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0분' 비행기 정비의 비밀

인천공항 | 홍재원 기자 2019. 9.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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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14시간 날아오고 100분 만에 재이륙…어떻게 가능할까?

지난 23일 인천국제공항의 활주로에서 토잉 트랙터(예인 차량)가 여객기 앞에서 앞바퀴를 밀어 비행기를 이동시키고 있다. 비행기는 착륙 후 탑승게이트까지 올 때는 자체 엔진을 사용하지만, 게이트에서 떠날 때는 예인 차량에 의해 움직인다. 우철훈 선임기자

부푼 마음으로 인천국제공항 탑승구를 통과해 연결 통로를 지나 태국 방콕행 비행기에 오르는 그 순간, 이 비행기가 방금 전 다른 편명으로 미국에서 14시간을 날아온 항공기란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중간에 주어진 시간은 단 100분. 해당 비행기는 이 시간 안에 모든 정비와 객실 준비를 마치고 다른 편명으로 바꿔 다시 이륙해야 한다.

비행기는 사실상 늘 하늘에 떠 있어야 하며 그래야 항공사 경영이 돌아간다. 비행기 운항 노하우의 결집체이자 일반인에겐 ‘1급 기밀’인 조업정비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한국 민간항공사 설립 50년 만에 언론 최초로 ‘100분 매직’ 전 과정을 취재했다. 지난 23일 미국 시카고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KE038이 태국 방콕행 KE651편으로 바뀌어 이륙하는 순간까지였다.

■ 연료·물·기내식 동시 주입

게이트 도착하자마자 브리지 연결

승객·수하물 내린 후 ‘본격 정비’

기내는 직원 26명 순식간에 청소

밖에선 정비사가 주요 기관 점검

기장·승무원 탑승 후 ‘손님맞이’

23일 오후 3시40분. 경향신문 취재진은 대한항공 226번 게이트 바깥의 활주로에 내려가 KE038편 비행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B777-300(277석) 비행기가 미국에서 14시간을 날아 3시50분에 도착하기로 돼 있었다. 3시44분, 유도 요원 5명이 등장했다. 이 중 ‘윙 워커’로 불리는 2명이 활주로 쪽으로 달려가 차량과 비행기를 통제하고 나머지는 고임목 설치, 유도봉 동작 등을 준비했다. 이미 노란색 수하물 하기 장비(리프트)와 ‘달리’라 불리는 화물 운반 장비가 대기 중이었다.

3시54분 KE038편 B777-300 비행기가 마침내 게이트 앞에 도착했다. 2분 후, 비행기와 공항을 연결하는 통로(브리지)가 경보음을 내면서 움직여 게이트에 정확히 도킹했다. 일등석·비즈니스 승객용과 이코노미 승객용 2개의 통로다. 비행기 엔진이 멈추고 승객들이 통로를 통해 내리기 시작했다.

객실 정비팀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건 이때부터다. 가장 먼저 활주로에서 전원 케이블을 꺼내 비행기에 연결했다. 비행기 안에 에어컨뿐 아니라 계기판이나 수하물 하기 장치 구동 등을 위해 전력을 계속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내식·면세품 승하기 장비(캐터링 리프트)가 비행기 양쪽 앞뒤에 붙어 물품을 꺼내고 실었다. 승객 수하물과 화물을 빼내는 차량도 비행기 우측 앞뒤에 붙어 일등석·비즈니스 승객 수하물부터 꺼냈다.

승객들이 다 내린 뒤 활주로에서 연료 케이블을 꺼내 비행기에 연료 주입을 시작했다. 물탱크를 실은 차가 와서 물도 주입했다. 이 모든 과정이 비행기가 엔진을 끄고 승객들이 내리는 것과 동시에 진행됐다.

■ 여성 직원 26명, 객실 단장에 25분

4시10분, 승객들이 모두 내렸다. 기내 단장을 맡은 전문회사 ‘EK맨파워’ 소속 여성 직원 26명이 일제히 계단을 통해 기내로 진입했다. 취재진도 들어가 기내를 둘러봤다. 14시간 비행의 흔적, 전쟁터처럼 엉망인 비행기 내부를 직원들이 치우기 시작했다. 앞서가는 직원들이 좌석 머리쪽과 방석 쪽 커버, 쿠션 등을 큰 비닐백에 쓸어담은 뒤, 뒤따라오는 직원들이 새 쿠션과 커버를 씌우는 식이다.

다만, 좌석 시트를 모두 교체하는 것은 아니다. 오염이 심해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트를 바꾼다. 취재진이 본 건 딱 1석이었다. 대부분 좌석은 가볍게 털어내는 식으로 정비한다. 이어 남성 직원들이 진공청소기로 바닥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청소 요원들이 빠져나온 건 4시35분, 26명이 정확히 25분 만에 기내 청소와 단장을 마쳤다.

기체 바깥에서는 정비사 1명이 항공기 점검을 하고 있었다. 백종철 정비사(56)는 “주로 엔진 블레이드(날)나 타이어 등 각종 주요 장치가 있는 곳을 외관 점검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조종석의 각종 경고등이 켜졌는지 등을 확인하는 게 ‘100분 매직’ 때 하는 경정비다. 진짜 정비는 주기적으로 따로 실시한다. 길이 180m, 폭 90m, 높이 25m로 대형항공기 3대가 동시에 정비를 받을 수 있는 격납고에서다. 취재진이 이곳을 가보니 공교롭게도 똑같은 B777-300 기종 다른 항공기가 랜딩 기어(착륙 바퀴)를 교체하고 있었다. 비행시간과 기체 연령에 따라 A체크(1~2개월 주기), C체크(약 2년 주기), D체크(약 6년 주기) 등으로 나눠 점검하는데 이날 점검 중인 항공기는 C체크 중이었다. C체크는 열흘 정도 걸린다고 한다.

