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특수부 축소' 외친 조국, 민정수석땐 '특수부 유지'
"망치 든 사람에겐 못만 보인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되기 전,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한 부장검사가 했던 말이다. 검찰의 대표적 병폐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검사가 사건을 인지해 직접 수사에 착수하게 되면 무리를 해서라도 기소하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그간 검찰이 직접수사를 무기로 과도한 검찰권을 사용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도 '검찰개혁' 찬성…'환부' 잘못 짚은 건 文 정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첫 검찰총장이던 문무일 전 총장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는 현 정부 국정과제 1호인 검찰개혁에 발맞춰 검찰 자체 개혁의 하나로 형사‧공판부 강화와 특수부 축소 방침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문 전 총장은 울산지검과 창원지검 등 전국 검찰청의 특별수사 부서 43개를 폐지하고, 1만4000여 건에 달하던 검찰의 인지 사건도 2018년 기준 8000여 건으로 대폭 줄었다.
법조계에선 특수부 축소 방침을 무위로 만든 건 다름 아닌 현 정부라는 평가가 많다. 2018년 정부가 만든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이른바 검찰개혁 정부안엔 형사‧공판부의 권한을 약화하고 특수부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안이 담겼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검찰개혁 정부안을 주도한 인사는 다름 아닌 조국 장관이다.
'특수부 축소' 외친 조국 장관…민정수석 땐 '특수부 강화'
그랬던 조 장관의 입장이 바뀌었다.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금태섭 의원은 조 장관에게 "후보자가 주도적으로 만든 수사권 조정 정부안을 보면 검찰의 특수수사 기능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따졌다. 조 장관은 "이론적으로나 원론적으로 보자면 저는 금 위원 말씀에 크게 동의를 하고 있다"면서도 "당시 두 분(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합의한 시점에서 그 정도가 실현 가능한 최선이 아니었느냐고 두 장관님이 판단하신 것 같다"고 답했다. 검찰개혁 정부안이 본인의 소신과는 어긋나지만, 당시 법무부와 행안부의 합의를 존중해야 했다는 뜻이다. 당시 정부안 발표 내용을 브리핑했던 사람은 정작 민정수석이던 조 장관 자신이었다.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엔 아예 형사·공판부를 강화하고 특수부를 축소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른바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일선 검찰청 형사·공판부 검사들의 고충을 접하고 검찰 내부의 '환부'인 특수부를 도려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검찰 내 '환부'로 취급됐던 형사·공판부 검사들은 갑자기 '노고를 치하받는' 대상이 되자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지방 검찰청의 한 형사부 부장검사는 "달라진 건 조 장관과 가족이 검찰 수사대상이 된 것 말곤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칼에는 눈이 없다…'검찰개혁'은 자기방어적 수단"
심재륜 전 고검장은 2009년 '수사십결(搜査十訣)'이란 글에 "칼에는 눈이 없다"고 썼다. 그는 "칼에는 눈이 없어 그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라며 "칼을 쥐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찔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덧붙였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조 장관이 현재 주장하는 '검찰개혁'은 양날이 예리하게 선 검찰의 칼(劍)이 주인을 향하자 나온 자기방어적 수단으로 보인다"며 "과도한 검찰권 남용을 비판하려면 집권 초기 힘이 강할 때 검찰의 칼을 바로 부러뜨렸어야 옳다. 지금은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고 지적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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