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과 6·25 참전한 교사..70년 만에 '전사자 인정'

이주찬 기자 2019. 9. 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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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최근 학도병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실제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린 제자들을 이끌고 참전했다가 숨진 고등학교 교사가 있었습니다. 고 박규원 소위인데 그동안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전사자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최근에서야 전사자로 인정하란 권고가 나왔습니다. 군이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70년이나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이주찬 기자가 박 소위의 행적을 따라가 봤습니다.

[기자]

유족들은 고 박규원 소위가 6.25 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고 증언해왔습니다.

하지만 군은 지난 70여 년 동안 침묵했습니다.

박 소위의 참전 내역과 의무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지난해 출범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박 소위의 1950년 당시 행적을 조사했습니다.

강원도 강릉의 고등학교 교사였던 박 소위는 6.25가 발발하자 제자 수십 여 명과 함께 경주로 내려갔습니다.

북한군에 쫓겨 후퇴하는 육군 8사단에 입대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8월 23일 박 소위는 육군 8사단 작전참모 보좌관으로, 제자들은 학도병으로 국군 마지막 저지선이였던 낙동강 전선에 투입됩니다.

[함정숙/고 박규원 소위 제자 : 너희들이 여기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 남학생들은 학도병으로 가야 한다고 데려가시고 저희들(여학생)은 8사단 정훈부에 가서 포스터도 붙이고…]

6.25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영천전투에서 학도병 대부분은 전사했고, 박 소위는 부상을 입고 부산 동래 군 병원으로 후송됐습니다.

[박흥원/고 박규원 소위 동생 : (부산 군 병원에) 형님 면회를 4~5번 했는데 당시 부상 상태는 가슴에 포탄 파편을 맞은 중환자였습니다.]

군은 낙동강 전선을 지켜내고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하면서 서울을 향해 올라갔고, 부산에 있던 군 병원도 함께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박 소위 등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중상자들은 경남 통도사로 이송해 치료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군은 박 소위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전역 조치했습니다.

[성파스님/통도사 방장 : 중상자들을 많이 치료를 했는데 하루에 10명 이상 상망자가 나와서 매일 여기서 화장을 했다고 합니다.]

진상규명위는 이 같은 내용을 확인하고 박 소위를 '전사자'로 인정하도록 국방부에 권고했습니다.

[이봉희/고 박규원 소위 아내 : 23살에 혼자 되어서 90살 이상 살았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사는 동안 고생도 있고 좋은 날도 있고 살았는데, 이렇게 좋은 일을 해 주시니 감사할 따릅니다.]

(영상그래픽 : 정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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