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생계급여 깎고 또 깎고

박현정 2019. 10. 4. 05: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빈곤층 울리는 '삭감 복지'
사업 실패에 아내·6남매 뿔뿔이
부양의무자 소득 증가 이유로
입금되지 않은 돈 소득으로 간주
40만원 급여 중 30만원 깎이기도
급여 원상회복 과정도 '가시밭'
‘생계급여’를 받아야 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간주부양비’로 인해 생계 급여마저 삭감당하는 가구가 약 6만2천가구에 이른다. 이 가구들 중 60%가 1인 가구다. 사진은 홀로 사는 한 어르신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없이 지내니 천원이 엄청난 돈이더라 이거여. 그런데 (생계급여를) 까고 또 까고…. 돈이 없는 게 이렇게 서러울지 몰랐어. 이렇게 된 게 창피하니까 친구들한테 도와달라 말도 못해. 이걸 누구한테 하소연 하겄어요.”

30일 <한겨레>와 만난 일흔살 김철수(가명)씨는 한숨을 자주 내쉬었다. 서울에서 홀로 생활하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인 그는 생계급여가 입금되는 매달 20일이면 은행에 들러 통장 정리를 꼭 한다. 월 21만원의 생계급여가 또 깎이지 않을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영문도 모른 채 생계급여를 깎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 입금되지 않는 소득

김씨가 빈곤의 늪에 빠진 건 20년 전부터다. 한때 잘나가던 사업이 망하고 보증까지 잘못 서는 악재가 겹치면서 건강마저 잃었다. 현재 1인가구는 생계급여 지급 기준인 51만2102원에서 월 소득인정액(소득평가액+재산의 소득환산액)을 빼고 나머지 금액을 생계급여로 받을 수 있다. 일할 수도, 모아둔 재산도 없으니 한달 소득은 당연히 ‘0’원. 그런데도 생계급여가 21만원인 까닭은 매달 30만원씩 받는 기초연금이 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입금조차 되지 않은 소득 때문에 그의 생계급여는 자주 깎였다. 바로 ‘간주부양비’ 때문이다. 2015년 말 김씨가 지역 주거복지센터를 처음 찾은 뒤, 최근까지 상담한 내용을 보면 간주부양비 탓에 생계급여 ‘삭감→복원’ 과정이 수없이 되풀이됐다. 간주부양비란 김씨 같은 기초생활수급권자의 자녀나 부모 등 부양의무자 소득수준이 ‘부양능력 미약’ 구간일 경우 부양비를 지급할 것으로 간주하는 금액이다. 이러한 간주부양비는 기초연금과 마찬가지로 수급 가구 소득으로 잡혀 그만큼의 생계급여가 자동 삭감된다.

■ 연락 끊긴 여섯 자녀에게 부양책임

김씨가 ‘자녀들 소득 때문에’ 생계급여가 깎이기 시작한 건 2015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기초연금(약 20만원)을 신청하기 전이었고, 약 43만원의 생계급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달부터인가 3만~4만원이 덜 입금됐다. 월세 20만원이 밀려 있던 그에겐 1만원도 아쉬웠다. 결국 주민센터를 찾아갔다. “결혼하신 따님네 소득이 조금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도 한때 가족이 있긴 했다. 삶에 풍파가 몰아치면서 아내와 헤어졌고, 자녀 여섯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지금은 자녀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현행법은 자식들에게 그의 부양의무 책임을 떠넘긴다. 2016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진 매달 생계급여 40여만원 가운데 무려 30만원이나 깎였다. 자녀 6명 가운데 누군지도 모르는 1명의 소득이 상승하면서, 간주부양비가 매겨졌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자녀 소득이 달라져 간주부양비가 추가로 더해졌다. 정부는 해마다 상·하반기 두차례 수급자와 부양의무자 가구의 재산과 소득 변동 내용을 조사해 수급 자격 유지 여부와 급여액을 조정한다.

그의 통장엔 돈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생계급여가 깎였을 때, 이를 원상태로 돌리는 과정도 험난했다.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하는 상황을 ‘예외적으로’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복지부가 발간한 2019년 기초생활보장사업 안내를 보면, 수급권자한테서 가족관계 해체 소명서를 받아 수급권자와 부양의무자 가구 금융 정보 등 사실 조사를 기반으로 지방생활보장위원회(지생보위) 심의·의결을 거치게 돼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급권자들은 지나치게 많은 증거자료 제출을 요구받으며, 지생보위 심의 기회도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빈민단체 활동가들 의견이다.

■ 가족관계 해체를 증명해야 하는 고통

가족관계 해체는 빈곤층 어르신들이 스스로 드러내길 꺼리는 상처다. 김씨 역시 생계 곤란을 겪으면서도 자녀와 관계를 제 손으로 끊어내는 걸 3년 동안 망설였다. 지난해 10월 또다시 자녀의 소득 변동으로 10여만원의 생계급여가 깎이자 결국, 가족관계 해체 사유서를 써서 주민센터에 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이야기를 오가던 김씨에게서 눈물 어린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생계급여 수급자들을 살펴온 한 서울시 사회복지 공무원은 “간주부양비 때문에 생계급여가 깎이는 가구의 절반 이상은 실제 부양의무자한테서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가족해체 기준이 모호할 때가 있고, 부정 수급을 염려하는 소극적 행정 탓에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동영상 뉴스 ‘영상+’]
[▶한겨레 정기구독][▶[생방송] 한겨레 라이브]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