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미국 무기 도입해야 안보가 보장되나 [박수찬의 軍]

박수찬 2019. 9. 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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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오후 (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털 바클레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욕=연합뉴스
“한국은 앞으로 미국 외에 다른 나라와는 거래하지 않을 것인가.” 지난 24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한 방산업계 관계자가 남긴 말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회담 후 브리핑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국방예산 및 미국산 무기 구매 증가, 분담금의 꾸준한 증가 등으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에 기여한 점을 상세히 설명했다”며 한국 정부의 미국 무기구매와 관련해 지난 10년간 현황과 향후 3년간 계획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과 규정에 근거해 가격 등의 조건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는 대신 정치적 차원에서 무기구매를 거론하면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자주국방’이라는 구호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무기 구매가 빚은 부작용들

한국은 지난 10년간 미국 방산업계의 ‘큰손’이었다. 국방기술품질원이 지난 1월 발간한 세계 방산시장 연감에 따르면, 2008~2017년 한국은 67억3100만 달러(7조6000억원)의 미국 무기를 구매, 미국 무기 수입국 가운데 세 번째로 많은 규모를 기록했다. 

이같은 ‘올인’은 군 전력증강 효과를 가져다줬지만, 국부 과다 유출 등의 부작용도 낳았다. 

공군 E-737 조기경보통제기가 성능점검을 위해 비행을 하고 있다. 보잉 제공
E-737 조기경보통제기는 미국 보잉사가 해외 판매용으로 개발한 기종이다. 미군이 쓰지 않은 기종이라 정비비가 많이 들고, 그나마도 해외에서 정비를 수행해 수천억원의 비용이 미국으로 넘어간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의 국회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3~2017년 E-737의 해외 정비비는 1714억원에 달했지만, 국내 정비비는 1억원에 불과했다.

국방부가 지난 7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E-737 피아식별장치(IFF)와 데이터링크를 2024년까지 5000억원을 들여 개량하기로 결정했을 때, 레이더가 개량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비용 문제가 원인이라는 평가다. 방산업체 관계자는 “레이더까지 포함하면 1조~2조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천억원을 투입하고도 중국과 일본, 러시아 스텔스 전투기를 탐지해야 할 조기경보통제기의 ‘눈’인 레이더는 2000년대 초반 수준에서 발전을 멈춘 셈이다. “돈은 돈대로 쓰고도 제 성능은 나오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공군 F-15K 전투기가 타우러스 공대지미사일을 탑재한 채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미국의 수출 승인 문제로 전력화 일정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있다. 군은 2005년부터 미국의 재즘(JASSM)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도입을 추진했으나 미국은 군사기밀 유출 가능성을 이유로 판매를 승인하지 않았다. 결국 독일제 타우러스(TAURUS) 미사일 구매로 선회했지만 사업 절차는 수년간 지연됐다. 

정부가 사업 절차를 완료하기 전에 미국이 “과거에 많이 구매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자국산 무기구매를 기정사실화하기도 한다.  

지난해 4월 주한미군은 ‘2018 전략다이제스트(Strategic Digest)’에서 “2018~2020년 P-8A 해상초계기와 SM-3/SM-6 함정 탑재 요격미사일, 해상작전헬기가 한국군에 도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략다이제스트 발간 당시 이들 무기는 도입 결정이 이뤄지지 않아 “미국제 무기구매를 마치 확정된 것처럼 명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 해군 MH-60R 해상작전헬기가 필리핀 해역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MH-60R은 해상작전헬기 12대 추가 도입 사업의 유력 후보기종이다. 미 해군 제공
하지만 전략다이제스트 발간 직후 P-8A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도입이 결정됐고, 해상작전헬기 12대 도입 사업에서는 미국 록히드마틴 MH-60R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함정 탑재 요격미사일도 두 기종을 모두 구매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주한미군의 ‘설레발’이 근거가 있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부분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뒤 지상정찰감시기, 전자전기 등 향후 진행될 대형 무기도입 사업도 미국 업체가 수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업체가 다수 참여해 수주 경쟁을 펼치면 정부는 협상과정에서 가격 인하와 정비기술 이전 등의 조건을 관철하기가 용이하다. 하지만 기종 선정 이전부터 미국 무기 도입이 기정사실화되면 유럽과 이스라엘 업체들은 참여를 꺼리게 된다. 수주 가능성이 낮은 사업에 거액을 투자할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위험을 안고 있다.

