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日 오염수 바다 투기?..'물타기'에 앞선 '물타기'

황현택 2019. 10. 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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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규제위원회 위원장도 '안전성, 과학성으로 보면 괜찮다'고 말한다. (바다에) 방류해 희석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 (9월 10일, 하라다 요시아키 전 환경상)

"영원히 탱크에 물을 넣어두는 건 무리다. 가져와서 (오사카 앞바다에) 흘려보내는 것이라면 협력할 여지가 있다." (9월 17일, 마쓰이 이치로 오사카시장)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전원이 끊겨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면서 수소 폭발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 원전에는 오염수가 계속 늘어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루 150t씩 늘어 9월 말 기준 116만t에 달합니다. 서울 방이동 올림픽 수영장 700개를 채울 분량이죠.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걸 그대로 놔둘 거냐, 태평양 바다에 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형식적 검토 단계로 넘어가는 분위기입니다.

도쿄전력이 지난달 27일, 일본 경제산업성에 제출한 보고서 일부. 오염수 처리 방법 6가지에 대한 검토 결과를 담고 있다.


총대를 멘 건 원전 사업자입니다. 도쿄전력은 지난달 27일, 일본 경제산업성 내 소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다핵종(多核種) 제거 설비 등 처리수의 처분 방법과 풍평(風評·낭설) 억제'란 제목입니다. 오염수 처리 방향으로 ▲지층(지하 2.5km) 주입 ▲해양 방류 ▲수증기 방류 ▲전기분해 후 수소 배출 ▲지하 매립 ▲저장 계속 등 6가지를 제시하고, 각각의 검토 결과를 담았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저장 계속'은 "폐로 작업에 필요한 시설 설치에 영향을 준다", 일본 시민단체 등이 요구하는 '지하 매립'에 대해선 '(시멘트와 혼합해) 고체화하면 부피가 3~6배 늘어 부지가 훨씬 늘어난다"며 부정적 평가를 내립니다.

반면에 표에서 두 번째 항목인 '해양 방류'에는 후한 점수를 줬습니다. 세슘(Cs-134·137)과 스트론튬(Sr-90), 요오드(I-129) 등의 방사성 물질은 '2차 처리'를 통해 기준치 밑으로 낮추고, 정화되지 않는 트리튬(삼중수소)는 바닷물에 희석해 농도를 낮추는 방식입니다. "국내·외 해양·하천·호수에 방류한 사례가 있다", 특히 6가지 방법 중 유일하게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해양 방류가 '설마'에서 '사실'로 가는 길목에 올랐다고 볼 여지가 충분해 보입니다. 이제 걸림돌은 후쿠시마 어민과 주민, 시민단체, 그리고 한국 등 주변국의 반대 여론이겠죠. 여기서 나온 일본 정부의 선택, 바로 '물타기'를 위한 '물타기'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에 늘어서 있는 오염수 보관 탱크. 일본 정부는 2022년 오염수 저장 용량이 한계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타기 3종 세트 ① : 거짓말…"삼중수소밖에 없다"

"다핵종 제거 설비, '알프스'(ALPS)에서 처리된 물은 '트리튬'(삼중수소) 이외 방사성 물질은 거의 걸러졌다. 현재 원전 부지 내 탱크에 보관하고 있다."

다케모토 나오카즈(竹本直一) 일본 과학기술상이 지난달 1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기조연설에서 한 말입니다. ALPS는 모두 62종의 방사성 핵종을 제거할 수 있는 일종의 여과시설입니다. ALPS를 거치면 세슘과 스트론튬은 1Bq(베크렐·방사성 물질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이하로 제거됩니다. 반면에 물과 성분이 비슷한 삼중수소를 걸러내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다케모토 과학기술상은 특히 한국 등을 겨냥해 "과학적으로 증거가 없는 비판들이 후쿠시마 사태를 딛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며 한술 더 떴습니다. '거짓말'입니다.