■ “밀었어?”…‘바이패스 핀’ 번쩍

4시29분, 수하물과 화물이 다 내려졌다. 도착 35분 만이다. 4시40분, 기내식과 면세품 쪽 교체가 완료됐다. 5시, 급유가 끝났다. 약 47t의 항공유가 들어갔다고 한다. 이 무렵 기장과 출발편 승무원들이 탑승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 비행기는 방콕행 KE651편이 된 것이다. 비행기가 시카고발 KE038로 게이트에 들어온 3시54분에서 1시간가량밖에 걸리지 않았다.

같은 비행기지만 방콕행으로 바뀐 이 항공기에 다시 올라가봤다.

이은우 기장(44)은 “이륙 전 기체 외부를 점검하고 조종실 내부 계기판 등을 살핀다”고 설명했다. 승무원은 12명, 이들은 기내식 등을 운반 카트에 미리 세팅해두는 식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아울러 음식과 면세품 등 목록과 실물을 대조하고, 비상 보안장비 등 객실 안팎의 상태도 꼼꼼하게 체크했다. 공은아 객실 사무장(41)은 “오늘은 물품 하나에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며 웃었다. 비행기 바깥에서는 5시20분 방콕행 승객 수하물을 싣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KE651편 승객들은 5시35분 정시 탑승을 시작했다. 정확히 도착 101분 만이다. 동시에 전원 코드가 뽑히고 기체가 자체 발전을 시작했다. 5시55분이 되자 모든 화물 탑재가 끝났다. 그러나 기체 뒤편 수하물 리프트는 철수하지 않고 여전히 대기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6시5분경 환승객 한 명이 ‘지각 탑승’을 한다. 그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캐리어 1개가 리프트로 비행기에 실렸다. 6시8분, 브리지가 떨어지고 바퀴 고임목도 제거됐다.

대한항공, 조업정비 과정 첫 공개

“밀었어?” 한 공항 직원의 말이다. 비행기를 ‘토잉 트랙터’가 게이트에서 활주로 쪽으로 밀어내고(푸시백) 이륙 준비에 들어갔느냐는 뜻이다. 6시13분 푸시백이 시작되고 2분 후 엔진에 시동이 걸렸다. 6시18분, 활주로 직원이 앞바퀴 조향을 막고 있던 노란색 ‘바이패스 핀’을 뽑아 번쩍 들어 조종사에게 펼쳐 보여주는 것으로 모든 작업은 끝났다. 이륙해도 좋다는, 지상으로부터의 마지막 인사였다.

■ 착륙할 때 ‘쿵’…조종사 미숙? 그럴 리 없죠

활주로 노면 상태·풍속 따라

거칠게 부딪쳐야 ‘속도’ 낮춰

비행기가 착륙할 때 ‘쿵’ 소리를 내며 심하게 흔들리도록 하는 조종사가 있다. 승객들은 십중팔구 “조종사가 미숙한가 봐”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29일 “다소 ‘거친’ 착륙을 하는 건 조종사 실력 문제가 아니라 활주로 상태와 풍속 등을 감안한 의도적 조치”라며 “지상에 거칠게 부딪쳐야 비행기의 속도를 적정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경우가 잦다”고 했다. 착륙 후 대부분 비행기는 엔진을 거꾸로 돌려 역추진을 한다. 그만큼 제한된 활주로에서 속도를 줄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행기 꼬리 쪽에도 엔진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까이에서 보면 꼬리 쪽에 그을음이 있다. 그러나 이 엔진은 추진용이 아니다. 기내 전력 공급을 위한 발전 전용 엔진이다.

비행기 바퀴는 구를 수 있는 장치일 뿐 지상에서도 엔진으로만 전·후진할 수 있다. 활주로상의 후진 등으로 엔진 연료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끌거나 밀어주는 별도 차량을 많이 쓴다. 비행기 급유를 위해 유조차가 달려오지도 않는다. 마치 주유소처럼 활주로 아래에 기름탱크가 있어, ‘100분 매직’ 때 파이프를 꺼내 비행기 날개 한쪽(기체 왼쪽)에 꽂아 급유한다. 비행기의 양날개와 동체 아래 중심부가 연료탱크로, 하나로 연결돼 있다. ‘더 안전한 좌석’은 없다고 보면 된다.

기내식을 빨리 준비하기 위해, 승무원들은 승객 탑승 전 이미 카트에 따뜻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콜드 밀)만 미리 다 세팅해놓는다. 이후 식사 시간이 되면 출발 전 오븐에 넣어둔 나머지(핫밀)를 데워 접시에 놓는다.

취재진이 2시간 넘게 살펴본 시카고발 KE038편엔 일등석이 8석 있지만 같은 비행기라도 방콕행 KE651편은 일등석 없이 비즈니스석만 운영한다. 당초의 일등석은 비즈니스석으로 전환된다. 운이 좋으면 비즈니스석 티켓을 산 뒤 일등석에 앉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

인천공항 | 홍재원 기자 jw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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