ씨는 “숨죽이며 고통받는 여성 임차상인들을 위해 미투를 하려고 용기를 냈다”며 수년간 지속됐던 강제추행 사건을 공론화했다.

40대 여성인 ㄷ씨는 자신의 가게가 있는 빌딩을 관리하는 50대 남성이 건물주와 친하다는 것을 내세우며 사실상 건물주 행세를 하면서 ㄷ씨에게 임대차 계약을 권했다고 했다. 5년간 카페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고, 재건축 뒤에도 입점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영업을 시작한 뒤 이 남성은 ㄷ씨에게 성추행을 일삼았지만 ㄷ씨는 거부하지 못했다. 그가 재력과 인맥으로 ㄷ씨의 장사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협박을 했다고 ㄷ씨는 법정에서 증언했다. 또 이 남성과 사이가 틀어지면 가게를 지속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 봐 계속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현재 재판은 진행 중이다.

2017년부터 각계각층에서 위계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벌어졌지만, 여성 임차상인이 임대인에 의한 성폭력을 공개적으로 고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대인의 성희롱은 여성 자영업자가 흔히 겪는 일인데도 재계약 거부 등 다른 종류의 갑질과 혼재돼 발생하기에 지금껏 잘 드러나지 않았다. 피해자는 자신의 생계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감수하고 문제제기를 해야 하기에 사건화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맘상모’(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 모임)의 쌔미 조직국장은 “이 사건 피고인은 건물관리인의 신분이지만 사실상 임대인 행세를 하며 ㄷ씨를 괴롭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님이 추행하면 단골 떨어질까 참아야 하고 임대인이 추행하면 가게 빼라고 할까 봐 말 못하는 게 여성 임차상인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을 반영하듯 지상파 방송 드라마에서 임대인(건물주)에 의한 일상적 성희롱이 주요 테마로 다뤄지기도 한다. 지난 18일 방영을 시작한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한국방송2)에서 주인공 동백(공효진)은 작은 마을에 ‘까멜리아’란 주점을 개업한 여성 자영업자다. 주점이 입점한 건물의 주인은 술을 마시러 손님으로 이 가게를 찾아와 사장의 이름을 존칭 없이 부르고 반말하며, 사장에게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받으라고 한다. 급기야 그는 “내가 유일한 이 동네 양주 손님이자 건물주”라며 퇴근하려는 사장의 손목을 강제로 잡고 술자리에 앉히려 한다. “이거(술잔) 원샷 하면 내년까지 월세를 동결해주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고향 오빠라고 생각하고 술도 ‘짠’ 하고 ‘하하 호호’ 웃고 그럼 얼마나 좋냐”고도 한다. 월세를 결정할 수 있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여성 임차상인에게 술시중을 강권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묘사돼 있다.

매출 줄어도 일찍 문 닫아야 하는 사장들

손님이나 건물주들로부터 가해지는 일상적 폭력에서 여성 자영업자들은 “진상”을 다루고 응대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하며 생존하게 된다. 여성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 예방 안전망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논문 ‘여자 혼자 장사하기: 범죄 기회 차단을 위한 젠더화된 사업 전략과 효과성’을 보면, 여성 자영업들은 크게 네가지 자구책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매출 감소를 감수하고 영업시간을 줄여 범행에 노출되는 시기 줄이기 △만취한 손님은 매장에 들이지 않는 ‘손님 가려 받기’ △남자 이웃이나 남자 가족을 동원해 보호받는 기존 남자 중심적 질서에 따르기 △자신은 ‘술집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손님에게 강조하며 ‘술집 여자’와 자신을 구별 짓기 등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9년차 여성 자영업자 이수현(가명·39)씨도 장사를 시작하던 초기에 이러한 방식을 다양하게 구사하며 범죄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가게를 지켜야 했다. 이씨네 가게는 주류를 팔지만 식사 손님 위주로만 영업을 하고 영업시간을 밤 9시30분으로 정해 일찍 문을 닫는다. 밤늦게까지 문을 열면 술손님을 받을 수 있어 매출은 늘지만 위기 상황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씨는 시시티브이를 설치하고 보안업체에 매달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지나치게 만취한 손님이 매장에 들어오려 할 때 이씨는 “죄송해요, 영업 끝났어요” “음식이 다 떨어졌네요” “저희가 술을 안 팔아요” 하는 식으로 적당히 거절한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중 한 장면. 주인공의 의붓언니 은자(김국희)는 시장에서 수제비 가게를 하며 딸을 부양한다. 씨지브이(CGV)아트하우스 제공

반면, 같은 자영업자라도 남성의 대응 방식은 다르다. 폭력적인 취객이라도 동성임을 활용해 친근한 유대관계를 맺는 것으로 방어한다. 몇년 전 실내 포장마차를 1년 경영했다는 40대 남성 김수철(가명)씨는 “동네에 실내 포차를 차렸는데 동네 건달들이 와 음식을 시키고는 매번 외상을 달고 가거나, 술 마시고 그릇을 깨는 등 행패를 부리곤 했다. 어느 동네든 소주같이 저렴한 술을 파는 실내 포차는 동네 불량배 같은 손님들이 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종의 폭력성 업무방해와 강요 등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김씨는 “장사 수완이 좋은 편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건달들과) 바로 친구가 됐고, 가게 운영하는 동안 큰 말썽 없이 원만하게 지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여성 자영업자가 범죄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 등을 살펴보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추지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남성 자영업자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인맥을 쌓으며 방범대, 경찰과의 네트워크 등을 통해 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지만 여성 자영업자는 그렇지 못하다. 폭력성 업무방해, 성폭력 등의 범죄는 여성 자영업자가 표적이 되는 ‘젠더 폭력’적 속성을 갖고 있음에도 잘 드러나지 않고 일반 범죄 사건과 똑같이 다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추 교수는 “남성이 여성을 살해한 살인사건의 판결문들을 분석해보면 모르는 관계에서 벌어진 경우 피해자가 여성 자영업자인 사례가 많았다”며 “자영업자의 사회적 위험을 분석하고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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