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기 도입해야 안보가 보장되나 [박수찬의 軍]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담 후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국방예산 및 미국산 무기 구매 증가, 분담금의 꾸준한 증가 등으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에 기여한 점을 상세히 설명했다”며 한국 정부의 미국 무기구매와 관련해 지난 10년간 현황과 향후 3년간 계획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과 규정에 근거해 가격 등의 조건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는 대신 정치적 차원에서 무기구매를 거론하면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자주국방’이라는 구호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무기 구매가 빚은 부작용들
한국은 지난 10년간 미국 방산업계의 ‘큰손’이었다. 국방기술품질원이 지난 1월 발간한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2008~2017년 한국은 67억3100만 달러(7조6000억원)의 미국 무기를 구매, 미국 무기 수입국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규모를 기록했다.
이같은 ‘올인’은 군 전력증강 효과를 가져다줬지만, 국부 과다 유출 등의 부작용도 낳았다.
국방부가 지난 7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E-737 피아식별장치(IFF)와 데이터링크를 2024년까지 5000억원을 들여 개량하기로 결정했을 때, 레이더가 개량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비용 문제가 원인이라는 평가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레이더까지 포함하면 1조~2조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천억원을 투입하고도 중국과 일본, 러시아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해야 할 조기경보통제기의 ‘눈’인 레이더는 2000년대 초반 수준에서 발전을 멈춘 셈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도 제 성능은 나오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부가 사업 절차를 완료하기 전에 미국이 “과거에 많이 구매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자국산 무기구매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한다.
지난해 4월 주한미군은 ‘2018 전략다이제스트(Strategic Digest)’에서 “2018~2020년 P-8A 해상초계기와 SM-3/SM-6 함정 탑재 요격미사일, 해상작전헬기가 한국군에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략다이제스트 발간 당시 이들 무기는 도입 결정이 이뤄지지 않아 “미국제 무기구매를 마치 확정된 것처럼 명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업체가 다수 참여해 수주 경쟁을 펼치면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가격 인하와 정비기술 이전 등의 조건을 관철하기가 용이하다. 하지만 기종 선정 이전부터 미국 무기 도입이 기정사실화되면 유럽과 이스라엘 업체들은 참여를 꺼리게 된다. 수주 가능성이 낮은 사업에 거액을 투자할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방위사업 비리나 정치적 논란도 미국 무기구매 과정에서 주로 발생한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의 율곡사업 비리, 김영삼 정부 시절 미국 로비스트 린다 김 사건도 미국 전투기 등의 도입이 문제였다. ‘한국은 미국 무기를 많이 산다. 미국 무기 판매를 중개하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인식과 정무적 판단이 개입한 결과였다.
◆도입 다변화 등 대안 추진 필요
우리 군은 유럽과 이스라엘에서도 필요한 무기를 구매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제작하지 않거나 판매하지 않는 무기의 대체재 성격이 강했다. 1970년대 미국이 하푼 대함미사일 판매를 거부하자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을 구입했다. 미국이 재래식 잠수함 건조를 포기하자 1980년대 독일에서 209급(장보고급) 잠수함을 도입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무기 도입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 무기를 구매해야 상호운용성이 보장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방규격을 충족하는 국가의 무기라면 구매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군 무기 도입사업에서 미국 대신 유럽 기종이 채택된 것은 KC-330이 처음이었다. 한미 연합작전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는 미국 무기가 유리하다는 상호운용성 논리가 밀린 이례적 결정이었다. KC-330은 유럽과 중동 국가에 이미 실전 배치된 반면 KC-46A는 도입 결정 당시 개발이 완료되지 못했고, 미 공군 납품도 예정보다 2년 늦어진 상태다. 상호운용성 논리에 의해 KC-46A를 선택했다면 우리 군 전력화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우방들도 무기 도입 다변화를 추구하는 모양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F-15SA 전투기 외에 유로파이터도 운용중이며, 유럽 에어버스 A400M 수송기와 한국의 방공무기 도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무기를 주로 쓰던 이집트도 프랑스제 전투기와 강습상륙함, 러시아제 헬기 등을 도입했다.
대만은 미국에서 막대한 무기를 구매하면서도 국내 방위산업 기반 유지를 위해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24일 융잉(勇鷹) 차세대 국산 고등훈련기를 공개한 행사에서 “‘국기국조’(國機國造:자국 전투기는 직접 제작함)가 옳은 길이며 그 노력은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고등훈련기까지 외국에서 구매하면 연구 개발능력을 회복할 기회가 사라질까 우려돼 대만 정부는 고등훈련기의 국산제작 입장을 고수해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은 해외 도입 규모가 늘어나면서 자국 내 방산업체의 수익성과 기술 개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한국은 그동안 한미 동맹 강화를 명분으로 미국 무기를 구매해왔다. 한미 동맹은 한국 안보에 중요한 요소지만, 정치적 차원에서 미국 무기를 많이 도입하는 것이 동맹과 안보 강화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국익 우선’ ‘준법’을 기준으로 우리 군이 필요한 무기를 사도 한미 동맹은 흔들리지 않는다. 실무자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까지 미국 방산업체의 ‘호갱’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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