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시시각각] 방통위원장의 지상파 사랑

양성희 2019. 10. 2. 00: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상파 규제완화 검토 약속하고
미디어 비평 강화 주문도 함께
'정부 비판=가짜뉴스' 우려 커져
양성희 논설위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지상파 규제 완화 검토 방침을 밝혔다. 지상파에 미디어 비평 강화도 주문했다. 최근 지상파 3사 사장단 등과의 정책간담회 자리에서다. 우선 “지상파방송이 경쟁 심화로 재정적 위기와 사회적 영향력 하락에 직면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국민들이 지상파 위기가 미디어 전반의 공공성 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며 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누구나 언론을 자처하는 미디어 혼돈 속에서” “미디어 비평 등 저널리즘 기능을 복원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발언을 쏟아냈다. “과거 지상파 우위 상황에서 도입된 광고·편성 등의 비대칭 규제를 재검토해 개선해 가겠다”는 답도 내놨다.

지상파 사장단도 말을 받았다. 양승동 KBS 사장은 “지상파가 살아야 미디어 생태계가 건강해지고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훈 SBS 사장은 “올 연말이면 디즈니 OTT(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한국에 상륙하는데, 구한말에 외세가 조선을 침탈하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지상파의 위기감이 과장은 아니다. 지난해 지상파 3사의 광고매출은 7년 만에 반 토막 났다. 젊은 시청층의 이탈, 참신한 콘텐트의 부재, 시청률 저하, 유료방송의 추월과 유튜브 등의 맹추격이 적자행렬로 이어졌다. 디지털 매체 환경 변화에 따라 고정 TV 중심 지상파 독점 시대가 막을 내린 결과다.

이날 이들의 대화를 보면 ‘그들만의 세상’도 이런 ‘그들만의 세상’이 없단 생각이 든다. 과거 지상파가 우리 콘텐트 산업의 거점이었고 글로벌 OTT 기업의 공세에 맞선 국내 산업 보호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지상파 위기탈출’ 이 정부 대응을 요하는 국가적 과제일 이유는 없다. 지금 지상파가 공공성을 제대로 실천하는지도 의문이다. 일 년에 몇 번 하는 재난방송이 유료방송과 차별되는 공공성의 대부분이라면 말이다.

거기에 공영방송은 정권과 코드를 맞추며 늘 국민의 반을 적으로 돌리는 정치편향성으로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 조장에 한몫한다는 비판이 많다. 위원장이 특별 주문한 미디어 비평의 간판격인 KBS ‘저널리즘 토크쇼 J’만 봐도 그렇다. 진보 일색 패널에, ‘답정너’ 식으로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보수적인 미디어 때리기에 올인한다. 남을 비평하며 스스로는 기계적 균형조차 잃은 모순이다. 오죽하면 조국 보도들을 비판한 이 프로의 유튜브 생방송에 출연한 KBS 기자가 “이 프로그램은 조국에게 유리한 방송이 아니냐”고 했을까.

한국사회처럼 과도하게 정치화되어 있고 이념의 양극화가 심할수록, 실질적 타협을 끌어낼 수 있는 중간 지대가 필요하다. 그 역할의 최적임자는 단연 공영방송이다. 진보·보수 모두 시청자고, 모두 국민이기 때문이다. 모두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국가기간 공영방송인 KBS, 역시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수도권 공영방송’을 표방하는 tbs 교통방송이 정치 편향이 더 심하다는 아이러니를 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알려진 대로 전임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허위조작 정보’를 규제하라는 정부 지침에 불응했다가 임기 중 사실상 경질됐다. 방송학자로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맞섰다. 한상혁 위원장은 청문 과정에서는 “정부가 가짜뉴스 규제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했다가 취임 후 첫 방통위 회의부터 허위조작 뉴스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나 언론을 자처하는 미디어의 혼돈 속, 지상파의 미디어 비평 기능 복원”을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상파에 가짜뉴스 대책 미션을 던진 셈이다. 정부에, 자기편에 불리하면 가짜뉴스가 되는 세상이다. 민주주의 후퇴가 불 보듯 뻔하다. 공정성을 잃은 지상파의 추락도 더욱 심해질 터다.

양성희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