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日너무 사랑해 귀화한 美교수 "왜 한국인 싫단 기사밖에 없나"

김상진 2019. 10.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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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베)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꺼림칙하다. 이전에는 일본이 좌익에 점령될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우익이 점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평생을 일본문화 연구에 천착했던, 그래서 말년에 일본에 귀화까지 했던 미국인 도널드 킨 컬럼비아대 교수가 생전에 지인에게 보낸 이메일(2013년 12월 27일 발송)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재집권한 지 1년 만인 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자, 이같은 심경을 토로한 것이다.


2012년 일본 귀화 '긴도나루도'
NHK는 지난 2월 96세로 타계한 킨 교수를 기리는 고별식이 모교인 컬럼비아대에서 지난달 27일 열렸다며 이날 공개된 이메일 내용을 전했다. 그와 교우했던 일본계 미국인 학자 찰스 이노우에 터프츠대 교수에게 발송된 50통의 편지(2012~14년 발송) 중 일부 내용을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공개한 것이다.

킨은 일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동일본 대지진 이듬해인 2012년 일본에 귀화해 긴도나루도(鬼怒鳴門)라는 한자 이름까지 지었다. 이와 관련, 그는 이노우에 교수에게 "외국인이 아닌 일본인으로서 의견을 내고 각오를 담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2012년 3월 일본 국적을 취득한 도널드 킨 교수가 자신의 한자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군 포로 심문…오키나와전 참전
킨 교수는 일본문학과 역사를 아우르는 세계적인 일본연구자였다. 킨이 남긴 일본 관련 저술은 일문판 30권, 영문판은 25권에 달한다.

일본문학을 서방에 소개한 선구자이기도 했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등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요시모토 바나나(吉本ばなな) 등의 작가가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세계에 진출하는 데도 그의 제자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 일본 정부는 2008년 킨에게 문화훈장을 줬다. 외국인으로선 처음이었다.

1955년 도널드 킨 교수(왼쪽 넷째)가 미시마 유키오(왼쪽 둘째), 오에 겐자부로(오른쪽 셋째) 등 일본의 문인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그는 타고난 언어 천재였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나고 자란 그는 1938년 16세 나이로 컬럼비아대 문학부에 입학했다. 같은 강의를 듣던 중국인 학생과 친해지면서 중국어와 한자 학습에 눈을 떴고, 어느 날 우연히 손에 넣은 일본 중세문학의 대표작『겐지 이야기(源氏物語)』 영역본을 읽고 감동 받아 일본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컬럼비아대는 1928년 일본문화연구소가 세워졌을 만큼 미국 내에서도 일본학 연구가 활발한 곳이다. 킨은 이 연구소의 설립자인 쓰노다 류사쿠(角田柳作, 1877~1964)를 스승으로 일본연구의 길에 들어섰다.

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미 해군 정보장교로 입대했다. 전선이 확대되자 일본군 포로 심문 통역관으로 참전했고, 45년 5월 마지막 결전인 오키나와 전투에도 투입됐다.


혐한·반일만 다루는 미디어 비판
이런 전쟁 체험은 그가 평생 ‘일본의 평화’를 고민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킨은 이노우에 교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두번 다시 일본이 전쟁의 괴로움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만약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난다면 종막(終幕)을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려는 일본 정치권의 움직임, 역사와 평화에 무관심한 일본의 현실에 대한 실망감도 감추지 않았다.

“(헌법과 올림픽에 대한 내 생각이 신문에 게재됐지만) 지금까지 반응을 보내온 사람은 알고 지내던 전직 신문기자와 제자 2명뿐이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2014년 1월 16일)
일본 근·현대사에 정통한 그는 이웃 국가인 일본과 한국이 끊임없이 갈등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월간지에는 ‘일본인은 왜 한국인을 싫어하나’ ‘한국인은 왜 일본인을 싫어하나’ 같은 (내용의) 기사들뿐이다.” (2014년 2월 13일)
1600쪽이 넘는 킨의 저작 『메이지라는 시대(明治天皇)』에는 일본이 조선을 병탈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킨은 이 책에서 메이지 일왕을 자제력을 갖춘 근대 군주로 평가하면서도 ‘한일관계의 불행한 근대사의 씨앗이 메이지 치세에 뿌려졌다’고 적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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