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기다렸어도..'대기자'조차 되지 못한 사람들 [공공임대주택-구멍뚫린 복지(1)]

김지원 기자 입력 2019. 10. 4. 06:04 수정 2019. 10. 4. 12: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한 노인이 서울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기슭에 앉아있다. 한 해에 공공임대주택 16만여채가 지어지지만 여전히 그곳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은 외곽으로, 비주택으로 밀려난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10년전부터 공공임대 모집 공고만 바라보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어디에도 신청하지 못하고 있으니 전 ‘대기자’가 아닐까요?”

박현미씨(이하 가명·42)는 차근차근 손가락을 꼽았다. 네 아이의 가정통지서 등이 어지럽게 꽂힌 작은 코르크판엔 구깃한 공공임대 입주 전단지들이 함께 꽂혔다. 박씨 가족은 경기도의 한 낡은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4살·12살·13살·17살 자녀와 부부가 함께 산다. 2008년 이래 공공임대 관련 공고가 뜰 때마다 알아보고 있지만 박씨가 정작 지원한 것은 단 한번 뿐이다.

대기자수 4만4938명. 현재 전국 영구임대아파트에 신청을 하고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예비 입주자)다.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매입임대, 전세임대 등은 ‘물량’ 자체가 적을 뿐더러 공고가 나와야 지원이 가능하거나 주택 형태의 공급이 아니라서 사실상 대기 명부조차 없다. 조건이 맞지 않아 신청도 못하는 경우도 많다. 추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주거취약계층들은 ‘대기자’조차 되지 못한다.

경향신문은 현재 주거 상향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합한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없었거나 혹은 오랜 기다림 끝에 공공임대주택에 진입한 주거취약계층 가구 10곳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대상 가구의 현 주거 유형은 영구임대아파트 3곳, 민간 임대 다세대주택 3곳, 매입임대주택 2곳(LH일반·SH주거취약계층), 비주택주거 1곳, 노숙인 시설 1곳이다.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가운데 저소득층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저렴한 보증금과 임대료를 제시하는 유형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적은 공급량이나 비싼 보증금, 특정 입지에 물량이 편중돼있는 문제 등으로 인해 정작 주거복지를 절실하게 필요로하는 이들에게 혜택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픽 성덕환 기자thekhan@kyunghyang.com

■“단돈 100만원이 없어서”…보증금의 벽

주거취약계층에게 있어 ‘보증금’은 입주를 포기하게 만드는 1차 장벽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대표적인 공공임대 유형인 영구임대아파트, 매입임대주택조차 월세, 관리비 외에도 일정 정도 보증금을 받고 있다. 매달 임대료는 주거 급여로 충당이 된다 해도 처음 입주 시 보증금엔 고스란히 ‘목돈’이 들어간다.

지난해 8월 SH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16.5㎡형에 입주한 김승학씨(54)는 그간 입주를 위한 보증금을 모을 수 없어 사실상 8년이 넘는 기간을 ‘대기’한 끝에 한곳에 정착하게 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노숙 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매입임대주택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약 20여년 간 고시원과 거리를 전전했다. 조막조막 벌어 한달 고시원비 20만원정도를 감당할 수 있을 무렵이면 고시원에 살다가 거리로 나오기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일년에 반절 넘게 ‘지붕 없는 집’에서 잤다. 김씨는 먹는 것보다 자는 것이 더 절실했다고 말한다. 그는 “노숙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거리로 나와 처음엔 찜질방같은 곳에서 자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최악의 선택으로 밖에서 자게 된다. 노숙 반년이면 겉으론 멀쩡해보일 수 있어도 하루 3시간도 못자 속은 골병이 들어 무너진다”며 “건강이 나빠 일을 못구하고, 일을 구하지 못해 건강이 나빠지는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했다. 20년간 병원에 가본 것도 한손에 꼽는다. 그는 예순이 넘지 않은 나이에 치아가 한개도 남지 않았다.

그가 처음으로 매입임대주택 신청을 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목돈’ 나올 구석이 생기면서다. 그는 지난해 5월 조건부 수급 자격을 얻었다. 첫 수령 땐 신청 시점부터 계산해 200만원 정도의 3개월치 생활비를 한번에 받을 수 있다. 김씨는 “산술적으로 따지면 고시원 방세 30만원을 일곱달을 모아 200만원을 만들 수 있다지만 한달에 많아야 몇십만원으로 생활해야 하는 수급, 취약계층에게 있어 저축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대부분 보증금의 벽 때문에 아예 신청조차 못한다”고 말했다.