방위사업 비리나 정치적 논란도 미국 무기구매 과정에서 주로 발생한다. 전두환, 노태우 정부의 율곡사업 비리, 김영삼 정부 시절 미국 로비스트 린다 김 사건도 미국 전투기 등의 도입이 문제였다. ‘한국은 미국 무기를 많이 산다. 미국 무기 판매를 중개하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인식과 정무적 판단이 개입한 결과였다.   

◆도입 다변화 등 대안 추진 필요

우리 군은 유럽과 이스라엘에서도 필요한 무기를 구매해왔다. 하지만 미국이 제작하지 않거나 판매하지 않는 무기의 대체재 성격이 강했다. 1970년대 미국이 하푼 대함미사일 판매를 거부하자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을 구입했다. 미국이 재래식 잠수함 건조를 포기하자 1980년대 독일에서 209급(장보고급) 잠수함을 도입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무기 도입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 무기를 구매해야 상호운용성이 보장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방규격을 충족하는 국가의 무기라면 구매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군 KC-330 공중급유기가 급유장치를 노출한 채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KC-330 공중급유기가 대표적 사례다. 유럽 에어버스가 개발한 A330MRTT 공중급유기의 한국형인 KC-330은 2015년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 당시 미국 보잉 KC-46A와 맞붙었다. 당시에는 KC-46A가 쉽게 승리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KC-330의 승리였다. 

공군 무기 도입사업에서 미국 대신 유럽 기종이 채택된 것은 KC-330이 처음이었다. 한미 연합작전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는 미국 무기가 유리하다는 상호운용성 논리가 밀린 이례적 결정이었다. KC-330은 유럽과 중동 국가에 이미 실전 배치된 반면 KC-46A는 도입 결정 당시 개발이 완료되지 못했고, 미 공군 납품도 예정보다 2년 늦어진 상태다. 상호운용성 논리에 의해 KC-46A를 선택했다면 우리 군 전력화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우방들도 무기 도입 다변화를 추구하는 모양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F-15SA 전투기 외에 유로파이터도 운용중이며, 유럽 에어버스 A400M 수송기와 한국의 방공무기 도입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무기를 주로 쓰던 이집트도 프랑스제 전투기와 강습상륙함, 러시아제 헬기 등을 도입했다. 

엔지니어들이 국산 신형 대포병레이더를 점검하고 있다. LIG 넥스원 제공
국내 방위산업 기반을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정된 국방예산 속에서 미국 무기구매 규모가 늘어나면 국내 방산업체에 돌아갈 몫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일감이 줄어들면 방위산업 생태계가 흔들리고, 이는 해외 무기 도입 의존도를 높이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범정부적 차원에서 방위산업 진흥 기조를 강화해야 외국 방산업체와의 무기도입 협상을 주도할 ‘지렛대’를 얻을 수 있다.

대만은 미국에서 막대한 무기를 구매하면서도 국내 방위산업 기반 유지를 위해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24일 융잉(勇鷹) 차세대 국산 고등훈련기를 공개한 행사에서 “‘국기국조’(國機國造:자국 전투기는 직접 제작함)가 옳은 길이며 그 노력은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고등훈련기까지 외국에서 구매하면 연구 개발능력을 회복할 기회가 사라질까 우려돼 대만 정부는 고등훈련기의 국산제작 입장을 고수해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본은 해외 도입 규모가 늘어나면서 자국 내 방산업체의 수익성과 기술 개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한국은 그동안 한미 동맹 강화를 명분으로 미국 무기를 구매해왔다. 한미 동맹은 한국 안보에 중요한 요소지만, 정치적 차원에서 미국 무기를 많이 도입하는 것이 동맹과 안보 강화의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국익 우선’ ‘준법’을 기준으로 우리 군이 필요한 무기를 사도 한미 동맹은 흔들리지 않는다. 실무자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까지 미국 방산업체의 ‘호갱’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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