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연의 시시각각] 개망신법

최상연 2019. 10. 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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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수사를 개혁 반발로 몰고 가선
'사냥개 검찰' 바꾸겠단 다짐만 의심
산 권력 수사가 검찰 개혁 최종목표
최상연 논설위원
암 치료에 어떤 약이 얼마나 잘 듣는지 궁금한 건 환자와 가족만이 아니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원자력병원이 얼마 전 병원을 거쳐간 암 환자의 생사 관련 정보를 통계청에 문의했던 모양이다. ‘살아 계신지 혹은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부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어 쉬운 길을 택한 건데, 딱지 맞았다. ‘개인정보 보호’ 때문이다. 우린 지금 개인정보 활용 땐 매번 동의를 받아야 하고, 특정할 수 없도록 가명 처리한 정보 사용도 불법이다.

치료 정보가 병원 간에 자유롭게 오가면 환자에게 어떤 치료가 가장 효과적인지 인공지능(AI)이 판별해 낼 수 있다. 문제는 빅 데이터다. 업계서 풀어 달라고 본격적으로 호소한 게 2년 전이라고 한다. 소위 ‘개망신법’이란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보호법)을 바꿔야 하는 일이다. 결과는? 지난해 11월 국회에 상정됐지만 상임위서 논의조차 안됐다.

4차 산업 기반이어서 선진국은 오래 전에 정비했다. 하지만 우린 프라이버시 노출에 대한 공포감이 높은 장벽을 쌓았다. 겁 먹을 만은 하다. 대규모 개인정보가 툭하면 유출되는 나라다. 인사청문회 난타전을 모두가 보고 있다. 총리는 ‘장관직을 고사하는 인사가 뜻밖에도 굉장히 많다’고 국회서 말했다. 검찰청 포토라인도 있다. 피의자 약점만 잡으면 얼마든지 개망신을 줄 수 있고, 준 게 대한민국 검찰이다.

서초동에 몰려간 시위대는 검찰의 야비한 수사 관행과 조직 이기주의에 분노를 쏟아냈다. 일리가 있다. 혐의와 무관한 자료까지 탈탈 터는 압수수색, 여기서 안 나오면 저걸 파는 별건 수사, 무차별 피의사실 공표가 다반사다. 그런데 따져볼 건 법 집행을 가장한 이런 폭력이 가능한 이유다. 권력, 정치 논리와 엮여서다. 역대 검찰총장 모두가 중립을 약속했지만 행동은 반대였다. 정권의 사냥개로 불렸다. 무소불위 힘은 그 대가다. 선진국은 안 그렇다.

전 정권, 전전 정권 사람들에게나 칼을 휘두른 우리 검찰이다. 살아 있는 권력을 겨눈 적은 없다. ‘인권’은 늘 내 편에게만 있다. 특히 이 정권 출범 후 그런 신기록이 양산됐다. 두 명의 대통령과 대법원장, 여러 고위공직자가 지독한 모욕감을 호소했고, 몇 사람은 수사 받다 목숨을 끊었다. 민정 수석이던 조국 장관이 그 때 검찰의 개망신 주기를 걱정하거나 경계한 적은 없다. 그래 놓고 자신의 흠엔 검찰의 개혁 반발이란다.

이런 이중 잣대가 조국 사태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흠 많은 그가 왜 검찰 개혁의 적임자냐는 거다. 혁명보다 어렵다는 개혁은 추진하는 리더가 성패의 관건이다. 존재 자체가 개혁의 아이콘이고, 불편부당해야 진정성과 공감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영이 안 서는 조 장관으론 이미 틀렸다. 게다가 그의 기준은 내 편, 네 편에 들이대는 잣대가 줄곧 다른 고무줄이다. 그래서 이 정부 인사가 늘 참사였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는 게 최고의 검찰 개혁이다. 그래야 전 정권이나 전전 정권에도 법을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표적 수사, 먼지털이 수사로 원성을 살 까닭도 사라진다. 방법은 간단하다. 검찰총장과 검사 인사권을 실질적인 중립 기관에 넘기면 된다. 물론 역대 어느 정권도 그랬던 적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전 정권을 두들겨 패면 적폐 청산이고 내 편을 뒤지면 개혁 반발이다.

‘조국 수사’는 시금석이다. 정말로 검찰 개혁을 하겠다면 청와대는 이래라 저래라 말고, 조 장관 옷을 벗겨야 한다. 야당 대표 문재인은 전 정권때 그렇게 요구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는 그런 약속이다. 지금 같은 청와대의 ‘내 편, 네 편’ 압박, 검찰 때리기론 아무 것도 못 바꾼다. 계속 사냥개로 묶어두겠다는 얘기다. 그냥 그 대로면 새 먹거리 산업을 위한 개망신법 앞날도 당연히 밝지 않다. 주말마다 검찰 개혁을 외치는 건 헛심만 쓰는 거다.

최상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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