KBS는 도쿄전력이 지난달 말, 일본 정부에 보고한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보관 중인 전체 오염수 95만 8천㎥ 가운데 78만㎥(82%)에서 세슘과 스트론튬, 요오드 등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연간 피폭 허용 한도'(IAEA의 1mSv/Y) 이상 검출됐다는 내용입니다. 오염수의 17%(16만 2천㎥)는 기준치의 10~100배 사이, 7%(6만 5천㎥)에선 농도가 100배를 넘겼습니다. 다른 보고서(2018년 10월 1일)에선 그 원인도 제시했습니다. ▲처리 전 오염수 농도가 제각각인데 ▲처리 설비가 맞지 않았고 ▲성능도 부족했으며 ▲무엇보다 흡착재를 더 자주 교환했어야 했다는 자기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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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타기 3종 세트 ② : 말 바꾸기…"기준 자체를 바꾼다"

도쿄전력은 그동안 탱크 속 처리수에는 삼중수소를 제외한 다른 핵종이 없는 것처럼 설명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보고서에선 "지금까지 ALPS에서의 처리는 배수기준을 만족시키는 게 목표가 아니라 저장할 때 기준을 유지할 것을 목표로 운영해 왔다"고 했습니다. 일본 비영리 기구(NPO) '원자력자료정보실'(CNIC) 반 히데유키(伴英幸) 공동대표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진실을 숨겨 왔다는 것, 심지어 '해양 방류'로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해 왔다는 데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고 했습니다. 도쿄전력의 이런 해명, 일본 정부의 지난 태도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방사선 관련 기준치를 죄다 바꿔 버렸습니다. 일반인의 연간 피폭 허용기준을 1밀리시버트(mSv)에서 20mSv로 올려 피난 지역 해제와 주민 귀환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방사성 폐기물의 기준치도 kg당 100Bq에서 8천Bq로 대폭 완화해 일반 폐기물로 재활용과 소각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식품 방사능 검사도 핵종 검사 항목을 요오드와 세슘 두 가지에서 세슘 한 가지로 축소하고, 25Bq/kg 이하는 불검출로 처리하는 등 식품검사법을 개정했습니다.

후쿠시마 지역 신문의 9월 30일 자 여론조사 보도. ‘트리튬수 해양 방류’에 대해 반대가 38.4%, 찬성이 30.3%로 큰 차이가 없다.


물타기 3종 세트 ③ : 이미지 조작…"처리수로 불러라"

사실 해당 보도는 KBS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일본 교도통신이 처음 이 문제를 처음 전한 게 지난해 8월 일입니다. 도쿄전력은 이를 시인했고, "그동안 설명이 불충분했다"며 사과했습니다. 문제는 이후에도 일본 정부는 이 오염수를 'ALPS 처리수', '트리튬 수(水)'라고 표현하고, 일본 언론 역시 그렇게 쓴다는 점입니다.

지난 7월 도쿄 특파원으로 온 기자가 지난 3개월 동안 봤던 모든 일본 정부 자료와 언론 기사 역시 그랬습니다. 오염수 문제를 공론화하고 있는 사토 가즈요시(佐藤和良) 후쿠시마현 이와시키 시의원은 이를 두고 "'ALPS 처리수', '삼중수소 물'이라고 불러야만 오염수도 아니고, 다른 물질은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이미지 컨트롤'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현청 복도에 ‘후쿠시마로 오라’는 홍보물이 잔뜩 붙어 있다.


2013년 9월, 아베 총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하면서 "후쿠시마 원전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방사성 오염수 문제는 아베 정부 '후쿠시마 복원 전략'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입니다. 원전 사고 발생 8년 6개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방사성 오염수는 태평양으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저장 탱크에 담기는 오염수는 일부일 뿐, 지하수와 섞여 바다로 흘러나가는 오염수는 얼마나 되는지, 그 안에 어떤 핵종이 얼마나 빠져나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일본이 바다 투기에 집착하는 건 가장 값싸고, 쉬운 옵션이기 때문일 겁니다. 아무리 오염수를 희석한다고 해도 이는 방류 기준치를 맞추기 위해 물과 섞어서 바다로 내보내는 것일 뿐 바다에 방류되는 방사성 물질 농도의 총량은 같습니다. 여러 정황에도 일본 정부는 오염수를 어떻게 처리할지 '공식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미 해양 방류를 해결책으로 정해놓고 일본 정부와 규제기관, 사업자가 한통속이 돼 '요식 절차'를 밟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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