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포퓰리즘 덫에 빠진 대한민국

이정재 2019. 10. 3.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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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조국이다"라는 편 가르기
내로남불식 전형적 포퓰리즘
국민 쪼개고 나라 거덜 낼 것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 정부 출범 후 줄곧 품어왔던 의문 중 하나가 포퓰리즘 정부인가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포퓰리스트인가 아닌가였다. 포퓰리즘 필독서로 꼽히는 『누가 포퓰리스트인가』의 저자 얀 베르너 뮐러 프린스턴 대학교수는 몇 가지 특징을 꼽았다. 크게 6가지다. 다 들어맞으면 전형적 포퓰리스트다. 딱 1년 전 그 기준에 따라 문재인 정부를 진단하는 칼럼을 썼다.(포퓰리즘 감별법. 2018년 10월 4일자 26면) 그때는 긴가민가했다. 이를테면 심증은 있지만 확진은 못 하는 악성 종양 같았다고 할까. 1년이 흐른 뒤, 확실해졌다. 조국 사태 덕분이다.

①편 가르기=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선거 구호는 “차베스가 바로 국민이다. 우리는 수백만이고, 당신도 차베스다”였다. 요즘 집권 진영에서 뜬다는 구호도 “200만 명 모였다, 내가 조국이다”다. 편 가르기의 정점은 사법의 차별화, ‘차별적 법치주의’다. 거칠게 표현하면 “내 편 무죄, 네 편 유죄”다. 이 기준에서 보면 조국 장관과 그 가족은 당연히 흠결 하나 없는 ‘무죄’다.

②내로남불=야당일 때만 반대, 집권하면 문제 삼지 않는다. 야당 땐 그렇게 검찰 개혁이 시급하다더니 집권 2년여 동안 손을 놓고 있었다. 되레 ‘적폐 청산’ 칼춤을 부추겼다. ‘남의 국민’에겐 인권도 남의 일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압수 수색을 당한 변창훈 검사, 포승에 묶인 채 법정에 선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나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의 ‘인’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랬던 대통령이 지금 와서 “인권 존중 검찰권 행사”를 말한다. 내 편만 국민이요, 조국만 인권인가.

③희생자 코스프레=집권 후에도 희생자처럼 행세한다. 주류면서 비주류처럼, 다수면서 학대받는 소수자처럼 군다. 그래야 남 탓, 편 가르기가 쉽다. 조국 장관은 “이를 악물고 출근하고 있다”며 “제가 하루를 살아내는 게 개혁”이라고 했다. 권력의 정점에 있으면서 핍박받는 약자 행세다. 이런 자세가 적의 예봉을 피하고 반격하는 데 유리하다. 포퓰리스트의 전략에 달통했다는 의미다.

④영구집권을 꿈꾼다=국민의 정당한 대표자는 자신뿐이므로 영구 집권을 ‘당연하게’ 여긴다. “법보다 국민의 이익이 우선”이라며 그것에 맞게 선거제도를 바꾸고 헌법을 고치려고 한다. 여당 대표가 ‘100년 집권’을 공공연히 말하는 이유다.

⑤반(反)엘리트주의=포퓰리스트는 기득권에 반대한다. 이 정부는 ‘주류 세력 교체’라고 한다. 하지만 권력을 잡으면 똑같이 부도덕한 일을 한다. 다만 죄책감 없이 뻔뻔스럽게 한다는 점이 다르다. 정실 인사도 당당하게 한다. 부정부패나 부도덕을 들춰내면 포퓰리스트를 공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조국 장관을 보라. 그는 “국민이 절 꾸짖으면서도 촛불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국민팔이도 이 정도면 달인의 경지다. 물론 그가 말한 국민은 ‘내 국민’이다. 5000만 중 3000만의 반대는 무시한다. 내 국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⑥후견주의=“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진다”고 말한다. 지지받는 대가로 반대급부를 지급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가 국민의 삶을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3년 새 예산을 100조원 넘게 사상 최대 늘렸지만, 불평등은 커졌고 중산층은 줄었으며 나랏빚은 늘고 있다.

포퓰리즘의 종착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나라를 쪼개고 국민을 나누며 재정을 거덜 낸다.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페론의 아르헨티나가 생생하게 보여줬다. 지난 정부 때는 그래도 일본화(Japanification)를 걱정했다. 베스트셀러도 『세계가 일본된다』류였다. 이 정부 들어 경제의 모든 지표가 쪼그라들고 있다. 최후의 보루 수출은 10개월째 내리막에, 물가마저 마이너스다. 디플레 우려가 스멀스멀 번지면서 “일본만큼만 돼도 천만다행”이란 소리가 나온다. 이쯤 되면 아무리 포퓰리즘 정부라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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