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뒤끝작렬]조국, 진보 향한 날카로운 '면도날' 되나

CBS노컷뉴스 정영철 기자 2019. 10. 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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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정 가치 훼손하며 추진하는 檢개혁..진보 진영 '아노미적 딜레마'
강력한 정치적 자산인 '도덕적 우위' 포기..일부 진보 인사 강력 반발
특별감찰관 있었다면 조 장관 일가 문제 더 일찍 부각됐을 가능성
검찰 개혁을 위한 조국인가, 조국을 위한 검찰 개혁인가 헷갈릴 지경
조국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에 해묵은 얘기가 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하고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라는. 누가 처음 쓴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양 진영에 대한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우선 진보의 약점을 분열로 꼽은 건 '도덕적 우위'를 전제로 한 것이다. 신념과 명분을 놓고 쉽게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강경하다. 이렇다 보니 진보 안에서도 서로 등을 돌리고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소위 노선 투쟁이다. 진보는 상대에 대한 비판에 강하고 시끄러웠다.

보수에게 부패의 딱지가 붙은 것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으로 오래 자리 잡은 것과 무관치 않다. 70.80대년대 산업화시대와 군사독재 시절에서 힘 있는 쪽에 있었던 데가 보수다. 대신 보수는 잘 뭉친다. 보수 정치인들인 애용하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폭탄사는 보수 쪽의 문화를 대변한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이 '명언'도 빛을 바랬다. 보수는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태로 분열됐다.

국정농단 이후 보수는 노선을 놓고 두 갈래로 나뉘었다. 보수 통합.유지에 방점을 찍는 자유한국당과 상대적으로 개혁.변화를 추구하는 바른미래당(지금은 유승민 의원이 주축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다.

가장 오른쪽에는 태극기부대와 가까운 우리공화당이 있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보수가 다시 합쳐지면 이 명제를 다시 증명해낼 수도 있다.

보수 진영의 현실은 논외로 하고 다시 진보쪽으로 눈을 돌려보자.

친노.친문이 최대지주가 되면서 이쪽 진영은 획일화했다. 집권여당은 참여정부 시절의 분열을 '교훈' 삼아 당내 논쟁이 없다시피한다. 간혹 다른 목소리를 내면 극성스러운 지지층의 문자폭탄에 시달려 다시 입을 닫는 형국이다.

오히려 보수 정당보다 더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데 능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경직성이 커졌다. 여당 의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달리 내부적으로 여러 논의가 오간다"고 하지만, 무거운 분위기에 눌려 입도 무거워졌다. 정반합(正反合)의 생산적 논의는 실종됐다.

이런 모습에 균열을 낸 것은 아이러니하게 조국 법무장관이다. 두달째 정국을 휘젓고 있는 '조국 사태'가 시작됐을때 들었던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조 장관이 진보를 가르는 날카로운 '면도날'이 된 것이다.

조국 사태는 진보가 당연시했던 두 가치를 정면으로 충돌시켰다. 앞서 볼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이다. 같은 방향 속에서 방법론을 놓고 싸우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조국 사태는 무소불위 권력기관이라는 검찰을 상대로 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불완전한 자본주의의 부산물인 '불의.불공정'을 인정해야 하는 '아노미적 딜레마'를 진보 진영에 던졌다.

청와대와 여당은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정의.공정'을 후순위로 두는, 보기에 따라서는 후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정의.공정은 진보 진영의 태생 이유이기도 한 절체절명의 과제다.

여권은 '조 장관 가족에 대한 혐의가 불법으로 확정된 게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스스로 '도덕적 우위'도 내려놓았다. '불법이 아니라면 괜찮다'는 편리한 논리로 도덕성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전락시켰다.

일부 진보 인사들은 멘붕(멘탈 붕괴)에 빠졌다. 정의당을 떠나려고 했던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사실 윤리적으로 패닉 상태"라고 토로했다. 그는 조 장관과 서울대 82학번 동기다.

김경율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86세대의 도덕적 기반이 유실되는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본다"고 탄식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 저격수'로 재벌 개혁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이 둘은 모두 검찰 개혁을 강하게 주장한다. 조 장관의 진퇴가 개혁의 진퇴까지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최순실씨를 고발했던 진보 진영 시민단체인 투기자본감시센터도 조 장관과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 등을 대검에 고발하기도 했다.

조 장관이 도덕적 흠결(법적 문제는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에도 검찰 개혁을 이유로 장관직을 유지한다면 이는 또다른 '정치적 특혜'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특별감찰관이 있었다면 조 장관 문제는 더 일찍 표면화했을 것이다. 이번 정부들어 특별감찰관은 3년째 공석이다.

당시 이석수 감찰관은 우 전 수석 아들의 의경 보직 변경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 가족 회사인 정강 관련해선 횡령 혐의가 의심된다며 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쯤되니 조 장관이 검찰 개혁을 위한 도구인지, 검찰개혁이 조 장관을 지키기 위한 도구인지도 혼란스럽다. 청와대와 여당이 왜 조 장관에 이렇게 집착했는지도 조만간 밝혀지지 않을까.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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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정영철 기자] steel@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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