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정권 실세들이 뿌리는 가짜뉴스.. 들통나면 궤변

안상현 기자 2019. 10. 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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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게이트]
"짜장면 먹으며 조국 집 압수수색" "촛불집회 200만" "윤석열 떡 돌려"
총리·與의원·親與인사들 앞장서 親文네티즌·매체의 가짜뉴스 유포
"베네수엘라·나치式 대중선동 수법"

정부·여당이 조국 법무장관 사태의 주요 고비마다 '가짜 뉴스'를 앞세워 지지층 결집과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친문(親文) 네티즌과 관변 매체가 감성을 자극하는 가짜 뉴스를 생성하면 이를 고위 공직자가 공개 석상에서 언급함으로써 확산시키는 동시에 공신력을 보태고, 추후 반박되면 침묵하거나 둘러대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200만 촛불' '짜장면 압수 수색' 등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일개 유튜버나 할 법한 무책임한 소리를 집권 여당 핵심 인사들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며 대중을 선동하는 상황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베네수엘라나 독일 나치 정부 같은 대중 독재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하는 전형적 수법이라는 것이다.

원래 '조국 집회(9월 28일) 참가자 200만명'은 집회를 주최한 친문(親文) 단체의 주장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튿날 여당은 대변인 공식 논평을 통해 이 주장에 권위를 덧입혔다. "200만 국민이 검찰청 앞에 모여 검찰 개혁을 외쳤다"고 했다. 여당 논평 관련 기사가 인터넷에 쏟아졌다. 이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과 정황 증거가 잇달아 제시됐다. 당일 집회 시간대 해당 지하철역에서 내린 총 승객 수가 10만명에도 못 미친다는 서울교통공사 집계 결과도 나왔다. 그러자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은 "숫자의 외피에 집착하지 말고 촛불의 진실을 직시하라"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앞서 민주당이 '확인되지 않은 숫자'를 공식적으로 앞세운 데 대한 사과는 없었다. 당사자인 조국 장관은 심지어 이날도 법무부 행사에 참석해 "수많은 국민이 검찰 개혁을 요구하며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며 이른바 '검찰 개혁'을 주장했다.

여권발(發) 가짜 뉴스는 지난달 23일 조국 장관 자택 압수 수색과 관련해서 특히 많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짜장면 압수 수색'이다. 압수 수색 다음 날 민병두 의원은 소셜미디어에 '압수 수색 나온 검찰이 짜장면을 주문해 시간을 때웠다'고 적었다. 그러자 소설가 공지영, 음식평론가 황교익 등은 '짜장면'을 기정사실화해 '장관 집 안에서 짜장면 냄새를 풍겨' '(짜장면에) 민주주의를 살고자 했던 수많은 국민들 가슴이 짓밟힌 것' 등의 글로 지지층 감성을 자극했다. 이후 '검찰 관계자들이 조 장관 아내 권유로 각자 한식(韓食)을 주문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민 의원의 며칠 뒤 페이스북 글에는 '한식(짜장면)'이란 표현이 슬그머니 들어 있었다.

'여자만 사는 집' 뉴스도 마찬가지로 감성을 건드린 가짜 뉴스였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27일 "여성만 두 분(조 장관 아내와 딸) 있는 집에 많은 남성이 11시간 동안 뒤지고 식사를 배달해 먹는 것은 과도했다"고 말했다. 이후 압수 수색 당시 조 장관 집에 아들(23)과 변호인 3명이 함께 있었으며 '11시간'에는 변호인 입회 요청에 따른 대기 시간과 조 장관 가족 요구에 따른 영장 재발부 시간 등이 모두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압수 수색에는 여성 수사 인력이 동참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총리는 30일 "보도가 엇갈린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가짜 뉴스로 대중을 속이는 방법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전유물이고, 여권이나 정부 인사들이 나서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주 교수는 정권발 가짜 뉴스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엠스 전보 사건'을 제시했다. 19세기 프로이센 비스마르크가 프랑스 대사가 보내온 전보를 조작해 언론에 유포한 사건이다. "프랑스 대사가 국왕을 무시했다"는 가짜 뉴스를 퍼뜨려 국민의 분노를 자극했고, 결국 프랑스와 전쟁을 일으켰다.

현대사의 대표적 대중 독재 국가인 베네수엘라에서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그를 계승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가짜 뉴스를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예컨대 2017년 야당 국회의원들이 의문의 폭력 조직에 위협받는 상황이 알려지자 정부가 돌연 "경찰 헬기가 총과 수류탄으로 대법원과 내무부를 공격하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후 쿠데타 시도 흔적이나 피해자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야당은 주장한다. 일본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불러온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가짜 뉴스의 근원도 일본 군국주의 정부 내무성이었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대중을 이용한 독재는 좌우(左右)를 가리지 않는다"며 "독일 나치 정권도 표면적으로는 독일 대중의 동의로 이뤄진 합법적 정권이었지만, 선전장관 괴벨스를 중심으로 가짜 뉴스로 대중을 선동·동원했다"고 말했다. 또 "현재 집권 여당의 모습은 의회 정치보다 국민투표를 선호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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