그가 입주한 ‘SH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의 경우 고시원, 쪽방촌, 시설 등 거주자를 대상으로 공급하는 물량이다. 보증금이 100만원 선으로 일반 매입임대에 비해 저렴한 편이라 공급 필요성이 높다. SH에 따르면 2014년부터 지난 7월 말까지 총 230호가 공급된 상태다. 하지만 그마저도 230호 가운데 ‘100만원’짜리는 10분의 1 수준인 20채 가량이다. 기존에 다른 명목으로 지원해온 사업을 통합하면서 보증금이 10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매입임대주택들도 같은 이름으로 묶인 까닭이다.

최승수씨(66)가 낡은 판자집이나마 ‘반지하’서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살던 곳이 철거 위기에 놓이자 보증금 400만원을 긴급 지원받았기 때문이었다. 최씨는 “풀냄새를 맡으니 사람 사는 것 같아져서 좋았”지만 산기슭 야외 주차장 안쪽에 가건물처럼 세워진 건물이라 외풍이 심하고 몸이 안좋아 연탄재를 버리러 수십m거리를 오갈수가 없어서 4년 전부터 공공임대로 이주를 생각하고 있다.

지난 2015년부터 서울 성북구의 한 야외 주차장 안쪽에 세워진 판자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승수씨(66). 외풍이 많이 들어 바깥에 비닐을 쳤지만 바람을 온전히 막지 못한다. 연탄재 버리기가 힘들어 겨울철 하루에 연탄을 8장씩 때다가 지난해부턴 4장만 때고 있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최씨가 1983년 시작된 서울살이 이래 보증금을 걸고 살았던 것은 2006년부터 잠깐 살았던 보증금 100만원·월세 22만원 옥탑방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무보증에 35~40만원짜리 월세를 전전했다. 무보증 월세가 더 비싼데도 세가 비싼 집을 고집한 것은 도저히 ‘100만원’ 마련할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세마저도 “몇달 못내가지고 쫓겨나가듯 나간적도 여러번”이다.

최씨는 IMF 때 가계수표 부도로 거액의 빚을 지고 2002년도 심근경색이 크게 와 쓰러진 뒤부터 변변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그 이후로도 작은 쌀가게, 슈퍼 등을 운영하거나 단기 일자리를 전전하던 가운데 거듭된 수술로 인해 건강이 점점 안좋아져 2014년부터 기초수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끼니마다 한웅큼씩 먹는 약 말고도 항상 품에 하얀 약이 든 작은 갈색병을 들고다닌다. 언제 그자리에 쓰러질 지 몰라 비상용으로 가지고다니는 약이다. 최씨는 “지금 보증금도 내 돈이 아닌데 어떻게 몇백 몇천하는 곳을 가겠냐”며 “다만 연탄재 버리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집이면 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LH 전세임대에 신청했지만 1인 가구인데다 나이가 많지 않아 후순위로 밀리며 떨어졌다.

지난 6월부터 국토부는 취약계층이 초기 보증금 없이 전세·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해당 정책이 적용되는 것은 LH 공급 물량 뿐이다. 성북주거복지센터 김선미 센터장은 “주거취약계층의 상당수가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데 지역공사가 제공하는 물량이 국토부 방침을 따르지 않아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실제 최근 전세임대에 당첨됐는데 SH 물량이라서 보증금 450만원 때문에 입주를 포기한 사례가 있다”며 “저소득층이 주거를 이동할 때 가장 관건이 되는 것은 진입 시기의 목돈”이라고 말했다.

■다자녀가구를 위한 지원이 부족하다

6명 가족인 박현미씨는 작은방·큰방·거실 겸 주방으로 구성된 42.9㎡(약 13평) 반지하 집에 산다. 현행 6인 가구 최저주거면적은 55㎡·4실이므로 박씨 가족은 최저주거기준 이하인 집에 산다. 하지만 그가 주거취약계층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사실상 없다.

지난달 22일 경기도의 한 반지하에 사는 박현미씨(42)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아이들의 서랍, 책장 등이 놓인 작은방에서 12살 딸이 자고 박씨가 앉아있는 거실 겸 주방에서 13살, 17살 두 아들이 지낸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우선 LH가 전세금을 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빌려주는 전세임대나 매입임대주택은 ‘그림의 떡’이다. 최대 9000만원(신혼부부 1억2000만원)으로 여섯명 가족이 거주할 수 있는 집을 구할 수 없을 뿐더러 수급을 받고 있는 가정이 아니라서 2순위 밖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박씨의 남편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 한달 평균 소득이 200만원 이상으로 잡히지만 중개료 등을 제하면 실질적으로 손에 쥐는 돈은 80~90% 수준이다. 일이 없으면 한달에 열흘도 일을 못나갈 때도 있다. 이 돈으론 4명 아이들 옷이나 학용품,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빠듯하다. 박씨는 “다자녀를 키우면서 수급자가 아니라면 어느정도 소득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현재 정책은 가난한 다자녀가구에겐 혜택을 주지 않는 구조”라고 말했다.

매입임대가 방 1~2개의 작은 평형대 위주로 제공되는 문제도 있다. 박씨는 “성별이 다른 아이들에게 방을 나누어주려면 최소한 방 세개가 필요한데 현재 거주하는 지역에 물량이 아예 없다고 봐야한다”며 “만에 하나 전세임대 혜택을 받게 되더라도 가족이 많다고 해서 전세임대 최대치가 가구원수 비례로 늘지 않기 때문에 반전세가 아니면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서 초조함도 늘어간다. 취약한 환경에서 살다가 아이들의 건강이 더 나빠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지난 1일 서울시가 발표한 아동 주거 빈곤가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가구 아동의 75%가 만성적인 기관지 질환 등에 시달린다. 박씨는 “이전에 살던 곳은 2층 건물에 합판을 대 만든 건물로 겨울에 아무리 보일러를 높여도 실내 온도가 10도인 곳이었다”며 “지금 집도 비만 오면 물을 퍼낼 양수기를 가져와야 하고 곰팡이가 많이 생겨서 아이들이 늘 기관지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셋째 수희(12)는 다섯살 때 큰 뇌수술을 받으면서 지체장애 등을 얻었다. 지금도 약을 한웅큼씩 먹으며 계속 ‘큰 병원’에 가야한다. 박씨는 눈물지었다. “내가 죄스럽죠. 딸 아이가 아프게 된 것도 곰팡이 때문이 아닌가 싶고 그래요. 말도 안되는 말이지만...”

이들에겐 최저주거계층을 위한 영구임대아파트도 선택지가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영구임대아파트가 40㎡(12평) 이하라 많은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다섯 손주와 아들, 본인까지 총 7명이 11평형대 경기도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조승자씨(63)는 “한 번이라도 다리를 펴고 자는 것”이 소원이다. 장애인인 아들이 방 하나에서 혼자 자고, 나머지 7살~17살 손주 4명과 조씨는 2평 남짓한 ‘거실 겸 큰 방’에서 잔다. ‘큰 방’이라지만 1인용 이불을 두개 깔면 바닥이 전부 덮인다. 자리가 부족해 둘째 현우(15)는 사철 베란다에 이불을 펴고 잔다. 빨래를 따로 널 공간도 없어 줄을 구해다가 방을 가로질러 빨랫줄을 만들었다. 일곱 식구의 빨래로 인해 늘 실내 공기는 축축하다. 연식이 오래 된 에어컨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지 오래다. 최근 태풍이 왔을 때 덥고 습해서 잠깐 창문을 열었다가 TV가 맞바람에 밀려 부서졌다.

비좁은 집에서 유일하게 쌓여있는 ‘필요 없는 물건’은 아이들이 따온 수많은 태권도 대회 메달과 트로피다. 저소득층에게 지원되는 스포츠 바우처로 다니는 태권도 학원이 아이들이 받는 유일한 사교육이다. 현서(17), 현영(14)의 꿈은 태권도 사범이다.

경기도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조승자씨(63)의 집엔 성장기 아이들 5명이 한데 모여 잔다. 세탁기와 빨래걸이, 잡동사니 등이 놓인 베란다가 둘째 현우(15)의 ‘방’이다. 사진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2007년 이곳에 처음 입주할 땐 아들과 본인 둘 뿐이었지만 지체장애인 딸이 아이들을 낳고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 2008년부터 하나둘씩 자녀를 조씨에게 보내기 시작한 게 다섯명이 됐다. 아이들이 날이 갈수록 성장하면서 공간은 더욱 비좁아지고 있다. 조씨는 “아직 여섯살, 다섯살 난 (딸의) 아이가 또 있어 그 애들까지 오게되면 식구가 늘 수 있다”며 “아이들이 다 학교에 다녀서 전학 문제도 있고 나도 당뇨, 우울증 등으로 인해 몸이 좋지 않아 따로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해 다른 곳으로의 이사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 한 구석엔 아이들의 간식비·비상금이 든 누비지갑과 통장 여러개, 커다란 약봉지가 든 할머니의 작은 손가방이 놓여있었다.

서울의 한 18평형대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장미선씨(41) 가족에게 역시 현재 주거 공간은 충분하지 않다. 장씨는 21살 첫째딸부터 올해 12살 된 막내까지 다섯 자녀를 키우고 있다. 작은 방에선 두 딸과 장씨가 칼잠을 자고 큰 방에선 세 아들이 남편과 함께 잔다.

장씨의 경우 상황이 한층 나쁘다. 관리비가 100만원 이상 밀려 곧 퇴거 명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관리공단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3년간 영구임대주택에서 임대료 및 관리비 체납으로 인한 퇴거는 421건으로 전체 공공임대 강제 퇴거 건수(1116건)의 37.7%를 차지한다.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한달 140만원 남짓하는 기초수급이다. 장씨는 장애 5급이다. 열여덟에 교통사고로 허리를 크게 다쳐 철심을 박았다. 그 후 골반이 계속 틀어지면서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 아크릴 공장에서 일하던 남편 김석진씨(50)도 간이 나빠 일을 하지 못하게 된 지 20년이 돼간다. 최근 2년 안에 4번이나 쓰러졌다.

들어오는 돈은 체에 받친 물처럼 금세 빠져나간다. 대부분 빚 이자다. “옛날에 남편이 예전에 어디 분양을 받는다고 해서 큰 돈을 날렸어요” 장씨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엔 기도하듯 모은 손 위로 집이 그려진 그림과 수도권 한 신축 분양 아파트 조감도가 걸렸다. 장씨는 들어가고 싶어서 걸어둔 사진이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그의 입에선 곧장 수도권 국민임대 서너군데 이름이 줄줄 나왔다. 그가 말한 단지들은 보증금이 수천에서 1억원을 넘어간다. 그는 “빚이 많다보니 차압 때문에 청약조차 넣지 못한다”며 “만에 하나 저렴한 공공임대가 나온다고 해도 그림의 떡”이라고 말했다. 그는 10여년 넘게 살아온 이 집에서 퇴거당할 경우 당장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물량’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물량 부족이다. 월세·보증금이 낮아 ‘감당할만한’,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이 없다.

“예전에 노숙인 시설에 LH가 단기 일자리를 준 적이 있었어요. 인근 고시원 돌아다니면서 ‘이런 주택이 있으니 신청하세요’라고 홍보하는 일이었죠. 그런데 막상 나중에 ‘신청해볼까’해서 봤더니 가능한 게 하나도 없는거예요”

성재혁씨(62)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는 2002년 이후 약 17년간 고시원,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여기서 더 이상 추락하지 않는 것 정도가 꿈”이라고 말하는 그는 결석으로 인해 최근까지 대수술을 여러번 거쳐 건강이 나쁜 가운데도 공공근로 등을 하며 조금씩 저축을 했다. 지금까지 두번 매입임대주택 신청을 했지만 떨어지고 재신청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반 매입임대주택에 입주한 고유식씨(67)가 벽에 새 주소와 입주 날짜를 적어뒀다. 이 집은 그가 그간 살았던 집 가운데 처음으로 화장실이 안에 있는 집이다. 사진 김지원 기자 deepdeep@khan.kr

수십년간 서울 외곽의 반지하, 판잣집을 전전하던 고유식씨(67) 역시 지난 10년간 매년 1~2번씩 꼬박꼬박 공공임대에 신청을 했지만 대부분 탈락하고 15번 중 딱 ‘두번’ 됐다. 그중 하나가 지금 사는 집이다. 지난해 11월 동사무소를 통해 600만원을 낮은 금리로 빌리고, 친척에게 300만원을 빌리면서 가까스로 보증금 980여만원·월세 13여만원 일반 매입임대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 고씨는 “몸도 계속 안좋아지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눈 딱 감고 조카에게 손을 벌렸다. 지금 이 집도 빌린 돈이 아니었다면 지원할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라며 “40년만에 처음으로 화장실이 집안에 있는 집에 왔다. 벽에 입주일을 기념일로 적어뒀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20여년 간 서울 외곽의 보증금 100만원·월세 15만원짜리 반지하방에서 살아왔다.

당첨이 됐던 나머지 한번은 ‘없는 셈’ 친다. 시흥의 한 10평 미만 국민임대 아파트다. 그는 “9년 전쯤 당첨이 되긴 했는데 당시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17만원이니 관리비 등을 합하면 30만원 정도”라며 “그런 곳은 안되느니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공공임대 136만5000가구. 하지만 저소득층이 ‘부담 가능한 수준의 보증금과 월세’라는 거름망을 걸면 규모는 뚝 떨어진다. 지난해 12월 윤소하 의원실이 제출받은 기존주택 매입·전세임대 중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공급’ 물량 비중을 보면(2017년~2018년 10월 말 기준) SH의 경우 각각 6.9%(178호), 0%(0건)이었으며 LH는 7.3%(832호), 1.8%(1601건) 수준이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는 “지난해엔 서울에 기존주택 매입임대 가운데 선지원 분이 아닌 물량이 딱 두채 있었는데 둘다 반지하거나 대로변의 열악한 주거였다”며 “겉으로는 수치가 부풀려져 있지만 정작 입지나 금액, 조건 등을 고려해 정말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다보면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공임대 선택지’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올해에만 공공임대주택 13만6000가구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그들이 아닌 누군가는 그곳에 들어갈 것이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